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화 파는 ‘생각의 숲’ 함께 걸어요
책과 문화 파는 ‘생각의 숲’ 함께 걸어요
  • 박길자 기자
  • 승인 2017.02.08 18:13
  • 수정 2017-07-09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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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최초로 여성 부사장을 역임한 카피라이터 출신 최인아씨가 책방 주인으로 변신했다. 최인아책방을 낸 그는 “망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삼성그룹 최초로 여성 부사장을 역임한 카피라이터 출신 최인아씨가 책방 주인으로 변신했다. 최인아책방을 낸 그는 “망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강남의 핫플레이스 ‘최인아책방’

지인 150명 추천도서와 북카드 

 

“서재나 살롱 같은 역할 하고파

5년 뒤에 뭘 하고 싶냐고요? 

단단하게 자리잡아 살아남아야죠”

서울지하철 선릉역 7번 출구를 나와 걷다 보면 작은 초록색 간판이 나타난다. 간판도 작은데 글씨는 더 작다. ‘최인아책방’. 붉은 벽돌 건물 오른편 까만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오르니 나무문이 반긴다.

‘책방 마님’ 최인아를 만나다

“여기 서점 맞아?” 아무리 동네서점이라지만 삐걱대는 나무문이라니…. 2017년이 아니라 아주 한참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나무문을 여니 뜻밖에 탁 트인 서점이다. 강남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바로 그 ‘최인아책방’이다.

한두 시간 책방에서 책도 뒤적이고 커피도 마시다보니 바깥의 복잡한 세상사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다. 6000여권의 장서 사이를 오가며 ‘책의 바다’에 빠지느라 정작 인터뷰 시간이 된 줄도 몰랐다. 책방 주인이자 자칭타칭 ‘책방 마님’인 최인아(56)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삼성그룹 최초로 여성 부사장을 역임한 카피라이터 출신이 책방 주인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최 대표와 여성신문의 인연이 남달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는 2005년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을 받았다.

기자와 만난 그는 29년간 일한 제일기획을 떠날 때만 해도 책방 주인이 될줄 몰랐다며 웃었다. 퇴직 후 다시 일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일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학생으로 살겠다.” 1년 실컷 놀고 대학원 지도교수를 만났는데 청강을 권유해 한 학기 들은 후 대학원 역사학과에 정식으로 입학했다.

대기업에서 나름 잘 나가던 그가 왜 은퇴를 결심했을까. 최 대표는 2006년 산티아고 여행 때 “내가 늙는구나” 자각했다며 그때부터 은퇴를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우리 사회는 늙는다는 걸 환영하지 않고, 제가 하던 광고는 특히 더 젊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장르니까 당장 일과 연결지어 생각한 거죠. 나의 경쟁력은 얼마만큼일까. 그런 생각을 줄줄 하다 보니 이게 두 번째 봉우리구나 싶더군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여자라는 봉우리와 부딪쳐서 웬만큼 넘어섰던 그가 늙는다는 봉우리 앞에 가로막혔고, 어떻게 이 도전을 잘 넘어서나 고민하다 다소 이르다 싶은 오십 초반에 은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최인아 대표는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에서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됐다”며 “최인아와 정치헌이 나무 두 그루 심었는데 여러분이 같이 오셔서 생각의 숲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최인아 대표는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에서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됐다”며 “최인아와 정치헌이 나무 두 그루 심었는데 여러분이 같이 오셔서 생각의 숲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명절이면 동네 사랑방 변신

그런데 정작 은퇴한 후 2년쯤 지나니 다시 일하고 싶어졌다. 광고회사를 창업할까 고민하다 방향을 서점으로 틀었다. 지난해 8월 18일 광고계 후배 정치헌씨와 함께 책방을 냈다. 텍스트를 좋아해온 그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싹을 틔운 셈이라고 했다.

최인아책방은 여느 서점과 결이 다르다. 음악회도, 강연회도 열고 명절이면 동네 사랑방으로 변신한다. 명절에 손님들이 케이크나 한과, 과일, 쿠키 등 센스 있는 먹을거리를 손에 들고 마실을 나온다. 각자 하는 일도, 세대도 다른 이들이 모여 재밌게 담소를 나눈다. 최 대표는 “처음 보는 분들이 뻘쭘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얼마나 재밌게 얘기 나누시든지 앞으로도 이런 멍석 자주 깔아야겠더라”며 웃었다.

또 책방을 찾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매달 한 권씩 추천하고, 출판사에 아예 매대도 내줬다. 고객 반응은 뜨겁다. 책방 100일을 맞아 장미꽃 100송이를 보내준 이도 있다. 미혼인 최 대표는 “남자한테도 못받아본 장미꽃 100송이를 책방 내고 받았다”며 웃었다. 

“여기서 책만 팔고 싶진 않았고 문화 콘텐츠를 많이 선보이고 싶었어요. 콘크리트 빌딩 사무실 같지는 않기를 바랐는데 여기를 딱 만난 거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집에 서가를 꾸리고 싶은데 못하잖아요. 서재를 못 꾸리니 이곳에 오시라는 거죠.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모여서 이야기 나누면서 사고의 깊이를 더해가는 살롱 같은 공간으로 키우고 싶었어요. 최인아와 정치헌이 나무 두 그루 심었는데 여러분이 같이 오셔서 숲을 만들어보자, 우리 사회에 그런 메시지를 던진 셈이죠.”

최 대표는 “최인아책방은 생각의 숲”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집단주의 문화에 빠져 있어요. 주류와 다르면 그 생각을 견지하기 힘들어요.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인데 우리는 다양성이 살아남기 쉽지 않아요. 어느 곳이 유망한지 트렌드를 쫓아가기 급급한 것이 안타까워요.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어요. 아는 것이 힘인 시대로부터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됐어요. 자기 생각이 중요한 가치를 만드는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이제라도 깊이 생각하면서 살자는 제안을 하려고 ‘생각의 숲’이라는 이름을 책방에 붙였어요.” 최 대표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책이야말로 다양한 생각과 만나 자신을 넓힐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콘텐츠라는 것이다.

 

최인아책방에는 베스트셀러나 신간이 거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에게’ 등 매대 카데고리가 재밌다. 최인아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최인아책방에는 베스트셀러나 신간이 거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에게’ 등 매대 카데고리가 재밌다. 최인아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책방의 3분의 1에 달하는 1600여권의 책은 지인들의 추천서로 채웠다. 한 권 한 권마다 ‘북카드’가 꽂혀 있다. 추천인이 책 추천 이유와 자신의 프로필을 손글씨로 쓴 카드다. ⓒ이정실 사진기자
책방의 3분의 1에 달하는 1600여권의 책은 지인들의 추천서로 채웠다. 한 권 한 권마다 ‘북카드’가 꽂혀 있다. 추천인이 책 추천 이유와 자신의 프로필을 손글씨로 쓴 카드다. ⓒ이정실 사진기자

“겁나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

반년도 채 안 된 책방의 성적표는 어떨까. 연초 송인서적 부도로 출판계가 뒤숭숭하다. 최 대표도 “겁이 났다”고 했다. 그래도 세상과 타협할 생각은 없단다.

최인아책방에는 베스트셀러나 신간이 거의 없다. 경제, 문학, 에세이같이 분류별로 서가가 꾸려 있지도 않다. 책방의 3분의 1에 달하는 1600여권의 책은 지인들의 추천서로 채웠다. 그 책들은 12개 테마로 나눠 진열돼 있다.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테마 책장에는 한 권 한 권마다 ‘북카드’가 꽂혀 있다. 추천인이 책 추천 이유와 자신의 프로필을 손글씨로 쓴 카드다.

최 대표는 지인 220명에게 숙제를 내줬고, 그중 150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아 북카드를 만들었다. 누구나 살면서 마주함직한 질문을 12가지 뽑았고, ‘인생의 책’ 10권을 꼽고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12개 주제 중 당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 세 가지를 뽑은 후 각 질문마다 세 권의 책을 선정,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그가 낸 숙제에 제대로 답변한 사람은 19권의 책을 추천한 셈이다.

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책은 1위가 『그리스인 조르바』, 2위는 『코스모스』였다. 위화의 『사람의 말은 빛보다 멀리 간다』도 많이 추천받았다.

책 매대의 카테고리도 재밌다.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에게’ 매대에 이문구 작가의 『우리 읍내』 『나는 너무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가, ‘쟁이들은 어떤 책을 사랑하는가’에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페셔널의 조건』이 진열돼 있다. ‘세상의 큰 흐름’에는 『오가닉 미디어』  『오가닉 비즈니스』  『소유의 종말』  『인공지능 시대의 삶』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에는 『신과 인간에 대하여』   『중년의 배신』이 놓여 있다.

일본의 ‘쯔따야 서점’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최인아책방이 쯔따야와는 다르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고 프로세스가 모델을 찾기보다 생각대로 문제를 푼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즈니스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최인아책방이 벤치마킹한 모델은 없다는 얘기다.

그에게 10, 20년 뒤 모습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우리나라 기업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전형적이지 않아요. 매출이 몇 배가 되고, 어떻게 확장해서 2호점, 3호점을 내고…. 당연히 생각해봄직한데 그것보다는 망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희가 의도한대로 단단하게 자리 잡아아죠. 사람들은 책방이 괜찮은 것처럼 보이고 페이스북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니까 잘돼 가는 줄 아는데 그만큼 단단하게 만들어야죠.”

최 대표는 “10년 뒤 여기 오는 분들에게 여전히 최인아책방이 가볼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며 환히 웃었다. 

 

최인아책방 내부. 6000여권의 장서를 갖췄다. 서재나 살롱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정실 사진기자
최인아책방 내부. 6000여권의 장서를 갖췄다. 서재나 살롱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정실 사진기자

►책방 낸 최인아는

광고계의 유명 카피라이터 출신. 이화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1984년 23살의 나이로 제일기획에 입사해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20대여 영원하라’ 등 수많은 카피를 만들어내며 광고계 최고의 카피라이터로 우뚝 섰다. 마흔이 되기도 전에 삼성그룹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이 됐고 삼성 최초의 여성 부사장으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첫 여성 최고경영자 후보로 거론돼 왔으나 2012년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제일기획 1대 마스터(광고대가)로 뽑히기도 했다. 현재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서울’ 강사로도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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