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은 여성에게 있어 요동치는 호르몬의 영향과 생리통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시점이자, 인생의 두 번째 전성기로 향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Pixabay
폐경은 여성에게 있어 요동치는 호르몬의 영향과 생리통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시점이자, 인생의 두 번째 전성기로 향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Pixabay

지난해 본사 출장 중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 저소득층 소녀들을 위한 생리대 키트 봉사활동에 글로벌 회장님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임원 200여 명이 참여했다. 조를 나눠 모두 함께 생리대와 탐폰을 포장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엔 월경이라는 단어조차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여성의 몸 이야기가 금기시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남녀 모두가 청소년의 월경에 공감하고 손을 보탤 수 있다니, 그 변화가 무척이나 반가워 옆에 있던 여성 임원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이제야 이렇게 좋은 시대가 왔는데, 나는 벌써 폐경기(완경기)라 아쉽네.” 그러자 그분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맞는데, 나는 폐경(완경)이 된 지금이 정말 좋아.” 나도 웃으며 답했다. “사실은 나도 그래. 너무 좋아.” 

폐경은 여성에게 있어 요동치는 호르몬의 영향과 생리통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시점이자, 인생의 두 번째 전성기로 향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제 끝났다’는 말처럼, 폐경을 곧 인생에 있어서의 중요한 무언가의 상실로 보는 시선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몸에서 시작된 위기는 쉽사리 마음으로 번진다. 폐경기에는 홍조, 불면 등 신체 증상과 함께 우울감이나 집중력 저하와 같은 정서적 변화[1]로 인해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다. 늘 열정적이던 필자의 한 지인은 폐경기의 신체 증상과 우울감으로 급격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고, 글로벌 기업의 대표였던 선배마저 ‘이쯤에서 서서히 물러나야 하는 건가’란 고민에 빠졌다. 여기에 가정에서까지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는 말을 듣거나, 퇴직 권유 같은 외부 압박까지 더해지면 이제는 서서히 지는 해인가 체념이 들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은 결국 개인과 가정은 물론, 조직과 사회에도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꼭 상기해야 할 것은, 폐경은 상실이나 쇠퇴가 아닌 신체적 안정과 자유로 향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폐경기를 일시적인 다운타임, 즉 몸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치료와 생활 습관을 통해 조율해 나간다면, 우리 폐경 여성은 더 단단한 심신으로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반복되는 불편과 호르몬에 의한 감정 기복에서 벗어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숙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동안 미뤄왔던 ‘나’를 위한 시간을 시작할 수도 있는 시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치료와 생활습관의 변화란, 여성이 스스로 호르몬 변화에 따른 신체 신호를 이해하고, 필요 시 전문적인 진료를 받으며 운동과 식단 등 일상에서 건강을 돌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폐경을 그저 견뎌야 할 시기로 여기며 치료를 놓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9명이 폐경 증상을 경험하지만[2], 심한 증상을 겪은 여성 중 실제로 병원을 찾는 이는 2명에 불과하다고 한다.[3] 또한, 이 시기는 골다공증과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 위험이 높아져 예방과 관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폐경기 호르몬요법을 받은 여성이 삶의 질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4] 지금 필요한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을 챙기는 실천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는 ‘헬시에이징(Healthy Aging)’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존엄하게 나이 드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성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임신과 출산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초기 청소년의 성건강과 함께 폐경과 이후의 삶까지 확장되고 있다. 더욱이 폐경기 이후의 건강은 개인을 넘어,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에 경제활동 인구를 확보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앞서 말한 봉사활동 현장의 리더들의 모습에는, 단순한 참여를 넘어 월경 기간 동안 소녀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는 태도가 담겨 있었다. 더 이상 필자에게 생리대 키트는 필요 없지만, 폐경을 겪는 이 시간을 향해서도 그런 이해와 관심이 이어지면 좋겠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가 주체로서 당당히 이 시간을 헤쳐가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김소은 한국오가논 대표. ⓒ한국오가논 제공
김소은 한국오가논 대표. ⓒ한국오가논 제공

참고문헌

[1] 폐경기. 건강정보.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Available at: https://health.kdca.go.kr/healthinfo/biz/health/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View.do?cntnts_sn=5702

[2]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폐경기 호르몬 요법의 성과 연구. 2021.

[3]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건강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질병관리청. 2022.

[4]호르몬대체요법. 건강정보.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Available at: https://health.kdca.go.kr/healthinfo/biz/health/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View.do?cntnts_sn=5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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