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도 군대 가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논쟁 차단하는 ‘군대 드립’

 

애인, 아내 군대 가도 박수칠까

성평등 목소리 틀어막으려고

군대 이용하는 건 아닐까

 

지난해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EBS의 ‘까칠남녀’는 피임이나 더치페이, 맘충 등 한국사회의 젠더 문제를 다루겠다는 야심찬 의욕으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첫 회 주제는 “왜 여자만 겨드랑이 털을 깎아야 하는가?”였는데, 패널 중 한 명인 서유리씨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언론에 따르면 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전까지는 안 바란다. 그냥 성이 평등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난 군대에도 갈 수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까닭은 뭘까?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이 그보다 더 힘들게 사는 여성에게 “남자로 사는 게 힘들구나!”라며 넋두리를 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군대 얘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상에서 남녀 간의 대립이 있을 때마다 남성들은 “여자도 군대 가라!”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여자에게 집중된 가사 분담이 문제가 되면 “여자도 군대 가라”고 하고, 더치페이에 관한 기사가 나오거나 한국남성이 애보는 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라는 통계가 나와도 같은 말을 했다. 심지어 여자가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때처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기사에도 남성들은 그런 댓글을 달았다. 이 말은 모든 논쟁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군대를 안 간 여성들은 여기에 대해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임신과 출산을 들이밀며 저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어떤 난산도 군대의 고통에 비할 바가 없다는 남성들의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계속되는 ‘군대 드립’에 질려버린 일부 여성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군대 때문에 이렇게 핍박을 받을 거면 차라리 여성도 군대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군대도 사람 사는 곳, 떳떳하게 군대에 간 뒤 남성들에게 집안일도 반반 하자, 임금도 남자랑 똑같이 달라고 같은 요구를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익이 아니겠는가? 서유리씨의 말도 아마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으리라.

그런데 남성들은 정말로 여성이 군대에 가는 것을 원할까? 만일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다. 국방부에 몰려가 시위를 할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터넷상의 댓글만 보면 1000만명의 서명을 받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데, 이렇게 남성들의 힘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이에 놀란 대선 후보들이 ‘여성 징병제’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을까?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고, 이런 게 다 귀찮다면 헌법소원을 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14년 한 남성이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남성의 신체가 전투에 더 적합하다”며 현 제도가 합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헌법소원에 참여한다면 헌재의 판단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남성들은 희한하게도 여성 징병제 주장을 인터넷상에서만, 주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0여년간 계속된 “여성도 군대 가라!”를 듣다보니 그들이 이 구호를 그저 수사적 의미로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여성들이 성평등에 관해 목소리를 낼 때마다 그걸 틀어막기 위해 군대를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성들이 “우리도 군대 갔다 왔으니 집안일 반반하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군대에 다녀온 여성들이 “뭐야? 군대 생각보다 힘들지 않은데”라는 말을 하기라도 한다면 수십년간 남성들이 쌓아온 허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

낡은 통계이긴 하지만 여성의 56%가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 반면 남성은 24.9%만 찬성했다는 2005년 기사를 보면 위에서 제기한 의심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여성혐오가 한결 심화된 지금은 남성들의 찬성 비율이 더 높게 나올 수 있지만, 과연 남성들이 애인이나 아내가 군대에 간다고 할 때 박수를 칠 수 있을지 상상이 잘 안 간다.

군대가 힘든 건 나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남성들이 군대에 대해 학을 떼는 것도 사실은 군대가 너무 힘든데다 그에 걸맞은 혜택도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애꿎은 여성에게 군대 가라고 징징대기보다는 더 나은 군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이치에 맞다. 징병제 대신 모병제를 하자고 하거나 월급을 현실화해 목돈을 가지고 제대할 수 있게 한다든지, 찾아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서유리씨, 군대 가실 필요 없어요. 남성들이 괜히 해보는 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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