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자 선정에 좀더 신중해야

텔레비전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군사정권시대의 영향으로 일방적인 상명하달식 문화가 남아 있는 현실에 비추어, 이는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하여 바람직한 현상이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연출력이 개입될 소지가 적고, 토론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생방송이면 더욱 그렇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토론자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프로그램을 통하여 토론자는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는 전파자임과 동시에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절차의 실행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자의 역할은 두말 할 나위 없이 크고, 토론자의 토론에 임하는 자세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나타나는 토론자들의 자세를 보면 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부족한 점이 있다. 2월 8일 방송된 <길종섭의 쟁점토론> 을 예로 들면, 먼저 사회적 의제로 설정된 토론주제에 대해 사전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다. 토론에 임할 때에는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 정리 이외에 상대방의 의견도 예측하고 준비해야 함에도 “그건 누구 판단이에요?”라고 하거나 사실에 근거한 방청객의 의견도 “막 그냥 과장해서 말하지 말라”며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해야 자신의 의견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도 한다. 그 결과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여 합의 도출은커녕 의견의 논리는 조금도 진전돼지 않고 있다. “어린이와 임산모의 건강에 나쁜 흡연”, 화장실 흡연자의 비애, 국가보안법은 “사회의 보험적인 보루”라는 의견 등 토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발전하지 않고, 시종 같은 주장만 거듭하기도 한다.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절차의 실행자로서의 역할도 부족하다. 토론에서는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말하는 중간에 끼어들어 상대방 토론자로부터 “나에게도 말할 권리를 주세요”, “글쎄 좀 기다려 보세요, 성급하게 그러시지 말고…”와 같이 상대 토론자의 지적을 받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또 “그런 논리로 하면 안돼”처럼 상대방의 의견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도 무시하는 듯한 반말과 이따금 보이는 삿대질은 토론의 예의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러한 토론자세는 토론문화의 미성숙 탓이기도 하지만, 상대 토론자만을 의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론자는 상대 토론자 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설득해야 한다. 시청자는 양쪽 의견을 다 듣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던가 방송에서 지켜야 할 예의를 잊는다면 자신의 의견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자도 토론자 선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토론절차를 통한 주제전달과 민주시민의 관계는 밀접하기 때문이다.

윤혜란/ 21세기여성미디어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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