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8일 한국여성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 여성학, 전환의 지식’이 광주대에서 개최되었다. 한국 여성학의 지식 생산 구조를 짚어보는 여러 발표가 있었다. 학부생 대상의 여성학 교양 강의, 여성학 전공자의 박사학위 취득 이후 학계 진출에 대한 주제도 포함되었다. 성평등 교육은 1977년 ‘여성학’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2년 후인 2027년이면 50주년이 된다. 1980~90년대 민주화와 여성운동의 성장으로 여성학 강의는 대학에서 인기 교양과목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 내 성평등 교육의 확대는 교수, 연구자, 대학생이 학교 측에 여성학 수업의 개설과 확대를 요구한 결과다.
하지만 현재 대학 내 성평등 교육의 상황은 어떠한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의 시장화로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간주된 여성학과가 폐지되었다. 대구가톨릭대, 상지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신라대, 한양대 등에서 여성학 대학원 교육과정이 폐지되었다. 2010년대 이후 페미니즘 백래시와 반페미니즘의 흐름이 대학 내에 확대되었으며, 최근에는 강고해진 ‘역차별’ 논란이 대학 사회를 흔들고 있다. 대학 당국이 여성학 교양강좌의 수업명을 바꿀 것을 요구하거나 여성학 수업을 수강하면 취업에 불리하다는 소문까지 돌며 수강생이 줄고 있다. 이처럼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학 내 성평등 교육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대학 내 구성원들이 여대생들의 자치 조직인 총여학생회와 여성주의 교지 등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강압적 방식으로 해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폭력적인 분위기로 인해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대생들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거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학내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결국 대학 내 성평등 교육이 남녀공학에서 축소되고 있다. 그나마 여자대학이 주축이 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은 한국 사회의 성평등을 확산시키는 출발점이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금까지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성평등 문화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대학의 역할이 컸다. 학부 과정의 여성학 교양과목이 확대되면서 대학원 과정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거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수가 증가하였다. 여성학 전공자나 페미니즘을 공부한 연구자들이 다시금 학부와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순환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남녀공학에서는 성평등 교육이 예전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역에서 유일하게 독립된 여성학과로 운영된 계명대가 지난 겨울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는다. 또 부산대, 서강대, 서울대, 충남대 등은 협동과정으로 운영 중이다. 여성학 박사학위 취득자 중 일부가 교양대학의 비전임으로 임용될 뿐이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10월 한국 사회의 성평등 진전을 위한 중요한 책무를 안고 출범하였다. 성평등정책 관련 컨트롤타워로서 성평등가족부는 교육부와 협의를 통해 제도화된 성평등 교육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 내 성평등 교육 확대를 위해 여성학의 교양 및 전공 교육, 그리고 연구 등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 진전은 정책 영역의 성평등가족부, 현장의 여성운동, 그리고 페미니즘과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유기적으로 함께 할 때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성평등 교육과정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아낌없이 지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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