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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강사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덕희씨(44.명지대 사회교육

원 교수).'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그의 저서는 발간 40일만

에 15만부를 판매를 기록했고 일약 ‘베스트 스피커’의 자리를 차지

했다.

3백명에서 2천명까지의 대형강의를 맡아 여성들에게 웃음과 꿈을 선

사하는 정씨는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 여자가 백

마타고 가서 남자도 태워와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면서 “내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여성학적인 메세지로 평범한 여성들에게 이웃집

아줌마처럼 부담감없이 접근한다.

충남예산에서 12남매 중 11번째 천덕꾸러기로 출생, 고졸학력, 신데

렐라 같은 결혼, 시집살이, 세일즈부터 시작된 사회생활, 뒤늦은 대

학원 공부 등 다양한 사회생활 경험과 여성으로서의 체험을 딛고 일

어서서 ‘마흔 네살의 성공’을 성취한 정덕희를 여성들은 열광적으

로 반긴다.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교양강의가 끝난후 정씨를 만났

다. 그는 현재 SBS-FM ‘정덕희의 신나는 세상’을 진행하고 있다.

-인기가 굉장한데요.

“나도 모르겠어요. 교주를 만난 듯 사람들이 매달려요. 아마도 힘들

게 사는 여성들이 자기 속마음을 알아 줄 것같은 느낌을 받는가 봐

요.”

-강의 내용이 여성학 강의 시간에 나올만할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어

요. 여성학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 강의 내용은 순전히 내 생활에서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을 정리한

겁니다. 여성학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특별히 그걸 수용하려고 노력

하지는 않았어요. 여성학이 너무 이론적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아직

여자들은 쫓아가지도 못하는데 선두주자들의 목소리와 이론만 무성하

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여성사회교육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조동춘씨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2의 조동춘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조동춘 선생과 저는

10년 차이로 개인적으로 특별히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제가 깍듯이

선배님으로 모십니다. 조동춘 선생의 테마가 ‘사랑받는 아내’였다

면 저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말합니다. 경제적인 역할 부분도 상당

히 강조하지요. 저도 사랑을 얘기하지만 제가 말하는 사랑은 남성과

동지로서의 파트너쉽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이 차이는 개인의 차이라

기 보募?시대의 차이라고 봅니다. 또 조선생이 활동하시던 시기보

다는 지금이 TV 매체의 영향력이 증폭된 시기이니 영향력에서도 차이

가 있지요. 제가 ‘주부 서태지’라 불리는 것도 TV매체의 영향이라

고 봐요.”

-수입도 상당할 텐데 공개하실 수 있나요?

“몇년 전 시간당 30만원 받을 때 한 기자가 100시간을 곱해서 3천만

원을 버는 여자라고 기사에 쓴 게 계기가 되서 저는 지금까지도 한달

에 3천만원을 버는 여자로 돼 있습니다. 지금 수입은 그 이상입니다.

한 강의에서 1백만원 정도를 강사료로 받습니다. '여자가 변해야 세

상이 변한다' 출판으로 인세만도 억대지요. CF 제의도 받았어요. 전

배포 크게 1억 개런티를 불렀어요. 교섭과정에서 칠팔천까지 얘기가

나왔지만 1억이 아니어서 못한다고 그랬어요. 전 분명해요. 전 연예

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잘나가는 연예인이 받는

대우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봐요. 좋은 이미지를 심는 CF라면

무료로도 출연할 수 있겠지만 상업적인 광고라면 그 정도는 돼야 한

다고 생각해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중은 누구인가요?

저를 키워준 대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는 분명히 알아요.

나를 밀어준 건 가난한 대중이지 엘리트 여성들이 아니예요. 엘리트

여성들은 절대로 누굴 지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비판적이지요. 가난

한 여성들이 나를 의지해서 희망을 얻고자 해요. 제 책을 한권씩 사

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니 저는 대중을 가장 무서워하고 그들의 희

망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책에 시집살이 하면서 우울증에 걸렸다는 대목이 아주 짧게 등장합

니다.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요. 차이나는 결혼을 했어요. 전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도 없이 그저 그런 시골집안의 딸이었고 시집은

부유했어요. 그런 차이에서 시작되는 온갖가지 아픈 경험을 해야 했

지요. 이혼할 생각도 했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끓을 수 없다는 것과

우리 아이들에게 이 집안을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만을 믿고

살아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맏며느리를 지켜온

나 자신이 대견해요. 지금은 제가 시집 쪽에서도 제일 성공한 사람인

데요, 그동안의 세월에 대한 보상인 것 같고 정말 하늘이 있다는 생

각이 들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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