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폭력 아웃)'를 이끄는 하예나 대표(활동가)가 2월부터 여성신문 연재를 시작합니다.

하 대표는 2015년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활동가 연대를 구축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공론화를 주도했습니다. 2016년 경찰의 소라넷 폐쇄는 그가 계속해서 싸우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DSO 단체 설립에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 대표는 연재를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무감각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를 낱낱이 고발할 예정입니다. 코너명 ‘하예나의 로.그.아.웃’에는 디지털공간의 성폭력을 종료·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연재 마지막 편인 이번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디지털 성폭력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그냥 ‘폭력’ 그 자체다. 사실 내가 살면서 경험한 폭력은 디지털 성폭력뿐만이 아니니까.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등 수없이 다양한 폭력 속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속에서 폭력은 진득하게 존재한다.

“폭력을 경험했다.”

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내가 항상 피해자였다는 것만 뜻하지는 않는다. ‘나’는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 방관자일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평생 고착되는 개념이 아니라 순간 순간 변화한다. 내가 한순간 화를 냈다고 나는 ‘화를 내는 사람’ 이 아니듯이 내가 어느 땐가 우울했다고 해서 지금도 ‘우울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이처럼 나는 언젠가 ‘가해자’였고 ‘피해자’였고 ‘방관자’였다. 항상 그 세 가지 개념 속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운동을 하면서 문득 의문을 갖게 됐다. 특히 당신은 ‘가해자’였다고 하는 말에 충격받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해만 하는 사람’이라고 낙인찍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순간 당신은 ‘가해자’였다. 앞으로 그들은 충분히 다른 입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세 가지 모두 선택하기는 싫은 느낌이 아닌가? 나는 피해자가 되고 싶지도, 방관자가 되고 싶지도, 가해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폭력 ⓒPixabay
폭력 ⓒPixabay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되야 할까?라고 할 때 선택지는 ‘가해자’와 ‘방관자’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피해자일텐데?

이제 우리들이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그리고 그들은 왜 ‘세 가지’ 개념 속에만 갇혀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나는 그 연쇄고리를 끊기 위해서 또 다른 개념을 교과서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저항자’가 되었으면 한다. 학교에서 ‘저항’을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 사실 세상 속에 섞인 저항자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저항하는 그들을 가르칠 명칭은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방관자의 예시, 피해자의 예시, 가해자의 예시는 있지만 저항자의 예시는 없다. 디지털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지금 과거 가해자였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가해자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도 과거의 가해자이자 방관자였다. 하지만 그것은 계속해서 바뀐다. 내가 과거의 가해자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방관자와 가해자가 바뀌어가는 세상을 원한다. 가해자가 없다면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관자가 없다면 피해자는 유지되지 않는다. 저항자가 있다면 피해는 사라진다.

디지털 성범죄의 본질도 결국 여성을 향한 폭력이다. 우리는 이 폭력 속에서 저항자가 되자고. 하지만 폭력을 직면하는 것은 사실 매우 아프다. 상처는 보면 아프다. 아픔을 깨닫고 만다. 하지만 그 상처는 직면했을 때야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바르고 함께 이겨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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