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것이 터졌다” 여론 비등

후원금·정부지원금등 집행 의혹투성

여성계 “참회한다면 진상위 조사 응해야’

지난 2월 17일 나눔의집 원장직을 맡고 있던 혜진스님(배영철)이 “두 명의 여성과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 승적을 포기하고 원장직을 사퇴”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진 이래 파장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기자회견에 앞서 혜진스님은 2월 1일 사건을 접수한 여성단체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문제가 확산되자 피해여성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협박과 회유를 거듭했다. 그리고 다음 날 두 피해여성을 만나 “용서해달라”, “참회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들이 공개 의사를 철회하지 않자 선수를 쳐 ‘양심선언’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등은 즉각적으로 반박성명을 통해 “혜진스님의 양심고백 기자회견은 성폭력 사실을 왜곡하고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자기방어적 기만행위”라며 규탄했다. 혜진스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여성단체와 참여연대·경실련·민변 등이 22일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를 진행하고 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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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부터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며 정신대 문제를 국제 이슈화하는 데 기여했던 혜진스님 사건이 밝혀지면서 정신대 문제 해결에 타격이 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처음 이 사건이 공개됐을 때 ‘성폭력’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혜진스님이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거부의사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원장과 직원이라는 위계관계, 승려라는 신분에 대한 경외심을 이용한 인간적 친밀성을 가장한 성폭력”이라 단언한다.

그러면 왜 사건 발생 후 2년여가 흐른 지금에야 문제가 불거졌을까.

최 소장은 “김부남 사건, 보은이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피해여성은 처음에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서야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보복이 두려워 쉽게 문제제기를 할 수가 없다. 우조교 사건처럼 이번 사건도 해고 후 문제를 제기했는데, 고용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사건이 제기되자 일각에서는 피해여성이 정신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등의 반론도 나왔다. 혜진스님이 한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여성이) 정신적으로 이상하니 알아봐라”라고 한 얘기가 녹음됐다. 또 기자회견 당시에도 배석한 자원활동가가 “피해여성이 다른 자원활동가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피해여성을 성격이상자로 몰아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강자 한국민우회 공동대표는 “일반적으로 성폭력·성희롱 피해여성은 그 후유증으로 적개심과 자포자기, 히스테리에 시달리게 된다. 이번 사건의 피해여성의 경우 사건 이전에는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헌신적으로 일했다는 것이 주변의 이야기”라며 이같은 의혹을 일축한다.

한편 당초 혜진스님에 대한 동정론까지 불러 일으켰던 이 사건은 시일이 경과할수록 일각에서 혜진의 나눔의집 운영과 관련한 재정부문에 대한 의혹,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지나친 언론플레이 등 추가적인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또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나눔의집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한 자원봉사자는 “후원금이며 정부지원금, 그림 판매금 등이 어떻게 쓰였는지 혜진스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나눔의집 설립 초기부터 의혹들이 제기돼 왔지만 물증이 없어 아무도 얘기할 수 없었고 감사 역시 형식적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피해여성이 해고당하기 전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ㅈ총무는 지난해 10월 광주군 감사에서 회계지적사항 조치를 받은 것으로 말미암아 문책성 해고를 당했다. 피해자와 ㅈ총무는 재직 당시 정부가 지원하는 급여 90∼100만원 가운데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일부를 나눔의집 후원금으로 떼고 50∼60만원을 받았다. 감사 당시 보조금 중 미지급분 400여만원에 대한 영수처리가 안돼 이를 군청에서 환수해 갔다. “재정에 관계된 부분은 원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총무 등은 장부를 맞춰내느라 고생했다”는 것이 나눔의집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또 혜진스님이 “할머니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빨래를 시키는 것은 물론 문제 제기하는 직원과 자원봉사자는 쫓아내곤 했다”고 이들은 증언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95년 몇몇 자원봉사자가 할머니들의 증언을 녹취하기도 했지만, 정신대 문제 전반에 타격이 갈까 하는 우려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혜진스님이 쥐고 있다. 여성계는 “진정 참회한다면 자발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 응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그간의 공로를 살리는 길”이라며 아직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제언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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