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처장 시절에 심상정은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지금은 ‘심블리’(심 대표의 성인 ‘심’과 ‘러블리’의 합성어)라는 애칭이 낯설지 않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516호. 문 앞에 심 대표가 문 틈 사이로 환한 미소를 짓는 사진과 “어서와, 심블리는 처음이지?”라는 문구가 적힌 홍보물이 부착돼 있다. ‘편히 들어와요. 해치지 않아요’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심크러쉬’라는 문구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의 팬클럽 이름이 ‘심크러쉬’다. 

경기도 파주 생. 2남2녀 중 막내다. 그는 “우리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성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아들, 딸을 감별하는 집이 많았다는 얘기다. 부모님이 오빠들 교육에 매달리느라 딸인 그는 스스로 알아서 컸다. 시골에서 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사왔다. 늘 말이 없고 존재감도 거의 없던 아이였단다. 명지여고를 거쳐 서울대 입학. 1980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총여학생회를 만들었다. “당시 여학생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운동권에서도 여학생이 부차화되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3학년 때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미싱사로 일했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으며 9년간의 수배 생활로 최장기 여성 수배자가 됐다. 이 사건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선고 공판이 있던 날 그는 만삭의 몸이었다. 뱃속에 있던 우균이가 이제 스물넷, 대학 4년생이다. 

2003년 민주노동당에서 정치인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의원이 된 후 최우수 국회의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혁신안 부결 후 창당된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맡았고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을 창당해 공동대표가 됐다. 19대 총선에서 야권단일후보로 고양시에서 170여 표 차로 당선돼 수도권의 첫 진보정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이 됐다.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이후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3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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