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 : 사라진 여자’

공효진, 엄지원의 ‘케미’

뻔뻔한 남편, 가부장 시댁

계층 달라도 고통은 같아

 

‘연애담’

여성과 여성의 연애이야기

상처받으며 성장하는 연애

에로스 향해 곧바로 돌진

 

‘휴가’

유년 시절 나를 버린 엄마

장례 치르며 비로소 화해

가난한 싱글맘의 부서진 모성

 

‘미씽 : 사라진 여자’
‘미씽 : 사라진 여자’

2016년은 페미니즘이 만개한 해이자, 역풍도 만만치 않은 시기였다. ‘강남역 10번 출구’로 뜨겁게 달궈졌던 열기는 메갈리아 티셔츠를 거치며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달아오른 담론의 열기는 제도권 정치에서 불어온 찬바람을 맞았다. 힐러리의 패배와 박근혜 게이트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더 수준 높은 논쟁과 실천을 요구한다. 한국 페미니즘은 박근혜 게이트라는 시험대를 거치면서 더 성숙한 현실정치의 실천을 체득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올해 극장가도 페미니즘으로 들끓었다. 상반기 한국영화 ‘아가씨’ ‘우리들’ ‘비밀은 없다’ ‘굿바이 싱글’과 외국영화 ‘캐롤’ ‘서프러제트’ ‘로렐’이 상영되었던 것에 이어 지금 극장가에는 한국영화 ‘미씽 : 사라진 여자’ ‘연애담’ ‘휴가’ ‘야근대신 뜨개질’과 외국영화 ‘어바웃 레이’ ‘줄리에타’ ‘뷰티풀 레이디스’ 등이 상영 중이다.

‘미씽 : 사라진 여자’는 이혼 소송 중인 싱글맘 지선(엄지원)의 집에서 보모일을 하는 중국인 여성 한매(공효진)가 아기와 함께 사라진 사건을 다루는 수사극이다. 영화는 한매를 쫓는 지선의 발자취를 따라, 결혼이주여성이었던 한매가 어떤 가부장적 억압과 자본주의적 착취를 겪어왔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한매의 삶과 중산층 지식노동자 지선의 삶을 포개놓는다. 이들의 계층은 다르지만, 이들이 겪는 고통의 성격은 같다. 지선 역시 뻔뻔한 남편과 가부장적인 시댁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 시스템은 온통 이들의 편이다.

여성의 생계노동은 존중받지 못하고, 비웃음거리가 된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보모의 월급으로 지불하는 지선은 ‘모성이 부족한 엄마’라는 비난과 ‘프로답지 못한 직업인’이라는 비하의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물론 노예 취급을 당하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장기까지 팔아야 했던 한매에 비해 지선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같다.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세계화를 거치면서 인종의 불평등을 타고 흐른다. 즉 돌봄 노동을 남성과 나누는 게 아니라 친·외할머니나 가난한 여성들에게 전가하다 이제는 이주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영화는 육아를 매개로 만난 한국의 중산층 여성과 하층민 이주여성 사이의 감정에 주목한다. 겉으로 보기엔 친밀감,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적대의 긴장이 흐른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모성의 이름으로 연대가 가능할까. 영화의 결말은 질문을 남긴다.

 

‘연애담’
‘연애담’

‘연애담’은 여성과 여성의 연애 이야기를 담는다. 가난한 미술학도 윤주(이상희)는 우연히 만난 지수(류선영)가 일하는 주점에 놀러갔다가 지수와 하룻밤을 보낸다. 32살이 되도록 이성애에 관심이 없던 윤주는 지수와 나눈 하룻밤에 당황하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느낀다. 그러나 지수가 혼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인천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간 뒤 이들 관계는 삐걱인다. 장거리 연애가 문제가 아니다. 독자적이던 지수의 삶이 아버지의 삶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이 진짜 문제다.

지수는 분열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이다. 새끈한 레즈비언이면서, 모태신앙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지수. 그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권 집사가 소개한 남자’를 만나면서 윤주에게 감정적 거리를 둔다. 지수의 집까지 찾아갔다가 기껏 모텔에서 혼자 자고 서울로 돌아온 윤주의 심정이 얼마나 헛헛했을까. 영화는 여성들간의 사랑을 다루면서, ‘창피해’의 경우처럼 복잡한 감정을 우회하지 않고 에로스를 향해 곧바로 돌진한다. 만나고 환희에 들뜨고, 처음 같지 않은 감정에 상처받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 연애가 아니겠는가.

‘휴가’는 힘겹게 살아가는 30대 여성이 어머니의 임종을 맞으러 가는 여정을 담는다. 업소를 전전하며 빚만 잔뜩 쌓인 유나(고원)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있다. 가난한 싱글맘이었던 엄마는 유나를 잠시 버렸지만, 다시 찾아온 유나를 안으며 “다행이다”라며 다독였다. 그러나 유나는 평생토록 엄마의 진심을 의심한다. 버려졌다는 상처는 이후 유나의 삶을 지배했고, 밖으로 나돌았다.

 

‘휴가’
‘휴가’

임종 소식을 듣고 가는 길에서도 최대한 머뭇거리고 겉돌면서 엄마와의 만남을 미루는 유나. 영화는 유나가 빚을 떼먹고 도망갈까봐 업소 사장이 붙여준 보도방 ‘운짱’과 유나의 동행을 보여주며, 유나의 신산한 삶과 끝끝내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며 서걱거리는 감정을 안타깝게 담는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비로소 엄마와 화해하고 자신의 유년을 위로하게 된 유나를 비추는 영화의 간명한 결말은 치유적이다. 영화는 순문학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한편, 중요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빈곤은 그저 생필품의 부족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빚의 무게, 보살핌의 부재, 추억의 결핍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느낌과 낮은 자존감, 엄마에 대한 원망 등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유나의 모습은 보살핌의 사각지대에서 불행이 대물림되는 역사를 보여준다. 모녀간의 애증이라는 개인적 서사에 가난한 싱글맘의 부서진 모성이라는 사회문제가 뇌관처럼 박혀 있는 셈이다.

‘미씽’ ‘연애담’ ‘휴가’는 여성들끼리 반목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성 억압의 구조가 바탕화면처럼 깔려 있다. 영화는 묻는다.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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