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대한여성변리사회, 대한변리사 총회서 편입 부결
‘대한’이란 단어도 쓰지 말 것…“사실상 해체”
“전문직 여성회서 변리사회만 제외…의견 전달 안 돼”

뼛속까지 문과생, 진로 방황 후 변리사 택해
19년 차 상표 전문…고객 특허 브랜드·아이디어 지켜
“어려운 소송 이겼을 때 뿌듯…부담감 이겨내야 전문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사랑특허법률사무소에서 백소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손상민 사진 기자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사랑특허법률사무소에서 백소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손상민 사진 기자

1993년 창립된 대한여성변리사회가 올해 2월 21일 대한변리사회 정기총회 투표를 거쳐 사실상 해체 됐다. 총회에서 대한여성변리사회의 대한변리사회 편입을 부결하는 동시에 ‘대한’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않도록 결정됐다. 30년간 유지됐던 대한여성변리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한여성변리사회의 마지막 회장이 된 박소현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대표는 연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서강대학교로 편입학해 종교학을 전공했다.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다’는 그는 대학 시절, 진로로 방황을 겪은 후 변리사를 택했다. 지인들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변리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도 몰랐지만 할만해 보였고 무엇보다 공부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박 대표는 19년 차 상표 전문 변리사로 활동 중이다. 상표등록, 분쟁, 침해소송, 도메인분쟁, 가치평가 등을 통해 상표와 특허 분야의 고객들이 그들의 아이디어와 브랜드를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어렵고 이기기 힘든 소송을 이뤄 냈을 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마지막 대한여성변리사회 집행부 활동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대학원 진학과 화장품 박람회 부스 참가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박소현 대표를 여성신문이 만나 이야기 나눴다.

-지난 2월 대한변리사회 제64회 정기총회에서 ‘대한여성변리사회’의 대한변리사회 편입을 부결시키고 동시에 ‘대한’이라는 명칭 사용 금지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두 가지 안건이 있었습니다. 첫 안건이 ‘대한여성변리사회를 편입한다’였고 부결됐습니다. 김두규 대한변리사회 회장님의 긴급안건으로 ‘대한여성변리사회’라는 명칭까지도 사용하지 말라는 안건이 상정됐고 가결됐습니다. 사실상 해체라고 봐야죠. 전체 300표 중에서 ‘편입’ 찬성표가 130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한여성변리사회를 변리사회로 공식 편입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던 건데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통과됐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부결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는데, 첫째는 ‘여성변리사회 존재 자체가 싫으신 분들’이 계실 것 같고, 두 번째로는 ‘굳이 왜 편입하려고 하냐,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따로 활동하면 되지’라는 입장일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항상 같이 나왔던 얘기가 ‘여성변리사회의 목적이라든가,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것인데, 이게 납득 됐다면 부결되지 않았겠죠. 지난 30년 동안 대한여성변리사회는 대한변리사회의 지원을 받아 사무국을 운영했습니다. 별개의 단체라 보기는 어렵죠. ‘사실혼’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웃음). 저희는 대한여성변리사회가 대한변리사회의 공식 산하기관으로 들어가서 감사도 받고 보고도 하겠다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아직도 왜 부결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대한여성변리사회 회장으로서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 ‘취임 선배와의 대화’ 행사를 한번 하고 이후엔 편입 TFT를 하느라 제대로 활동을 못 해 아쉽습니다. 18대 집행부가 세웠던 계획들이 많았습니다. 젊은 여성 변리사분들이 글로벌 리더십과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아 여러 세미나와 미국여성변리사협회와의 커미티도 계획 중이었고요, 한국여성과학기술총연합에서 협력회원 요청도 있었는데 모두 중지됐습니다. 내부 행사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한국여성리더연합이라든지 전문직여성단체와도 꾸준히 함께 해왔던 와중에 이번 총회 결정으로 저희 회만 위치가 애매해졌습니다. 우리의 모태인 변리사회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공식 단체라고 할 수 있나 라는 의문이 스스로 들 수밖에 없고요.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 한국여성세무사회, 대한여성치과의사회 등 다른 전문직에는 다 여성회가 있는데 변리사회만 없는 상황입니다.”

-총회 부결에도 대한여성변리사회가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일·가정 양립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에 전문직 여성 단체들을 위원으로 초대해 행사를 크게 열었습니다. 이번에도 행사 참여 연락이 왔는데 여성변리사회 이름으로 나가도 될까 싶어 거절했습니다. 변리사회만 의견 전달이 안 되는 이런 상황이 과연 변리사에게 이익일지 의문입니다. 90년대 여성변리사회가 만들어진 목적이 우리도 여성회를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30년간 다져온 네트워크를 왜 버리느냐는 겁니다. 변리사회에서 활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여성 변리사들의 권익이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변리사회의 대외적 이미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 결정만 놓고 봤을 때는 이름만 바꿔서 활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여성 변리사들의 ‘사적인’ 모임으로 바뀌는 것이겠죠. ‘대한’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것은 공식적인 기관이 아니라는 의미인데 그러면 많은 전문직 여성 단체에 끼기 애매해집니다. 앞으로는 외부 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그럴 필요가 있을 때 이를 변리사회에 전달하겠다는 의견을 김두규 회장님께도 전달했습니다. 여성회가 없는 변리사회에서 그런 요청에 응할 준비는 안 돼 있지만, 아셔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면 필요성을 절감하기로 하겠고요. 내년에 변리사회장 선거가 있는데 혹시 내 후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박소현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손상민 사진 기자
박소현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손상민 사진 기자

-연세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를 전공하고 다시 서강대학교에 편입하셔서 종교학 학사를 졸업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변리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문과 성향이 강한데 이과를 가서 많이 방황했습니다. 학창 시절 과학을 좋아했는데, 공부하는 것과 연구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대학교 3학년 때 랩에 잠깐 있으면서 교수님이 실험하시는 모습을 보고 ‘적성에는 안 맞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꼼꼼한 성격이 아니어서 그런지 데이터 하나를 내기 위해 몇십 번씩 같은 실험을 반복하는 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변리사를 택한 이유는 당시 주변에 변리사 시험을 보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고 2년 반 동안 공부해 합격했습니다. 변리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공부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19년 차 상표 전문 변리사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변리사를 하면 적성에 잘 맞을까요.

“변리사 전문 분야가 보통 전기전자, 화학생물(바이오), 상표디자인으로 나뉘는데 저는 상표디자인 중에서도 상표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상표는 다른 특허와 다르게 기술 보다는 법적인 내용이 훨씬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주로 상표의 등록, 무효심판, 취소심판, 심결취소소송, 침해소송, 도메인 분쟁 등을 하고 있고요. 보기보다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예컨대, ‘고주파가 나오는 조끼는 의류일까, 의료기기일까’와 같은 고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것으로 등록받느냐가 권리 범위에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에서 나이키 신발을 파는 것도 상표침해 논쟁에 해당될 수 있고요.

한 가지를 깊고 오래 하는 것보다 얇고 넓게 다루는 걸 선호하는 성향이라면 변리사가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데, 일하면서 신기술, 새로운 제품, 새 브랜드 등 기존에 없는 것을 접할 수 있어 재미있습니다. 다만 새롭게 나오는 기술을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변리사로서 뿌듯하거나 보람을 느끼실 때가 있다면.

“아무래도 어려운 심판에서 이겼을 때겠죠. 경영하는 입장에서 ‘20만원 짜리 상표등록 사건을 40개를 하는 것이 800만원 소송 하나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비용은 같아도 신경이 쓰이는 정도는 차이가 큽니다. 소송까지 간 클라이언트들은 브랜드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고 심하게는 회사가 문을 닫을 때도 있고요. 그래서 부담이 정말 큽니다. 설령 회사가 문을 안 닫는다고 해도 이 브랜드가 마케팅에 쏟아부은 비용이 몇억일 수도 있는데, 그게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죠. 그럼에도 도전해서 승소했을 때 기분이 참 좋죠. 주니어 때는 이런 상황이 너무 부담스럽고 무섭기도 해서 잠도 잘 못 잤는데, 이제는 이런 부담감을 누르고 해내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박소현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손상민 사진 기자
박소현 사랑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손상민 사진 기자

-지난해 말 집계된 여성변리사 합격 비율은 37.5%입니다. 여성 합격자 비율이 올라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남녀 차가 있는 이유가 뭘까요. 전문직 여성으로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면.

“이공계 전공자들이 변리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합격률 자체는 이공계 남녀 비율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비율만 따지면 6대 4인데, 이건 합격자 기준이고 현직으로 가면 비율 차이가 훨씬 많이 납니다. 사회구조적인 이유 때문이죠. 직접적으로는 출산과 육아 때문이고요. 저 같은 경우 둘째 영향이 컸습니다. 큰 아이를 낳고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인사고과가 C가 나왔습니다. 애를 낳기 전까진 일주일에 3~4번 10시까지 일했는데, 큰 아이를 낳고는 1년 동안 야근을 딱 한 번 했어요. 그래서 사장님의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웃음). 더는 회사를 못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개업을 결정했습니다. 첫 1년은 너무 힘들었죠. 일도 많은데 여성 변리사들은 아이도 낳고 육아까지 하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게 변리사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여성 대부분이 그렇죠.

오히려 젊은 남성분들은 ‘왜 우리를 위한 단체는 없냐’며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남녀가 똑같이 공부해서 똑같이 합격했는데, (여성회 등이 있다면)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더 기회가 생기는 것 같고 그게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총회에서도 젊은 남성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고 실제로 이런 말을 듣기도 했고요. 그런데 결혼만 해봐도 여자들이 일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는지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경험이 없어서 그렇겠죠. 실제로 개업한 변리사님들 보면 여자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좋은 배우자를 만난 덕분이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여성변리사회 집행부는 8명 중 4명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먼저 올해 경기 북부 소상공인 상표 출원 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이번 달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역 소상공인에 상표출원을 제공하고 후속 사업으로 디자인이나 특허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기업 방문 컨설팅이 필수여서 연말까지 바쁘게 달려갈 예정입니다.

또, 이제까지는 실무에 치중해 왔다면 상표를 학문적으로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 대학원 석사과정에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 제조가 산업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해외상표에도 관심이 많고요. 클라리언트 중에 화장품 제조사가 많은데 화장품 박람회에 부스를 내면 어떨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문직 업종에서 시도한 사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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