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해에선 정신지체 장애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A씨가 경찰 수배 중에 또 다시 피해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부산·경남지역 40여개 여성·시민단체가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 여성장애인 인권유린과 경찰관의 수사 소홀에 대해 분노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대위에 따르면 9월 27일 피해여성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 사회복지사를 통해 사건이 고발됐지만 내사에 들어간 경찰은 피의자를 앞에 두고 “이 사람이 맞냐?”고 묻는 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도 하지 않았고, 10월 2일 낙태를 시켜 유력한 증거도 잡지 못하게 됐다. 또 6명의 용의자들을 구속하지 않은 채 수사했다는 것도 문제다.

부산 여성장애인연합은 “마을 사람들은 소문으로 이미 성폭행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며 “모두가 정신지체 여성 성폭력의 공범이다”라고 비난했다.

장애여성단체에 따르면 정신지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그 형태나 수사과정에 있어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일관되게 진술하지 못한다는 것과 기억을 못한다는 것, 그리고 시간개념이 없다는 점 등이 수사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수년간 마을 남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온 김명숙씨 사건을 비롯해 정신질환 주부가 귀가 길에 강간치상을 당하고도 설명해내지 못해 기소하지 못한 사건, 정신지체 여자아이가 가게 아저씨에게 상습 성추행을 당했지만 일관성 부족한 진술로 증거불충분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일 등 무수하다. 가해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피해여성이 ‘원해서’ 했다”는 화간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피해여성은 일관적인 진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상당수가 무혐의 처리된다.

이에 대해 성폭력상담소 유은주 간사는 “경찰과 검찰의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의 미비”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장애인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도와줄 전문보호자를 함께 입회시키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이를 아는 경찰관이 드물 정도다. 김해 사건에선 내사에 들어간 경찰관이 성폭행 사건을 그저 ‘상담’ 정도로 치부했으며, 그 이유를 “피해여성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장애여성단체들은 한결같이 “지체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도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심각한 수위일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이들의 경우에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 친척, 시설 종사자, 보조원 등 주변인 대부분이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가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피해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반면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가정과 시설에 매인 몸으로 성폭력 사실을 고발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되고 심지어 생존의 위협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경숙 여장연 사무국장은 “친고죄 폐지 등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된다 해도 무엇보다 타인의 몸과 성을 존중하는 가치가 사회풍토로 자리잡기 전에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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