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박물관들의 새로운 연대 모색

멕시코 여성연구자들 한 자리에 모여  

 

“여성박물관은 여성의 시선으로 역사·문화 재검토”

리디에 올가 엔탑 캐나다여성박물관장이 IAWM상 수상

 

페트리샤 갈레아나 멕시코여성박물관장이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페트리샤 갈레아나 멕시코여성박물관장이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부터 3일 동안 멕시코시티에서 국제여성박물관협회(IAWM) 5차 회의가 열렸다. 국제여성박물관회의는 여성박물관의 본질을 되묻고, 해당 지역의 상황에 따라 여성박물관의 어젠다를 능동적으로 구축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

여성박물관은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여성박물관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시선으로 역사와 문화를 재검토한다.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 속에서 여성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억압, 그들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생존의 전략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헤게모니 권력관계의 재현으로 기존의 전통적 박물관과 그 전시방식 아래서는 여성이 실종되거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지닌 여성박물관은 198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그 내용과 강조점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2016년 현재 68개의 박물관, 13개의 사이버박물관, 30개의 이니셔티브 등에서 보듯 양적 증가가 이뤄졌다. 2002년 한국에 건립된 여성사전시관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함께 한다.

 

IAWM 국제회의의 하이라이트는 IAWM상 수상자 선정과 기념식이다. 주최국 최고의 후원자에게는 ‘갓마더’라는 명칭이 부여된다. 멕시코에서 열린 5차회의에서 ‘갓마더’는 멕시코 최고의 페미니스트이자 멕시코사회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가 페트리샤 메르카도(왼쪽)이다. 그녀가 올해 수상자 리디에 올가 엔탑 캐나다여성박물관장에게 상패를 주고 있다.
IAWM 국제회의의 하이라이트는 IAWM상 수상자 선정과 기념식이다. 주최국 최고의 후원자에게는 ‘갓마더’라는 명칭이 부여된다. 멕시코에서 열린 5차회의에서 ‘갓마더’는 멕시코 최고의 페미니스트이자 멕시코사회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가 페트리샤 메르카도(왼쪽)이다. 그녀가 올해 수상자 리디에 올가 엔탑 캐나다여성박물관장에게 상패를 주고 있다.

 

IAWM상 수상자에게는 5000유로가 상금으로 주어진다. 5차 회의 수상자 리디에 올가 엔탑 캐나다여성박물관장은 세네갈 출신으로 세네갈 최초의 여성언론인 아네트 므바예 데느빌레 의 조카이기도 하다.
IAWM상 수상자에게는 5000유로가 상금으로 주어진다. 5차 회의 수상자 리디에 올가 엔탑 캐나다여성박물관장은 세네갈 출신으로 세네갈 최초의 여성언론인 아네트 므바예 데느빌레 의 조카이기도 하다.

여성박물관의 국제연대의 필요성은 여성박물관의 양적 팽창과 함께 나타났다. 외형적으로 양적 팽창이 나타났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재정이 부실한 경우가 많았으며, 해당지역의 정치상황이 열악한 경우 여성박물관은 가부장적 억압과 차별에 노출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이탈리아 메라노에서 열린 국제여성박물관회의(IWMC) 1차회의를 시작으로 국제적 연대가 논의됐다.

1차회의 결의안은 ‘여성박물관’의 개념과 공동의 목표를 정의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IWMC가 제시하는 여성박물관네트워크의 가장 큰 목표는 여성의 지식, 역사, 예술을 수집‧기록‧보급하며, 젠더의 역사를 문서화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목표는 그후 2차회의(독일 본여성박물관‧2009년), 3차회의(아르헨티나 여성박물관‧2010년), 4차회의(호주 엘리스 스프링스‧2012년)에서 계속 공유됐다.

올해 5차회의의 주역은 멕시코여성박물관이다. 첫날 개막식은 1730년대 초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바로크식 건물인 옛 의과대학 건물 대강당에서 열렸다. 멕시코의 여성연구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싶을 정도로 회의 참석자가 많았다. 멕시코를 빛낸 수많은 남성 위인들의 초상화들이 가득 에워싼 대강당에서 세계의 여성박물관 관계자들이 모여 열정적으로 논의하는 모습이 큰 대조를 이루었다.

총 20개국이 참가한 회의 개막식에서 멕시코여성박물관 페트리시아 갈레아나 관장 등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녀는 박물관이 과거의 보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하면서 멕시코 여성의 삶을 교육권, 재산권, 문맹률 해소 등 근대성을 성취하는 전개과정과 연결해 설명했다. 여성박물관은 그러한 변화를 재현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첫날 1세션부터 다음날 2, 3세션은 근처의 여성박물관으로 이동해 회의가 진행됐다. 1995년부터 멕시코에서는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박물관을 모델로 해서 멕시코 여성이 겪는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여성박물관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을 기념해 여성박물관이 개관했다. 멕시코여성박물관은 멕시코연방여자대학 부속박물관으로 센트로 히스토리코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포럼, 워크숍, 책전시회, 콘서트, 영화상영 등을 통해 시민 참여를 이끌고 문화를 창출하며 정보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박물관협회 국제회의의 일반적 성격이면서 동시에 5차 멕시코회의의 특징은 여성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강조로 요약할 수 있다. 회의는 이틀에 거쳐 3세션, 즉 ①역사 및 여성박물관에서 여성의 중요성 ②여성박물관을 통한 인권 진흥 ③사회 속 여성박물관의 사회·정치 그리고 사회·문화작업으로 나뉜다. 국제여성박물관회의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개별국가들의 여성박물관이 처한 역동적 상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시아이디어 그리고 세계여성박물관의 전체적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IAWM 신임 이사회 위원들. (왼쪽부터)가비 훌레 독일 피르스 여성박물관장, 모나 홀름 IAWM 신임위원장(노르웨이 여성박물관장), 기계형 역사‧여성‧미래 사무총장, 캐더린 킹 글로벌여성펀드 회장, 리디에 올가 엔탑 IAWM 신임부위원장(캐나다여성박물관장), 일사 발라우리 알바니아여성박물관장. ⓒ기계형
IAWM 신임 이사회 위원들. (왼쪽부터)가비 훌레 독일 피르스 여성박물관장, 모나 홀름 IAWM 신임위원장(노르웨이 여성박물관장), 기계형 역사‧여성‧미래 사무총장, 캐더린 킹 글로벌여성펀드 회장, 리디에 올가 엔탑 IAWM 신임부위원장(캐나다여성박물관장), 일사 발라우리 알바니아여성박물관장. ⓒ기계형

 

멕시코에서 열린 5차 회의에는 총24개국이 참가했다. 첫날 오전 기념식을 끝내고 각국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멕시코에서 열린 5차 회의에는 총24개국이 참가했다. 첫날 오전 기념식을 끝내고 각국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예컨대 망각에 맞선 정치 행위로 과테말라 여성박물관의 역할, 독일 본여성박물관의 여성참정권 관련 전시, 코스타리카 여성예술가 마르가리타 퀘사다 슈미트의 작품세계 분석, 스토리텔링, 미디어, 예술을 통한 여성인권 강화, 국제여성박물관과 여성을 위한 글로벌 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 여성박물관 활동, 노르웨이 낙태와 섹슈얼리티의 역사, 피르스여성박물관의 사례 발표 등은 서로 다른 주제이지만 여성박물관이 어떻게 사회와 만날지 실천의 문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나중에 진행된 워크숍에서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스페인의 마리아 산체스라는 젊은 여성이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혁명과 러시아의 크림병합으로 인한 극한 어려움 속에서 애쓰고 있는 우크라이나 젠더박물관을 돕기 위해 국제적인 후원과 연대조직을 만들고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역사와 문화 속 여성의 존재를 더욱 가시화하는 것은 강한 시민사회의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우크라이나 젠더박물관이 보여주고 있다. 여성박물관은 어떤 전형이 없으며, 해당지역의 주체들이 그것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달려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차기 6차회의는 4년 후 2020년 오스트리아 히티사우 여성박물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우리도 여성사박물관을 건립해 멀리 않은 미래에 국제박물관협회 세계대회를 유치하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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