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뚫고 달리는 아름다운 동행
어둠을 뚫고 달리는 아름다운 동행
  • 김수석 객원기자
  • 승인 2017.04.04 16:33
  • 수정 2017-04-05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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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 빛나눔동반주자단

서울 남산 북측에 있는 편도 3km 산책로는 마라톤 동호인들 사이에서 ‘고수의 훈련장’으로 통한다. 크고 작은 언덕이 굽이치는 난코스라 기록단축을 위한 강훈련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평일 퇴근시간 이후나 주말 오전이면 이곳은 예외 없이 날렵한 근육질의 러너들로 북적인다. 그 중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러너들도 있다.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어 걷는 시각장애인이 달리기를 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이곳을 자주 오가는 이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 산책로에서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회원과 동반주자들이 함께 달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 산책로에서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회원과 동반주자들이 함께 달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VMK / 회장 배선애)은 이미 80여명 회원을 거느린 대형 동호회다. 규모만 큰 게 아니라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3 주자는 물론 울트라마라톤 완주자와 장애인체전 메달리스트까지 보유했다. 마라톤은 여성 동호인 비율이 낮은 스포츠지만 VMK는 꾸준히 수를 늘려 1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현 회장인 배선애 씨는 최초의 여성 회장이기도 하다.

홀로 어둠 속 더듬어 달리던 8명이 클럽 만들어

국가대표 마라토너 출신 지도자 만나 일취월장

울트라마라톤 완주자, 장애인체전 메달리스트까지

VMK의 역사를 따져보면 무려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가을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시각장애인마라톤대회’를 계기로 시각장애를 가진 전국 각지의 러너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중 수도권에 사는 8명의 회원들이 매주 남산에 모여 달리면서 클럽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어느 정도 시력이 남아있는 회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 회원과 짝을 이뤄 달렸다. 바닥이 고르고 자전거 등 통행이 적은 곳을 택한다 해도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달리고자 하는 의지는 두려움과 고통을 잊고 다시금 도전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회원을 모집하면서 모임의 규모도 조금씩 키워나갔다. (문자를 음성으로 변화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함)

그렇게 3년 여동안 고군분투 하던 중 국가대표 마라토너 출신인 안기형 씨(54)가 감독을 맡으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무작정 달리던 것이 체계를 갖춘 마라톤 훈련으로 변했다. 길안내를 하는 동반주자 ‘가이드 러너’를 양성하여 원활한 훈련은 물론 대회 참가도 가능해졌다. 안 감독은 벌써 14년째 시각장애인마라토너들을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있다. VMK 회원들에겐 단순히 운동을 가르쳐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후견인 같은 존재다.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사명이라 생각하고 지도하하고 있어요. 예전엔 혼자 고군분투 했는데 점차 자원봉사자들이 늘어나서 지금은 많이 수월해졌죠. 시각장애인, 특히 앞을 전혀 못 보는 전맹들이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가이드러너가 반드시 필요한데, 자발적인 봉사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재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은 ‘빛나눔동반주자단’을 직접 조직해 운영 중이다. 가이드러너로 봉사하고자 하는 러너라면 누구나 자기 여건에 맞게 참여할 수 있지만 반드시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처음 참여하는 봉사자는 시각장애 체험을 먼저 한 뒤 매뉴얼 숙지와 현장 교육을 통해 가이드러너가 된다. 처음엔 베테랑 시각장애인 러너의 가이드를 하면서 동반주 요령과 감각을 익혀가는 식이다. 아직 숙련된 가이드러너가 부족하지만 매주 30여명 이상이 참여한다. 훈련에 참가하는 시각장애인 수를 대체로 상회한다.

마스터스 여성 최고수 중 한 명인 김영아 씨(43)는 빛나눔동반주자단의 최고참 가이드러너다. 안기형 감독을 도와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의 코치도 겸하고 있다. 단골 입상권 주자가 주말마다 가이드 러너로 봉사하는 것은 분명 기량 유지에 방해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김영아 코치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각장애인 러너들은 거의 매번 가이드러너가 바뀌어요. 늘 다른 주자에게 적응해야 하니까 불편하고 넘어질 위험도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늘 가이드러너를 믿고 달려줍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신뢰받는다는 것은 신기록을 작성하는 것 이상으로 멋진 경험이에요. 그러니까 가이드러너가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1일 서울 중구 남산 산책로에 모인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회원들이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 중구 남산 산책로에 모인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회원들이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과 빛나눔동반주자단 50여명은 오는 5월 13일 본지가 개최하는 여성마라톤대회에 초청 팀으로 참가한다. 국내 최고 권위의 우먼 레이스인 만큼 여성회원 대부분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독자가 있다면 서로의 팔을 끈으로 연결하고 달리는 아름다운 동행에 힘찬 응원을 보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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