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고리 아무도 신경 안 써”

왜 노약자석에 앉기 어려울까

지하철 스티커에 그어진 X자 표시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서 있던 자리가 노약자 지정석 앞이었는데, 그 자리를 표시하는 스티커의 임신부에게 X자가 그어져 있다. 신기해하는 아내에게 설명을 해줬다. “이게 바로 여혐의 증거야.”<사진 1, 2>

몇 년 전, 지하철 노약자석을 주제로 한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프로그램 중 나이든 분과 임신부 중 누가 더 약자인지 묻는 코너가 있었는데, 연구결과는 내 예상과 달리 임신부가 10배쯤 더 힘들단다. 나이든 분들이 다 같은 것도 아니고 임신부도 다 다를 테니 이것만 가지고 결론을 내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임신부가 노인에 필적할 만큼 힘들다는 데는 다들 동의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가 아주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만삭이 아닌 바에야 그냥 배가 나온 것과 임신한 사람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서울지하철에선 산모수첩을 내면 임신부고리라고, 분홍색으로 된 큰 고리를 나눠주는데, 이걸 꺼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냐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14주차 임신부는 인터넷에 “임신부 고리를 봐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역시 큰 도움은 안되는 듯”이라고 수기를 올렸다.

그런데 이 글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노약자석은 무서워서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왜일까. 노약자석은 그 이름 때문인지 나이든 분들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미담이 만들어진다. “경찰이 과천역 인근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가던 임신부 A씨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폭행한 70대 노인 B씨를 검거했다.” 참고로 A씨는 임신 27주였으니 임신한 걸 알아볼 수 있었을 테지만, 노인 B씨는 막무가내였다. 언론에 따르면, B씨는 “‘임신한 게 아니면서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확인을 해야 한다”고 A씨의 임부복을 걷어 올리기까지 했고 곧이어 임신부 A씨의 부른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A씨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여혐 세력은 임신부들이 임신을 빌미로 노약자석을 점거하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스티커에 그어진 X자 표시를 보면 그 자리에 앉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고육지책으로 서울시가 만든 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가끔 지하철을 보면 좌석 맨 끝자리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좌석이 눈에 띄는데, 그게 바로 임신부 배려석이다.

색깔도 그렇지만 좌석 앞바닥에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니,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자리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한량에 두 개뿐이긴 해도,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임신부들에겐 ‘가뭄에 단비’다. 이제 임신부들의 고생은 끝난 것일까? 기뻐하기 이르다. 지하철을 꽤 탔지만, 그 자리에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이 앉아 있는 걸 본 경험은 드물다. 오히려 건장한 남자일수록 그 자리를 좋아했다. 혹시 분홍색에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닐까? 거기 앉아 있는 승객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비워놓는 건 비효율적이니, 일단 앉아 있다 임신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는 거 아니냐?”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많은 듯하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임신부가 자리를 양보받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느라 앞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렵게 자리 양보를 부탁해도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임신을 하면 개인으로 봐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몸도 힘든데다 직장에서 눈치 보이지, 몸매 망가지지, 좋을 게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임신을 하는 건 사랑하는 부부의 결실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임신부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좀 해달라는 건데, 그것마저 우리 남성들은 들어줄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훨씬 더 심각해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갈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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