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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취향의 가요순위 프로는 다양한 음악을 들을 기회 자체를 봉쇄한다.

10대 위주의 발라드·댄스 음악 일색

순위차트로 가요음반 소매물량 결정

제작자와 방송사의 커넥션 의혹

시민단체와 대중음악계 일각에서 TV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에 나선다. 이유는 가요 순위프로가 대중음악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매체문화개혁위원회에서는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한국 대중음악의 기형적 구조를 확대한다면 이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며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연중포럼과 캠페인을 벌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8일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릴 포럼에는 대중음악계와 문화계, 학계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우리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을 짚어볼 예정이다.

현재 TV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KBS, MBC, SBS 등 공중파 방송 3사에서 모두 방송하고 있다. KBS의 <뮤직뱅크>, MBC의 <음악캠프>, SBS의 가 그것으로 이들 프로는 한때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신설됐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는 “우리 대중음악을 살리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그 혁명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단언한다. 거대공룡인 TV가 시청률을 빌미로 수용하지 않는 음악은 고사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대중음악의 다양성은 말살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화연대 사무차장 이동연 씨는 “방송 순위 프로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무엇보다 순위의 객관성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당연히 폐지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요순위 프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들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음반 시장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는 점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도매상들은 이들 프로의 순위 차트를 보고 소매상에 보내는 물량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공영방송인 KBS, MBC마저도 특정 음반의 직접 광고를 해주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 위반의 측면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세 제작자와 방송사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이에 대해 KBS <뮤직뱅크> 연출자인 류찬욱 PD는 “근거없는 얘기”라고 일축하면서 가요순위는 공정한 기준에 의해 매겨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가요순위는 순위 프로그램에 등록한 곡을 대상으로 투표인단의 투표와 PD에 의해 매겨지는 방송 기여도, 방송출연 횟수 등을 근거로 순위를 정한다”고 말했다. 또한 “순위가 공정하지 않으면 곧바로 엄청난 항의가 쏟아진다”며 이 프로가 10대를 타깃으로 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결국 이 프로 순위의 공정성은 10대들의 취향으로부터 담보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주 (1월 말) 각 방송사 순위 프로의 상위에 랭크된 임창정, god, SES, 김장훈 등은 모두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이었으며 곡들도 발라드와 댄스에 치우쳐 있었다.

이동연 씨는 “만약 10대들을 위한 프로가 필요하다면 이와는 다른 방식의 프로를 생각해야 한다”며 순위 프로의 치우친 장르적 편향은 다른 세대들의 다양한 음악을 들을 기회 자체를 원천봉쇄한다고 지적했다. 임진모 씨도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댄스와 발라드라는 장르적 편향보다 큰 문제는 방송사의 스타 메커니즘이 좀처럼 새로운 음악 흐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최근 중국권 국가들에서 우리 가요 열풍은 대단하다. 그만큼 우리 대중음악이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양성이 없는 문화는 금방 시든다. 100만장 이상 팔리는 몇몇 가수의 앨범보다 독특한 색깔로 꾸준히 팔리는 음반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 가요 현실에 절실하다. 한때 4500억을 상회하던 연간 음반 시장이 현재 3000억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외형상 커진 우리 대중음악계의 거품을 실감하게 한다.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는 대중문화 성장의 근간이 된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보다 내실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중가요 전반에 대한 보다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방송 순위 프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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