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보다 업무로 평가해달라” 공무원 응수 돋보여
현길호 위원장 성인지적 개입…공무원에 발언권 부여
정당 및 여성단체 의원 징계 요구 잇달아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이정엽 제주도의원(국민의힘, 서귀포시 대륜동)이 성평등여성정책관에게 공식 사과하는 모습.  ⓒ제주도의회 인터넷 방송 갈무리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이정엽 제주도의원(국민의힘, 서귀포시 대륜동)이 성평등여성정책관에게 공식 사과하는 모습.  ⓒ제주도의회 인터넷 방송 갈무리

이정엽 제주도의원(국민의힘, 서귀포시 대륜동)이 회기 중 상임위에서 여성 공무원을 상대로 한 외모 관련 부적절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발언이 언론을 통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정당 및 여성단체가 이 의원을 규탄하며 도의회와 이 의원이 속한 국민의힘 정당 차원의 징계를 촉구하고 나섰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10일 열린 도의회 임시회 1차 보건복지안전위원회에서 김만덕상 조례 개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의원은 단상 앞에 서 있는 성평등여성정책관을 바라보며 “여성스러운 가녀린 몸을 갖고 항상 고생을 많이 하시는데”로 운을 떼며 업무 관련 발언을 이어갔다.

정책관은 이 의원 발언이 일단락되자 “이왕이면 업무로 칭찬해주시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웃으시면 더 좋을 텐데”라며 또다시 부적절한 발언을 덧붙였다.

성인지 감수성 지닌 현길호 상임위원장의 개입 돋보여

질의응답이 끝나자 현길호 위원장은 정책관에게 “잠깐만요, 업무적으로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상당히 치열할 수도 있고, 논쟁이 붙을 수도 있다”고 전제한 후 “혹시 질의 과정에서 업무 외적인 표현 때문에 불편함이 있었다면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현길호 보건복지안전위원장이 이정엽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성평등여성정책관에게 별도의 발언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모습. ⓒ제주도의회 인터넷 방송 갈무리
현길호 보건복지안전위원장이 이정엽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성평등여성정책관에게 별도의 발언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모습. ⓒ제주도의회 인터넷 방송 갈무리

정책관은 “외모에 대한 평가보다는 업무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외모에 대한 발언으로 불쾌하셨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앞으로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존경을 표하는 차원으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이라고 단서를 달며 재차 사과했다.

정책관은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면서 “다음엔 그러지 않으실 거라고 믿고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마무리했다.

언론 보도로 정당 및 여성단체 규탄 잇달아

이 일이 지역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더불어민주당 및 진보당 제주도당은 11일 논평을 내 이정엽 의원의 공개 사과와 함께 제주도의회 및 이 의원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이 징계 조치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 제주도당은 “이정엽 의원의 외모 평가와 웃음 강요 발언은 고용노동부 지침에 의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공적 회의장에서 나온 이 의원의 발언은 업무와 무관한 외모 평가와 성희롱성 언사로 성인지 감수성 결여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규탄했다.

진보당 제주도당도 “성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공직자에게 무례하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것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제주도의회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도민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해당 발언을 한 도의원 소속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도당위원장의 갑질·폭행 논란으로 중앙당 윤리위원회에 제소됐고, 성추행 의혹까지 불거져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의원은) 당장 피해자와 제주도민 앞에 공개 사과해야 하며, 도의회는 (이 의원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해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여민회도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여성 공직자에게 가해진 성차별적 언행이자 성인지 감수성 결여의 단적인 사례”라고 규정했다. ⓒ제주여민회
제주여민회도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여성 공직자에게 가해진 성차별적 언행이자 성인지 감수성 결여의 단적인 사례”라고 규정했다. ⓒ제주여민회

제주여민회도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여성 공직자에게 가해진 성차별적 언행이자 성인지 감수성 결여의 단적인 사례”라고 규정했다.

이어 “제주도의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의심케 하는 일은 이번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라며 “2020년에는 모 의원이 ‘동성애자 싫어한다’는 혐오 발언을 했고, 2023년에는 모 의원이 성매매 의혹이 의원직을 사퇴한 바 있다”고 했다.

“도의회 성평등 책무 이행, 재발 방지 대책 공표해야”

그리고 “도의회는 재발 방지 대책을 공표하고 해당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명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되지 않고, 성평등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실질적 변화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도에는 2019년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게 제정돼 시행 중인 ‘제주도의회 성평등 기본조례’가 있다. 이 조례는 “도의회 공직자는 성평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도는 여성친화도시로 3회 연속 선정됐고, 지역성평등지수에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7년 연속 상위 등급을 받은 성평등 도시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한편으론 도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수하고, ‘할 말을 한’ 이은영 정책관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평등 전문가’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의원 면전에서 집행부 공무원이 ‘바른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관에게 불편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이 의원의 사과를 이끌어낸 현길호 위원장의 대응이 돋보였다”는 긍정적 반응도 이어진다.

어느 지역보다 성평등의 가치를 정책과 삶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제주도 집행부와 의회,  건강한 지역 언론과 여성단체 등이 있기 때문에 이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파장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회는 오늘(16일) 2시 폐회식으로 2차 본회의가 열린다. 제주도의회(의장 이상봉) 차원에서 어떤 공식 입장과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도의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회의는 의회 누리집에서 누구나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고, 이전 회의 영상도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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