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예비역, 여성단체와 연대 문제제기

50년 역사 여군지위 결정짓는 중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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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예비역 군인들이 외부 여성단체와 연대해 군내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사단장의 여군장교 성추행 사건(본지 611호 보도)에 대해 여군들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가해자 징계, 그리고 군내 성폭력 근절과 성차별 개선을 요구하며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이에 상담소는 8일 홈페이지(www.sisters.or.kr)에 ‘군대내 성폭력을 말한다’ 게시판을 개설, 사례접수와 함께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그 결과 6일째 되는 현재 3백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왔으며 그 가운데 현역·예비역 남녀군의 글로 보이는 성폭력 사례가 수십 건 고발됐다.

우리 사회에서 군내 성폭력이 현역·예비역 군인들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여군학교 해체를 앞두고 “여군들이 각 사관학교와 하사관학교 등으로 흩어져 선후배의 끈이 끊기게 되면 성폭력과 같은 인권유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우려가 새삼 제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군내 성폭력에 대한 여군들과 여성단체의 문제제기는 군의 성차별적, 성폭력적인 문화 개선과 더불어 50년 역사를 가진 여군의 지위와 앞날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사단장 성추행 사건-여군들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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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위가 제 면전에서 ‘창녀 같은 것이 어디서 굴러먹다가 여군이 돼가지고. 어디 감히 중위 주제에 사단장에게 덤벼?’라고 말을…”(현역 중위), “통신참모라는 자는 많은 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화교환원의 등속으로 손을 넣어 쓰다듬곤 하였습니다”(전직 직업군인), “개인 사무실로 데리고 가 문을 잠그고 불을 끄며 여군 하사를 껴안았던 주임원사, 술 취함을 위장해 부하의 젖가슴을 어루만졌던 장군, 부르스를 추자며 엉덩이며 허리 등을 마음껏 주무르던 장군…”(예비역), “장군들의 또는 여군상관의 이해관계가 얽힌 남자들 회식자리에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고 우리는 그들을 ‘기쁨조’라 일컫기도 했습니다…”(예비역 하사), “그 장군은 군에서는 신망과 존경을 받아왔던 분입니다. 그러나… 저와 선배를 양팔에 안고 볼을 부비며 제 티셔츠 사이에 10만원 짜리 수표를 넣어 주시더군요…”(현역 여군대위), “소령 몇 분이 와 계셨는데 ‘ㅇ소위, 이리로 앉아’하면서… 제가 끝까지 거부의사를 밝히자… 저에 대한 근무평을 ‘부서간 업무협조 부족’이라고 쓴 데는 그 회식사건에 대한 후한이 아닐까…”(현역 대위), “여성이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장난과 행동에 상처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동료들과 생기는 간극은 언제나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제 정체성을 흔들어 댑니다”(전방에 있는 여군 중위).

“사단장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

군내 성폭력 철저한 희생양 만들어

현역·예비역 여군들을 움직인 것은 “성폭력을 당해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던” 피해자의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여군들은 입장을 밝히는 글을 통해 “사단장의 성추행을 군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지 못했고, 정보기관과 감찰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채 방치했다”고 문제 제기했다.

L장교와 어머니의 진술에 따르면 김 사단장으로부터 L씨가 처음 성추행을 당한 99년 11월 28일이래 계속되는 성추행 사실이 전속부관의 노력으로 수방사령관, 그리고 육군 참모차장에게까지 보고가 됐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L장교의 어머니는 딸이 전출명령을 받은 다음 해 7월까지 사단장의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성추행을 당하며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서 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또 L씨는 작년 12월 29일 죽음을 각오하고서야 비로소 군단 검찰부에 사단장을 고소했지만 “고소장을 제출하면 언론에 보도돼 세상에 대한 멍에를 지게 될 것이다. 또 사단 참모나 관련자들이 다 처벌받게 된다”는 주위의 회유로 다음날 고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3년 의무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어떠한 이유에도 ‘불명예 전역’이 되는 군의 규정 때문에 L씨는 군을 벗어날 수조차 없었으며, 언론이나 단체 등 외부와 접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 육군 법무감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철저히 방치됐다. 또 군에선 “정신이상이다” “행실이 나쁘다” 등의 소문이 떠돌았고 “그 정도 일 가지고 뭘 그러냐” “확실히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가해자 중심의 사고가 팽배해 있다고 현역들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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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군기문란 사고방지 규정 시행

‘인권’ 반영 안돼 미봉책 불과

국방부는 이번 사건 관련 ‘성적 군기문란 사고방지 대책위’를 발족해 활동을 개시했다. 한편 지난 해 6월 모 사단장의 부하장교 부인 성추행 사건 이후 곧바로 ‘성적 군기문란사고 방지규정’(본지 584호 보도)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던 육군은 이번엔 ‘성적 군기문란사고 방지를 위한 보완지침’을 내놓았다.

육군은 보완지침에 “과거에는 용납되었던 사항일지라도 간과되지 않으며”, “성적 군기문란 사고 중 성희롱은 가해자의 통상적 기준이 아닌 피해자의 주관적 해석으로 사고가 성립되므로” 등의 조항을 삽입했다. 또 여군과 여군무원의 고충처리를 육군본부 여군담당관실과 여군부대 편성부대의 여군부대장 등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육군의 방침에 대해 일각에선 “철저한 진상조사 없이 계속 지침만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미봉책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한다. 사단장 성추행 사건에 대해 항의하고 나섰던 여군들은 “교육과정에서 성폭력 문제가 남성시각으로 변질돼 버린다”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방지규정에 ‘인권’과 ‘평등’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는 지난 7월 “군이 성희롱 대책을 성적 군기문란 방지지침으로 규정한 것은 ‘범죄’와 ‘연애’를 구분하지 못하는 처사”이며 “회식 시 여군에게 주량을 제시하게 하거나 노출이 심한 복장 착용을 금지하는 등 피해자의 언행을 구속함으로써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왜곡된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었다(본지 584호 보도). 성폭력상담소의 하은주 간사도 “성폭력 근절은 그 개념 규정이 어긋났을 경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며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촉구했다.

여성·시민단체 군 성폭력 공대위 발족

여군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개혁과제

‘군대내 성폭력을 말한다’ 게시판을 운영중인 성폭력상담소는 민우회, 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다. 최영애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군 성폭력은 전반적인 군의 성차별적이고 성폭력적인 문화를 개선해야만 근절될 수 있다”며 “여군의 문제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개혁과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피해자의 명예전역 ▲가해자의 전역조치 ▲성희롱 실태조사 실시 ▲성차별·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마련 등을 군에 요구할 계획이며 특히 “성희롱 방지 교육과 고충처리위원회의 활동을 외부 전문가 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3개월 정직처분이 미미하다는 여군들과 네티즌들의 항의에 대해 육군 측은 “김 사단장의 행실은 군 징계조항에 따르면 3개월 정직 이상의 징계를 내릴 수 없게 돼있다”고 입장을 밝혔으며, 김 사단장의 항고기한은 16일 금요일 자정까지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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