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캐서린 깁슨 인터뷰 “자본주의에 편승할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캐서린 깁슨 인터뷰 “자본주의에 편승할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
  • 최형미 객원기자
  • 승인 2017.04.19 21:53
  • 수정 2017-04-27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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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동체의 탈환’ 컨퍼런스

참석 위해 내한… 본보 인터뷰

 

“페미니스트 운동, 지난 200년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변화 일으켜”

 

자본주의 경제가 유일한 경제 아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빙하의

몸뚱이가 바로 공동체 경제다”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빈부 격차, 경쟁적인 삶, 환경 파괴, 세계 각지에서 이권 때문에 일어나는 전쟁과 난민 발생의 뿌리에 ‘자본주의’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19세기 중반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미칠 해악을 예언했다.

그토록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해 왔는데, 왜 아직도 자본주의는 거대한 괴물이 돼 우리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에 잘 편승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와 마포공동체경제네트워크 ‘모아’가 공동주최한 ‘도시공동체의 탈환: 시민이 경제의 주체다’ 컨퍼런스가 15일 열렸다. 여기에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가 초대됐다. 다음날 깁슨 교수와 벚꽃이 지는 북서울 꿈의 숲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깁슨 교수는 고 줄리 그래함 교수와 함께 처음 ‘공동체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대학원에서 줄리와 나는 ‘혁명에 대한 글쓰기’ 작업을 함께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그렇게 글만 쓰면서 자본주의가 무너질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게 지겨웠다.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자본주의를 비판했는데 왜 자본주의는 지속될까?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관해 공부하면 할수록 자본주의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바뀌며 더 강하게 진화해 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는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 담론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거기에 해당되는 증거들을 더 많이 수집해 나르게 만든다. 이때 모여진 증거들은 오히려 자본주의를 더 강하게 하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거대 담론의 아이러니다. 깁슨 그래함(캐서린 깁슨과 줄리 그래함이 함께 한 필명)은 이런 식으로 유지되는 불패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이들의 연구는 아주 다른 방법으로 진행됐다.

왜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며 모든 경제가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증거들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던 방식을 거부했다. 오히려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공동체 경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들을 강하게 지지하고 연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번에 내한해 마포지역공동체네트워크인 모아를 방문한 것도 바로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공동체 경제 이론을 구축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캐서린 깁슨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깁슨 교수는 이 모든 영감이 언제나 페미니즘에서 왔다고 전한다. 지난 200년 동안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페미니스트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았다. 세계 전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제1물결이 일어났다 물러나면, 제2물결이 또다시 몰려오고 그것에 이어 제3물결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그때마다 페미니즘은 발전했다. 처음에는 선거권에 대한 자각이 있었고, 다음에는 여성들이 행하는 돌봄 노동이나 무급노동으로 노동개념을 균열냈으며,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획일화된 통제를 거부했다. 그들은 여성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갖는가를 보여줬다. 이제 여성들은 구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정치가로 나서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혁명 전략은 그들의 일상, 공동체 차원에서 나타난다. 여성들은 몇 명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정치운동집단을 만들기도 했으며, 재생산 기술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했고 가사 도구를 발명해 노동을 줄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유사한 방법으로 경제를 바꿀 수 있다고 봤다.”

깁슨 교수는 그것이 외롭고 낯선 길이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그래함 전 메사추세츠대 교수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채 완성도 되기 전에 비판을 한다. 줄리와 나는 서로를 학문적으로 지지하며 힘을 잃지 않았다.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들로 학문 영역을 넓힐 때 우리들의 협업은 아카데미아에서 생존의 전략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대안경제는 비주류, 대안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처음 목소리를 낼 때 철저하게 주변화됐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일상의 경제적 경험이나 사회적 경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관계를 형성하며, 다른 종류의 경제 구조를 만들어가는가를 살펴봤다. 이미 19세기 때부터 협동조합은 있었다. 마르크스도 감탄을 했던 조직이었다. 그가 그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췄기에 자본주의 확산에 오히려 기여했다. 세계 여러 곳에서 협동조합 운동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미 있는 것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도 아니며, 미래에 대한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이미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성적인 힘을 보태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도움을 줘야 한다. 나는 그것을 이론화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15일 오후 워크숍에서 깁슨은 이 자리에 참여한 공동체 운동가들에게 자본주의적 활동 경험과 공동체적인 활동 경험을 이미지로 나타내는 작업을 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제만이 유일한 경제라고 여긴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신들의 원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도구들을 발전시켜왔고 그것이 유일하며 변하지 않는 사실처럼 만들어 버렸다. 나는 우리들의 삶의 대부분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다양한 경제를 설명하고 소통시킬 수 있는 도구를 발굴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이미지 작업은 실질적으로 우리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다양한 경제의 개념들을 발굴하는데 도움이 된다.”

깁슨 교수는 이것을 커다란 빙하의 이미지로 나타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빙하의 몸뚱이가 공동체 경제다. 마을 공동체 팀은 땅 아래 넓게 퍼져 있는 개미굴의 이미지를 그리며, 공동체 경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했다.

깁슨 교수의 강연은 필자에게 뭔가 알 수 없는 힘을 주고 해방의 느낌을 줬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 주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런 사적인 의문에도 대답을 해주었다.

“여성들이 처음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해방감을 느끼지 않았나?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 살아도 되고, 독립적으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서열화시켰다.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부여한 정체성에 의해 열등감을 느끼게 됐고, 스스로 루저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 경제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평등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한 경제학자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지금 3포, 5포시대에 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양극화는 이들에게 결혼도, 연애도 일상의 평범한 기쁨도 앗아가 버렸다. 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절망 가운데에 있다. 깁슨 교수는 “그런 말은 10대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20∼30대 청년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청년들은 분명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사회 분석에서 나온 거대 담론은 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것에 지배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그 사회 속에서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들을 맥락에서 발굴해서 가능성을 열어가야 한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략이 아니겠는가? 나의 연구는 언제나 이런 방향으로 진행됐다.”

사람들은 깁슨 그래함을 후기 구조주의자라고 명명한다. 필자는 어려운 용어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만난 캐서린 깁슨은 거대하고 멋진 비판 이론에 매몰되지 않았다. 오히려 실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작은 공동체들의 움직임에 주목했고,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주역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마치 작은 틈새로 들어온 한줄기 빛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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