“마치 죽은 개구리 같았다.”

미녀 테니스 스타 샤라포바와 사귀다 헤어진 레바인이라는 남자는 러시아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자신과 관계할 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샤라포바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결국 6개월만에 헤어졌단다. 남녀가 잘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 노릇인데, 남자들 중엔 꼭 이런 식으로 여자 탓을 하는 자들이 있다.

생각해보자. 샤라포바가 아무 반응을 안 보인 게 사실이었다고 전제한다면, 그건 혹시 레바인 탓이 아닐까? 남자들은 여자와 섹스 후 좋았냐고 묻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 기를 살리려고 좋은 척 연기를 하는데, 샤라포바는 너무 솔직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자존심에 뿔이 난 레바인은 그래서 ‘죽은 개구리’ 운운하며 먼저 선수를 쳤다. 찌질함에도 바둑처럼 급수가 있다면, 이건 바로 9단을 줘도 부족하지 않다.

그렇다고 레바인만 탓할 수는 없다. 찌질함만 갖고 따지면 한남도 결코 레바인에게 뒤지지 않으니까. 여성에게 들이댔다가 거절당하면 “X년”이라고 한다든지, “꼬여놓고 찼다”는 말도 안 되는 음해를 하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까칠남녀’의 명패널인 은하선씨의 『이기적 섹스』에도 이런 남성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중학생 때 만난 학교 선배는 키스에 서툴러 “입술 전체를 침 범벅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난감했다.” 나중에 은하선이 선배에게 헤어지자고 하자 그는 “자신과 키스까지 했으면서 헤어지자고 한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20쪽) 그 결과 은하선과 선배가 어떤 키스를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나.

-동아리 선배가 은하선에게 A라는 남자를 소개시켜줬다. 결국 둘은 잠자리까지 하게 되는데, 소개팅을 시켜준 선배한테 전화가 온다. “너, 걔랑 잤다며.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자? 걔가 자랑하더라. 너 따먹었다고.”(22쪽) 충격을 받은 은하선은 자신과의 관계를 떠벌였다는 이유로 A와 헤어지자고 한다. A의 말이다. “따먹은 거 맞잖아…. 쉽게 다리 벌린 헤픈 년이 어디서 잘났다고 큰소리는 큰소리야.”(23쪽)

-은하선을 임신시킨 B라는 남자는 1) 처음에 결혼하자고 하다가 2) 내 아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너 같이 까진 여자를 아이 엄마로 둘 수 없다고 하더니 3) 임신한 척하고 자기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4) 결국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그 다음에 만난 C는 30대 중반의 배불뚝이 아저씨는 관계 도중 은씨가 아프다고 해도 참으라고 한 뒤 자신의 욕정을 채운다. 안되겠다 싶어 헤어지자고 하자 1)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마지막 섹스를 하자고 졸랐고 2) 차 안에서라도 한번 하자고 하더니 3) 은씨가 응하지 않자 너희 엄마와 너를 동시에 같은 곳에서 강간하겠다, 밤길 조심하라, 걸레같은 년이다, 같은 문자를 보내더니 4) 남자와 섹스한다는 걸 집과 학교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자,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은하선은 왜 이런 남자들만 만났을까? 한남들은 이 원인을 당연히 은씨 탓으로 돌리겠지만, 그보다는 찌질남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다. 예컨대 한남이 찌질할 확률이 10분의1이라면, 한 여성이 4번 연속 찌질남을 만날 확률은 1만분의1이 아닌가?

은씨의 책 말고도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찌질의 극치를 달리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바글바글한 걸 보면, 찌질한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은하선은 말한다. 남자들은 섹스를 하고도 안 한 척 하는 여자들을 ‘내숭’ 떤다고 욕하고, 섹스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여자들은 ‘헤픈 년’ ‘걸레’라고 욕한다고. 사정이 이러니 여성으로 사는 게 힘들 수밖에.

찌질함의 대명사 레바인은 신기하게도 한국에선 찬양받는다. 샤라포바 기사가 나올 때마다 한남들이 ‘죽은 개구리’ 운운하며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있으니까. 예쁘지, 테니스 잘 치지, 돈 잘벌지. 샤라포바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여성이다 보니 남성우월주의 한남에겐 레바인의 말이 그녀를 깔 수 있는 유일한 건덕지긴 하지만, 그래도 좀 적당히 하자. 한남들이 찌질함 지수 10단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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