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지당 대표 김은지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엄마들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정치를 해 나가겠다 ”

 

‘엄마들이 지지하고 엄마들을 지지하는’ 엄지당 준비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은진(54)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엄마들이 지지하고 엄마들을 지지하는’ 엄지당 준비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은진(54)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엄마들이 지지하고 엄마들을 지지하는’ 엄지당이 지난 2월 27일 창당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모임을 열었다. 이틀 전인 지난 2월 25일 청년당이 1000명 규모의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대회를 개최한 직후여서 엄지당은 촛불정국 이후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국민적 열망 속에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엄지당 모임의 발단은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김은진(54)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강연에서 비롯됐다. 김 교수는 농업 관련 법과 제도를 연구하면서 먹거리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를 알리는 강연을 해왔다. 평소 아이들의 먹거리를 고민하는 엄마들이 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사회 문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고,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정당 설립까지 갈 길은 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한 만큼 실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다음은 김은진 대표와의 일문일답.

- 엄지당이 지향하는 바는?

세상에 다양한 엄마들이 있지만 명백한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이 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해결을 위해 요구안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엄마만이 아니라 이같은 취지를 공감하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엄마’라고 구별짓기 위한 게 아니라 현실의 문제의식을 가장 먼저 고민하는 사람들, 가장 가까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상징한다.

- 엄마를 중심축으로 창당한 이유는?

전국에 강연 다니면서 엄마 수십만 명은 만났을 거다. 엄마들과 얘기 나누다보니 우리나라가 사회구조적 문제를 교묘한 방법으로 개인의 선택, 개인의 책임으로 문제를 떠넘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부를 못해도, 아이가 일탈행위를 저질러도, 아이가 아토피여도 이 모든 게 엄마 책임이다. 2000년대 들어 아이의 70%가 알러지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사회구조와 환경의 문제인데도 그 모든 것이 엄마 탓이다. 결국 경제적, 시간 여유 있는 엄마들은 그것 고치려고 온갖 좋다는 거 다 한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엄마들 간 갈등도 생겼다. 교묘한 방법으로 계층 간 갈등, 집안의 능력 갈등을 조장하는 거다. ‘너의 책임’이라고 떠넘겨졌던 문제에서 출발하자고 생각했다.

-현직 로스쿨 교수이고 사회적으로 발언 기회도 많은데, 굳이 엄마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이유는?

저는 10년 전 로스쿨 붐이 일어났을 때 교수가 됐다. 당시 법대 여교수 비율 10% 맞춰야 해서 여성법학자들이 임용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시간강사하며 애 맡기고 찾고 종종걸음 치며 살았다. 시어머니랑 같이 살았는데 애를 안 봐주셨고 집안일도 내 몫이었다. 당시 남편도 소득이 거의 없어 생활비도 내가 책임졌는데 시어머니는 3대독자인 남편 편만 들었다. 말로 다 못할 얘기다.

지금 아들이 25살, 딸 20살이다. 내가 아이를 낳던 당시에는 내 아들은 군대 안가는 세상을, 내 딸은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 당당히 대접 받는 세상을 꿈꿨다. 그러나 변한 게 없다. 내가 뭐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엄마들도 누구보다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 20년 후 돌아봤을 때 내가 뭐했지, 라고 할 것이다.

 

‘엄마들이 지지하고 엄마들을 지지하는’ 엄지당이 2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창당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개 모임을 가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엄마들이 지지하고 엄마들을 지지하는’ 엄지당이 2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창당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개 모임을 가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저출산의 문제는 무엇이라 보는지.

80년대에 여성운동이 굉장히 활발했다. 당시 여성의 대학 졸업과 사회 진출이 늘었는데 회사에서 여전히 커피 심부름을 했다. 또 집안에서는 맞벌이를 하다보니 가사노동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장 남편과 가사분담 얘기했지만 귓등으로도 안들었다. 가정 내에서 해결이 안되면 마을이나, 지방정부, 국가가 나서야 하지만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 문제를 전기밥솥, 청소기, 세탁기, 사교육 등 교묘한 방법으로 자본, 돈, 기업에 의존해서 해결하도록 사회가 만들었다. 능력있는 여성은 사회생활해서 돈으로 해결하는데, 집에서 살림하면 무능한 여성으로 비쳐지게 됐다. 그럼에도 나머지 남은 문제가 육아다. 그건 기계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맡기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대한민국은 애를 낳지 않는 사회, 가족 해체가 됐다. 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엄마들 문제라 생각한다. 엄마들이 더 시간에 쫒기고 부지런하고 엄마들이 좀 더 하라고 한다.

-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전혀 아니다. 소위 ‘정치혐오자’였다. 정치는 사람이 망가지는 첩경이라 생각했고 당원 가입 한 번 해본 적 없다. 개인이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사회가 바뀐다고 믿었다. 법학자다보니 농업 관련 법을 제안하기 위해 농민 출신이 있는 통합진보당에 법안만 제공하는 정도로 정치권과 교류했다. 법안을 작성하고 넘겨주면 나머지 일들은 정치인이 알아서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진당이 없어지면서 농민 대표자가 사라졌다. 의지할데가 없어졌다고 아쉽고 안타까웠는데, 어느 날 ‘내가 왜 의존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포럼도 열어봤는데, 남성성으로 상징되는 거대담론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 기본을 지키는 삶을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진짜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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