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일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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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일은 “해금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며 그런 형식의 공연을 통해 조금이나마 국악의 맛을 보여주었던 게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해금을 처음 접한 때부터 전통 속에만 갇혀 있지 않으면서 우리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줄곧 고민해왔던 그는 10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해금으로‘What a wonderful world’를 연주하면서 새로운 계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 가슴 속엔 분노가 많은 것 같아”라는 아홉 살바기 아들의 말처럼 슬픔과 차가운 분노가 해금의 두 줄 현에 엉기듯 흐른다

크로스오버.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으려는 실험들을 그렇게 부른다. 지난번 열린 <情 콘서트>는 그러한 형식의 공연으로 첼로와 피아노, 하프시코드, 해금이 어우러진 무대였다. 특히 해금연주자 강은일의 곡과 연주는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그건 슬픔이 뚝뚝 묻어나던 해금 소리가 그처럼 모던하고 전위적일 수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기도 했다.

그를 눈여겨본 재즈 아티스트 김대환 선생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김대환 선생과의 작업은 음악이 무엇인가, 연주인으로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했다. 그동안 음정이나 리듬 같은 것들에 갇혀 있었음을 알았다”는 강은일은 이후 다른 악기와 만나는 작업을 활발하게 해 나갔다. 소위 ‘크로스오버’‘퓨전’이라 지칭되는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단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치열한 고민은 그의 발길을 섹스폰 연주자 강태환 선생에게로 이끌었다. “강태환 선생이 있다는 건 우리의 자긍심이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그는 소리, 섹스폰, 해금, 거문고, 드럼, 몸짓 등등 서로 다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어떻게 악기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떠한 형식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을 위한 모임인 프리뮤직 ‘상상’이 태어난 것도 이때이다.

“그때서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과의 작업을 통해 알아낼 수 있으리란 그 ‘진실’은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강은일은 이때부터 해금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 공연에서 그가 연주한 ‘회한’은 연주자를 넘어서 아티스트로서 문을 두드린 그의 작품이다. “엄마 가슴 속엔 분노가 많은 것 같아”라는 그의 아홉 살바기 아들의 말처럼 슬픔과 차가운 분노가 해금의 두 줄 현에 엉기듯 흐른다. 지난해 가졌던 <해금 플러스> 공연에서 발표한 곡으로 그밖에 ‘자유’‘방황’‘길’이라는 곡을 더 썼다.

“연주자들이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어도 곡이 없어서 못할 때가 많았다”는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표현해 보고 싶었던 희망을 그렇게 곡으로 드러냈다. 곡의 제목에서부터 그 자신의 음악적 고민이 느껴진다.

그는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게 무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이전과는 달리 해금이 중심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전처럼 다른 악기들과 함께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국악으로 다가가는 진지하고 무거운 음악도 시도해 보려고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음악을 한다는 것 역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힘이 든다는 그는 자신의 음악에 담겨 있는 응어리같은 것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몇백년이 지난 음악만으로는 더 이상 열여덟의 감성을 표현할 수 없다고 느껴 선생님 몰래 해금으로 가요나 팝을 연주하던 ‘발칙한’ 소녀에서 이제 삶의 의미와 그 신산함을 표현할 줄 아는 아티스트로 태어난 그에게 애정 어린 박수를 보낸다.

<강은일은 한양대와 동 대학원에서 국악을 공부한 뒤 KBS 국악관현악단, 경기도립국악단의 해금 수석단원을 거쳐 지금은 다채로운 음악활동을 통해 해금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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