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캠퍼스] 

‘대학’과 ‘성폭력’, 낯부끄러운 조합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중이다.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신입생 환영회, OT, MT, 단톡방 등에서 성희롱·성추행·성폭력 사건 발생 소식이 들려온다. 학생회와 학교 본부가 사건을 은폐하거나 불성실하고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최동준 기자 = 대부분의 대학가가 개강한 3일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15.03.03. ⓒ뉴시스·여성신문
최동준 기자 = 대부분의 대학가가 개강한 3일 서울의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2015.03.03. ⓒ뉴시스·여성신문

■ 서강대, 학생회가 성희롱 사건 1년간 쉬쉬

가해자가 학생회 승인 하에 신입생 커뮤니티 활동

서강대에선 모 학부 학생회가 학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1년간 쉬쉬해온 일이 최근 드러났다. 학생회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3월께 바로 사건 처리 절차에 나섰다. 그러나 사건 처리 경과 발표도, 징계도,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등 구체적인 2차 피해 방지 노력도 없었다. 피해자조차 아무것도 모른 채 1년이 흘렀다. 그간 가해자 둘은 군대에 갔다. 1명은 가해 사실을 부인했다. 학생회는 피해자에게 뒤늦게야 이를 알린 후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이미 학내에선 유언비어 등 숱한 2차 가해가 발생한 후였다.

지난 1월에도 서강대에선 과거 성폭력 사건 관련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발생한 모 학과 ‘단톡방 성희롱’ 사건 가해자들이 새내기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학내에선 ‘가해자들이 반성 없이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일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카페는 학생회 승인을 거쳐야 가입할 수 있어, 학생회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한편, 해당 학부 학생회는 지난해부터 ‘단톡방 성희롱’ 사건 조사와 분류, 가해자 징계와 사과문 발표 등 처리에 나섰다. 모 학과 학생회장은 피해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2차 가해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올해 초 사퇴했다.

■ 건국대, 신입생 OT 성추행 사건 발생해

학생회장이 피해자에 사건 은폐 종용 ‘2차 가해’

건국대 상경대에선 최근 신입생 OT 준비 과정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앞서 지난달 17일 건국대 상경대 새내기 기획단 모임 회의 이후, 회식 자리에서 남학생 A(26)씨가 여학생 B(21)씨의 가슴을 만지고 성추행했다. 피해자는 상경대 학생회 측에 이를 제보했으나, 학생회장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원래 술 좀 먹으면 그런 오빠야”라고 말했다. 또 “너에게 2차 피해가 갈 수도 있는데 이 게시물을 꼭 올려야 하느냐”며 “작년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게시물을 올린 학우는 자퇴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번 사건 공론화로 인해) OT, 새터가 없어질 수 있다”며 사건 은폐를 종용하는 발언을 했다. 

B씨의 언니는 이러한 내용을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 알렸고, 상경대 학생회는 진상 조사에 나섰다. 학생회장은 자신의 부적절한 대처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다. 건국대 양성평등상담실과 학교 본부도 사건 처리 절차에 착수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정하기 위한 징계위원회가 구성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도 이 사건에 관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건국대에선 지난해에도 모 단과대 신입생 OT에서 재학생들이 ‘25금 몸으로 말해요’ 등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게임을 진행해 물의를 빚었다. 건국대 측은 학생회가 주관하는 교외 OT, MT 등 행사를 전면 금지했다. 이번 상경대 OT도 전면 취소됐다. 

■ 서울과기대 교수, 성희롱 정직 후 강단 복귀

“권력 관계 악용한 성범죄자 조속히 사퇴해야”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최모 교수는 학생 10여 명을 성희롱해 지난해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는 올해 1학기부터 다시 강단에 선다. 학생들은 반발하며 “최 교수의 사퇴와 학과 및 학교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최 교수는 2015년 4월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여학생에게 3개월간 성희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학생을 모티프로 쓴 시’도 보냈다. “그녀는 엉덩이가 전부다. 엉덩이로 생각하고 엉덩이로 꿈을 꾼다. 엉덩이로 말을 하고 엉덩이로 사랑할 줄 아는 히아신스...” 

학과 내 진상조사 결과, 최 교수가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 직접적으로 성희롱한 학생만 10여 명이었다. 안마를 강요당한 학생도 있었다. 학교는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2월 최 교수에게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최 교수는 “문학적인 소통”일 뿐이었다며 성희롱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징계가 과하다며 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교내 심의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정직을 마치자마자 돌아온 최 교수는 이번 학기 교양필수 과목 등 세 수업을 맡는다. 학생회에 따르면 문창과 신입생 대부분은 해당 과목 수강을 포기했다. 

서울과기대 여성학회 ‘RightS’는 지난 9일 학내에 붙인 대자보에서 최 교수의 사퇴와 학교의 조속한 조처를 촉구했다. 이들은 “최 교수의 행위는 기성 문인-습작생, 교수-학생이라는 관계에서 본인의 기득권을 사용한 범죄 행위”라며, “학과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해당 사건을 학부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지도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학생의 수는 적다”고 지적했다. 

■ 연세대, ‘남톡방 성폭력’ 사건 공론화

“학생사회 내 강간문화 없애자”

연세대에선 최근 모 학과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같은 학과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6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붙은 ‘모 학과 00학번 남톡방(남자 단체 카카오톡방) 내 성희롱을 고발합니다’라는 익명의 대자보는 “OOO은 주먹(주면 먹는다)과 주절먹(주면 절하고 먹는다) 사이에 있지 않음?”, “OOO 성격에 OOO 얼굴에 OOO 가슴이지 병신아”, “OOO면 108배 하고 먹는다” “유방에 관한 한 OOO을 따라올 자가 없다. 다른 여자애들 f5급 급이라면 OOO는 랩터급” 등 단톡방에서 오간 발언을 공개했다. 이 단톡방에선 ”동기 여학생의 실명을 거론한 성희롱이 2년 이상 지속해서 자행됐다”. 

“한 남학생의 자기반성적 페이스북 글로 우연히 단톡방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주요 발언자들은 증거인멸과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한 남학생은 본 사건을 ‘동기간 사소한 다툼’ 정도로 치부하며 피해 여학생에게 단톡방 주요 발언자와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거듭 제안하는 등 2차 피해도 가했다”. 

대자보를 쓴 이들은 “저희는 단순히 그들의 ‘인성’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여성혐오를 통해 구축되는 남성 동성 사회와 그것을 친밀함의 권력, 연장자의 권력 아래에 대물림하고 있는 학내 전체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총여학생회도 지난 10일 이를 지지하는 입장문을 내고 “학생사회 내 강간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강간 문화란 강간이 만연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미디어나 대중 문화에서 용인되거나 정상으로 간주되는 환경을 뜻한다.

■ 고려대, 학생회 간부, 몰카 범죄로 입건

“이번 사건, 개인 일탈로 치부하지 않아”

지난해 고려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 당시 가해자 처벌에 앞장섰던 학생회 간부가 최근 같은 학교 여학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서울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고려대 재학생 A씨는 지난달 19일 지하철역 안암역 계단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됐다. A씨는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지난해 6월 고려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생의 실명을 거론하며 외모 비하·성희롱 발언을 나눈 일이 알려졌을 때, 가해자들의 처벌을 주장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고려대 정경대학 학생회는 지난 7일 “이번 사건을 단순히 한 학우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있지 않다. 우리 학생회는 가해자가 정경대 공동체의 일원이자 작년까지 우리 학생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요지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내 양성평등센터와 법원 처벌 과정에서 피해자 지원, 법률·심리상담전문가 연결, 학생회·피해자대책위원회·학교유관기관 공조 체계 마련, 기존 성인권침해 대응 매뉴얼에 따른 엄정한 징계 및 매뉴얼 점검도 약속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학생회 간부 입후보 시 성인권 교육 프로그램 이수 의무화, 새내기새로배움터 성인권 교양시간 확대 편성, 몰래카메라 탐지기 구매 및 상시 탐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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