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 이 글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벗기려고만 하는 시대, 화끈하게 뒤집는다”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당시 충무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남성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 주체의 서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벗기려고만 하는 시대, 화끈하게 뒤집는다”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당시 충무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남성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 주체의 서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전두환 정권의 3S(스포츠·스크린·섹스) 정책의 대표격인 영화 <애마부인>을 소환한다. 하지만 <애마>는 단순히 80년대의 ‘에로영화’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벗기려고만 하는 시대, 화끈하게 뒤집는다”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당시 충무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남성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 주체의 서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작품의 중심은 네 인물의 충돌이다. ‘노출 연기’가 아닌 ‘진짜 연기’를 갈망하는 톱배우 희란(이하늬)과 그런 희란을 동경해 영화계에 발을 들인 당찬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 여배우를 벗겨 돈을 벌 생각뿐인 영화제작사 대표 중호(진선규), 그리고 입봉작을 지키려 분투하는 감독 인우(조현철)까지. 네 인물의 욕망이 부딪히며 극은 거침없이 굴러간다.

희란과 주애는 초반 서로를 ‘썅년’이라 부르며 날을 세우지만, 여성의 몸을 그저 도구로 취급하는 영화판에서 점차 동료 의식을 키워 간다. 희란과 주애는 연대하며 여성혐오가 뿌리내린 영화판에 금을 낸다. 특히 동료 여배우 미나(이소이)의 죽음을 계기로 희란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화계 내 뿌리 박힌 성착취 문화를 폭로한다. <애마부인>으로 라이징 스타가 된 주애 역시 숱한 성희롱에 웃지 않고, 자신 나름의 투쟁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화끈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사이에서 감독 인우에 눈길이 갔다. 중호처럼 악랄하지도, 그렇다고 희란과 주애를 적극적으로 돕는 정배(장남수 역)나 양기자(이홍내 역)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매번 흔들리는 인우였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애마’에서 영화 ‘애마부인’ 연출을 맡은 곽인우 감독. 더 이상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싶지 않은 인우는 ‘여성의 욕망을 여성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를 꿈꾼다. ⓒ넷플릭스 제공

남감독 인우는 여배우 희란과 주애의 연대자가 될 수 있나

어떤 이에게 곽인우는 영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일 수 있다. 다른 남성 캐릭터들이 희란과 주애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그는 나서는 척하지만 결국 권력 뒤에서 늘 숨죽이고만 있었다. 이 모습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하지만 곽인우도 분명 남성문법으로 써온 영화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이다. 더 이상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싶지 않은 인우는 ‘여성의 욕망을 여성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를 꿈꾼다. 영화를 돈벌이 가치로만 보는 제작자 구중호의 반대편에 서서 핍박받고 난도질당하더라도 자신의 영화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감독 인우는 여배우를 벗기라는 구중호의 압박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다. 희란이 ‘벗은 몸’만을 요구하는 영화판에 분노하며 〈애마부인〉의 필름을 불태우려 할 때도 인우는 “아무리 쓰레기여도 제 모든 것이 담긴 제 영화”이기에 필름을 지켜낸다. 결국, 구중호의 손에 편집되어 ‘에로영화’된 <애마부인>은 극장에서 개봉되고 주애는 영화를 보며 모멸감을 느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인우는 희란과 주애의 연대자인가, 아니면 적인가. 인우는 여성의 몸을 관음의 대상으로 삼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중호의 손에서 편집된 ‘애마부인’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인우가 희란과 주애를 응원했다는 마음, 남성 권력에 대항하고자 했던 시도도 분명하다. 이런 지점에서 인우의 망설임 등은 그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인우는 중호와의 협상 자리에서 한발 늦게나마 <애마부인> 오리지널 버전의 상영을 얻어낸다. 이미 에로 영화로 소비된 <애마부인>의 흥행은 인우에게 씁쓸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돈이 아닌,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여성의 욕망을 여성의 관점에서 담은’ 오리지널 버전의 상영 기회를 약속받는다. 여성의 몸을 벗기는 데만 집착하며 돈벌이에 몰두했던 중호와 달랐다. 온전히 여성들의 투쟁에 함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싸우려 했던 그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인우는 중호와의 협상 자리에서 한발 늦게나마  오리지널 버전의 상영을 얻어낸다. ⓒ넷플릭스 제공
인우는 중호와의 협상 자리에서 한발 늦게나마 오리지널 버전의 상영을 얻어낸다. ⓒ넷플릭스 제공

각자의 방법으로 연대자가 되기

곽인우의 이야기는 단지 한 영화 속 감독의 서사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은 곽인우처럼 여성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그 의미를 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나서야 할 순간에 멈칫하거나 주저한다. 연애나 직장, 일상 속에서 여성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그것을 불편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태도가 반복된다. 곽인우의 우유부단함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인우의 오리지널 애마부인 상영의 기회를 얻은 것은 작지만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희란과 주애처럼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영웅이 아니어도 괜찮다. 또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정배나 양기자가 아니어도 좋다.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존중하며 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 또한 하나의 몸짓이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라는 점을 말이다.

결국 <애마>는 1980년대 충무로의 뒷골목에서 시작했지만, 오늘의 이야기다. 곽인우의 흔들림은 남성이라는 자리에 안주했던 우리 모두의 흔들림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을 끝까지 직시하는 용기야말로, ‘벗기려고만 했던 시대’를 진짜로 뒤집는 첫걸음일 것이다. 그 발걸음들이 모일 때,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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