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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정신지체장애 여성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마을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

강릉 김양 사건 이후 정신지체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2월 노원구에 사는 정신지체장애인 이모 어린이(13)를 마을 어른들이 3년 가까이 성폭행해 온 사실이 교회 주일학교 교사 김태훈씨에 의해 알려졌다. 김씨에 따르면 이모 어린이가 3년여 전부터 어른 20여명과 매주 일정한 날을 정해놓고 ‘연애’를 해왔다고 말했다는 것. 김씨는 이모 어린이가 말하는 ‘연애’란 ‘육체적 성행위’를 뜻하는 것이고 산부인과 검진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현재 장모씨(27), 이모씨(51) 등 피의자 4명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건을 고발한 정태경 목사(열방교회)는 “이 어린이를 성폭행한 사람이 적어도 8명은 더 있다”며 확대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근방에 사는 주민이거나 이 어린이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80세가 넘는 노인도 포함돼 있다.

정신지체 여성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성폭력은 강릉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기보다 사회로 외쳐진 비명의 시작에 불과했다.

경찰 수배자가 피해여성을 재차 성폭행한 김해 사건(여성신문 604호 보도)과 지난 7월 부산 모교회 목사가 교회와 여관 등에서 정신지체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해온 것이 들통나 4년 선고를 받은 사건은 장애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이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현재도 부산에서는 14세 정신지체장애 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온 마을 어른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이나 장애여성의 경우 주위 남성에 의한 집단적인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며 “특히 보호자와 장애인·여성단체 등이 나서주지 않으면 사건 해결은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어머니가 발벗고 나서 주민들과 장애인·여성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든 것이 실형 언도를 가능케 한 요인이라고 부산성폭력상담소는 밝히고 있다.

반면 노원구 이모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경우는 이 어린이의 어머니 또한 정신지체장애 여성이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사건 해결의지가 없어 고발하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부모를 대신해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정 목사는 “고발 이후 가해자 가족들이 이 어린이의 부모를 협박하자 딸을 지지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나무라고 있어 이 어린이를 더 힘들게 한다”고 개탄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이재희 사무국장은 “사회가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수사과정과 재판에서 피해자는 더욱 어려운 위치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신지체장애 여성은 육하원칙에 따른 진술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사 사건의 거의 모든 수사과정에서 장애요인이 된다. 그러나 장애인단체에선 “상황을 명확하게 기억하거나 묘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가’ ‘성폭행 했다’는 진술이 일관된다면 성폭행 혐의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목사 성폭행 사건의 경우는 재판부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라고 피해자의 진술을 인정한 사례다. 그러나 이 판결은 많은 주민들과 장애인·여성단체의 호소와 진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현재 목사 측의 항소로 재심에 들어가 “더 이상 그 얘긴 하기 싫다”며 괴로워하는 피해여성에게 또다시 법원출두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노원구 이모 어린이 성폭행 사건도 정 목사를 주축으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성폭력상담소 등 단체와 연대를 꾀하고 있지만 잇따른 수사에 대해 이 어린이는 “머리가 아프고 살기 싫다”고 말할 만큼 지쳐 있는 상태다.

장애인·여성단체들은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한 정신지체장애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성폭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한다.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약자에 대한 성폭력이 끊임없이 자행되는 사회. 이에 대해 적어도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이 따라줄 때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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