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으로 새롭게 떠오른

SNS 내 해시태그 운동 2년 결산 

훌륭한 정치·연대적 방식으로

막강한 여성연대 파워 보여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이 말을 시작으로 2015년 2월 트위터 내에 불어닥친 해시태그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살아남았다 #내가메갈이다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나는_가임여성이다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해시태그 운동은 어느새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른바 ‘넷페미’는 해시태그를 통해 같은 생각과 지향점을 기반으로 유기적으로 연대하면서 막강한 ‘여성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2년 전 패션잡지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 당시 남고생 김모군이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것을 언급하며 쓴 글이었다. 김씨는 해당 칼럼에서 페미니스트를 ‘뭘 말하는지도 모르는 바보들’이라 칭하고, 여성의 권리 되찾기를 ‘밥그릇 싸움’ ‘패거리의 이익만이 담긴 발언’이라고 비하했다. ‘팩트’는 저 멀리 던져둔 채 여성혐오로 가득한 그의 칼럼에 여성들은 분노로 들고 일어섰다.

이때 SNS에 등장한 해시태그 문구가 바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이다. 이 해시태그는 SNS 상 페미니스트 선언 운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증후군’에서 벗어난 이들은 당당히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했다. 해시태그 여성운동의 시초이자 ‘페미니즘 리부트’의 신호탄이었다. 한 남성 칼럼니스트의 ‘아무 말’은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돼 해시태그 운동이라는 거대한 태풍으로 돌아왔다.

이후 개그맨 장동민의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는 발언과 ‘메르스갤러리’ 탄생 등으로 2030 여성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혐’을 깨달았고, 페미니즘을 토대로 언어를 되찾기 시작했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더 이상 본인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게 됐다. 삶의 일부이자 체화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러던 지난해 5월 17일, 강남역 한복판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살아남았다

2016년에도 성별을 이유로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각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언론이 해당 사건에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여성들에겐 ‘묻지마’ 범죄가 아니었다. 여성들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면 내가 피해대상이 됐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너는 나다”라는 메시지 아래 ‘#살아남았다’ 해시태그 추모운동을 벌인 이유다. 여성들은 해시태그를 통해 추모운동을 전개하며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내가메갈이다

지난해 7월, 넥슨 게임 캐릭터 성우인 김자연씨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남성들의 항의로 부당 교체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은 페미니스트를 향한 혐오와 폭력이 용인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너 메갈이지?’를 앞세운 사상검증과 ‘메갈’ 딱지에 분노한 이들은 ‘#내가메갈이다’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김자연씨를 옹호·지지하며 페미니스트 연대를 강화했다. ‘트페미’(트위터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한규동씨는 트위터를 통해 “만약 메갈이 페미 발언하고 내 기분 나쁘게 하는 썅년이란 뜻이라면 #내가메갈이다”라고 밝혔다.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지난해 10월 서브컬쳐와 한국문단 내 성폭력 고발을 필두로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생성됐다. 피해여성들은 각자 일터에서 겪은 경험을 집단적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웹툰·문단·미술·영화·출판 등 분야를 막론하고 무수한 고발이 쏟아졌다. 성폭력 피해당사자들이 ‘피해자화’에 갇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를 뚫고 말하기를 이뤄나갔다는 점은 매우 뜻 깊다. 특히 해시태그 운동 이후 찍는 페미, 페미라이터, 여성예술인연대(AWA), 여성 디자이너 정책연구모임 WOO 등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을 알리고 피해당사자를 돕는 조직적 그룹이 생겨났다는 점도 괄목할 만하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 작가는 “여성들이 특정 직군 내의 문제를 밖으로 폭로하면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있게 됐고, 세분화된 문제해결로 이어질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나는_가임여성이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의 ‘출산지도’에 반발한 여성들은 ‘#나는_가임여성이다’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임신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며, 임신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트위터 내에선 ‘나는가임여성이다’라는 계정이 생겨났고, 여성들은 “포궁(자궁)은 나의 것” “결혼과 임신 및 출산은 내가 알아서 한다. 정부는 관심 꺼라”등의 의견을 전개해나갔다. 여성들의 항의는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져 ‘가임거부 시위’와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행자부의 출산지도는 지역별 가임기 인구수와 출산연령을 전시하고, 인구수에 따라 순위를 매겨 “여성을 출산도구”로 여겼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었다.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가장 최근의 해시태그 운동은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로 드러났다. 한 사진작가가 2015년 ‘여성과 공간’을 주제로 발간한 사진집 ‘자취방’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운동이 시작됐다. “여성의 방을 자신(해당 사진작가)만의 시선으로 담았다”는 사진집은 노출 있는 옷을 입고 몸매를 강조한 여성들로 채워졌다. 실제 혼자 사는 여성들은 각종 성폭력 위협과 불안에 시달리지만, 해당 사진집은 자취하는 여자에 대한 왜곡된 판타지를 부추겨 여성 대상화·성애화를 공고히 했다.  

분노한 여성들은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성범죄 경험 등을 이야기하며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고했다. 밤늦은 시각 혼자 귀가할 때 모르는 남자로부터 겪었던 위협, 배달음식을 시킬 때 느끼는 성범죄 불안 등의 경험담에선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 받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두려운 것”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는_서로의_용기가_될거야

이밖에 ‘#우리는_연결될수록_강하다’ ‘#우리는_서로의_용기가_될거야’ 등 페미니스트 연대를 공고히 하는 해시태그도 존재한다. 특정 사건을 넘어 페미니스트 간의 따뜻한 연대를 드러내는 알림이다. 이제 여성들은 혼자가 아니며, 상호연결을 통해 언제든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이란 깃발아래 모인 여성들은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여성운동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 내 해시태그 운동은 여성연대를 과시할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이라며 “같은 생각과 지향점을 기반으로 유기적 연대가 가능하고 압력적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정치·연대적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해시태그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사에서 중요한 조직화 방식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이어 이 교수는 “강남역 사건 이후부터 많은 여성들은 연대 단위를 꾸리며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었고, 실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며 “온라인 내에서의 움직임이 오프라인으로 옮겨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정치적 의식화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SNS 상에서의 연대나 움직임은 충분히 정치성을 갖고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넷페미니즘을 이용한 새로운 운동 방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경 작가는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는 페미니즘 열풍의 시작이었다”며 “이 운동은 단순히 선언적 기능에서 그쳤다기보다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불러일으킨 중요한 단초”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달고 나옴으로써 ‘우리나라에 페미니스트가 이만큼 있구나’라는 게 확인됐고, 그로 인해 ‘메갈리아’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후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강남역 살인사건이 가시화될 수 있었고 그 흐름이 이어져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고발까지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침체기를 뚫고 페미니스트들이 다시 정체성을 띤 채 공론의 장에 설 수 있게 됐고, 사회·정치적 운동도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이 작가는 “과거엔 온·오프라인이 뚜렷하게 구분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요즘 세대에게 SNS는 하나의 생활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온라인 내에서의 다양한 생각과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고 뚜렷한 사회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어 사회운동으로서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해시태그 운동이란 SNS 상에서 강조하고 싶은 단어나 문구, 문장 앞에 해시태그(#)를 달고 특정 사건을 공론화하는 것으로, 최근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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