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치상 혐의 가해자 합의유도 꾀해

여론 피해자 매도·가부장적 시각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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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통신 천리안에 올라온 주병진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게시물들.

유명 연예인의 성폭행 사건이 입건 당시부터 ‘화간설’ ‘꽃뱀설’을 동반하더니 수사과정이 수 차례 언론에 의해 오도되는 등 가해자 중심의 여론을 형성해 가고 있다.

개그맨이자 사업가인 주병진(41)씨가 여대생 성폭행 혐의로 입건돼 23일 현재 검찰이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주씨는 19일 새벽 함께 술을 마신 K씨를 자신의 차 뒷자리에 태우고 성폭행한 뒤 구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술은 마셨지만 성폭행한 일은 없다”고 부인하던 주씨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21일 오후 경찰에 출두했을 땐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20일부터 PC통신과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그 여대생 수상하다”는 이른바 ‘꽃뱀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주된 이유는 “밤늦게 같이 술 마신 것부터가 정상적인 여대생이 아니다”라는 것과 “병원에서 정액을 채취할 정도면 간교한 꽃뱀이다”라는 것. 이러한 여론은 21일 오후 피해자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을 번복했다가 다시 22일 새벽 원래의 주장을 고수했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거의 기정 사실화됐다.

그러나 경찰측의 말은 다르다. 관계자에 따르면 K씨가 “성폭행이 아니다”라고 말을 번복했을 때 무언가 합의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돼 “진술을 번복하면 오히려 당신이 무고죄로 기소당할 수 있으니 사실대로 말하라”고 설득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 K씨는 “주씨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경찰도 “K씨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고 처음 주씨가 피해자에게 합의하자고 제의했을 때 뿌리치고 나온 것으로 보아 금전적인 합의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또 다른 경찰관계자는 “성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자가 처음엔 강력하게 고소를 했다가도 수사과정에서 지치고 궁지에 몰린다는 느낌을 받아 말을 돌리거나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며 “K씨의 경우는 상대가 유명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언론공세를 받아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두 차례의 대질심문 결과 경찰은 “주씨의 태도에서 강간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강간치상 혐의로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차까지 간 경위에 대해 양측의 진술이 엇갈린다”는 것과 “가해자가 제의한 합의가 종용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라”는 차원에서 경찰에 재지휘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각 언론은 피해자 진술에 대한 여타의 정황설명도 없이 “진술을 두 번 번복했다”고만 보도했으며 검찰측 재지휘 지시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오보를 내는 등 가해자에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장윤경 사무국장은 네티즌의 ‘화간’ 논의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장원 사건 때도 그랬듯이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성폭행 피해자를 매장시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정액검출 등 병원진단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응요령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는 부분인데 “꽃뱀이니까 그랬을 거다”라는 시각은 곤란하다는 것. 한 여성네티즌은 “당하고 병원에 가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증거도 확보하지 말라는 말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한편 주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것을 해명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24일에는 주씨 본인이 법원에 신청한 ‘영장실질검사’가 이루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의 오보 때문에 골치 아프다”며 “23일 K씨의 사타구니에 전치 2주 정도의 멍이 있다는 새로운 진단이 나왔기 때문에 주씨가 강간치상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강간치상 혐의는 친고죄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설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해도 형사상 그 죄를 면할 수 없다.

조이 여울 기자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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