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세상이 유명한 팝 가수나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사망 소식에 떠들썩했을 당시 과학 세계에서는 천체물리학의 거장을 잃는 슬픔을 맞았다. 미국 카네기과학대 베라 루빈 교수가 향년 88세에 세상을 떴다. 우주의 90%를 차치하는 암흑세계(dark matter)의 존재를 증명해 노벨과학상 후보까지 올라간 그의 삶은 과학을 꿈꾸는 많은 세계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남녀차별이 심각했던 1940-50년대 미국에서 자란 루빈 교수는 결코 평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만든 천체망원경 덕에 천문학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는 1960년대는 미국의 저명한 팔로마산천문대에 첫 여성학자로 취직했다. 그러나 출근 첫날 동료 남자 학자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천문대 근무가 힘들 것이라고 겁을 준다. 일도 힘들고 무엇보다 여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루빈 교수는 곧장 하얀 종이에 치마를 그리고 가위로 잘라서 테이프로 남자 화장실 문 앞에 붙이면서 “이제 여자화장실 생겼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천문학으로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프린스턴대는 아예 천문학과에 여성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코넬대에 입학했고 카네기과학대 교수로 지내던 당시 동료 교수와 함께 우주의 암흑세계에 대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천체물리학에 한 획을 그은 루빈 교수가 여성으로 더욱 빛나는 것은 그녀가 받은 차별 대우를 후배 여성들이 받지 않도록 평생을 열심히 노력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많은 후배 여성학자들을 양성하고 지원했으며 여성교수가 없는 대학에는 여성교수를 채용하도록 끈질기게 종용했다는 일화도 많다. 남성 학자들만의 모임인 프린스턴대 코스모스클럽에 여성 학자도 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아 결국 수십 년의 전통을 깨고 남녀를 차별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과학계의 성차별에 대항해 계속 투쟁했고 이러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일생에 이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살아 왔다. 첫째, 어떤 과학 문제도 남자가 풀 수 있으면 여자도 풀 수 있다. 둘째, 전 인류 두뇌의 절반은 여성이 갖고 있다. 셋째, 과학을 하려면 모두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 깊이 녹아있는 이유 때문에 이 허가는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말하자면 과학계가 남성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유는 결코 여성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남성들에게만 문을 열어왔던 과학계 관행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남성들에 뒤지지 않는 과학적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직업군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계에 여성인재가 부족하다고 한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 여성천체물리학자가 주는 교훈은 상당하다. 우리 사회에도 과학계에서 눈부신 업적을 내는 여성들이 많이 있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과학이나 이공계에 진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여성 과학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특히 한국의 대중매체 속에서는 여성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건재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여성이 종사해왔던, 능력보다는 외모가 더욱 중시되는 일부 서비스업 직종들만이 주목 받는 현실은 여전하다.

인간이 자리 잡고 있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궁금한 것은 알아 내야만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열정을 통해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을 이만큼 이끌어 왔다. 스스로를 비롯한 여성들도 이런 숭고한 작업에 참여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한 그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물론 여성 과학자들도 여성 후배 양성을 위해서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학문적 과제를 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도 싸워야 하는 여성 과학자들의 고군분투를 응원할 수 있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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