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치상 혐의 받던 장제원 전 의원 숨진 채 발견
피의자 사망에 따른 수사종결, 2차 피해 낳기도
“피의자 사망 전까지 수사한 내용 피해자에 제공해야”

성폭력 혐의로 고소된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3월 31일 숨졌다. ⓒ연합뉴스
성폭력 혐의로 고소된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3월 31일 숨졌다. ⓒ연합뉴스

성폭력 혐의로 고소돼 경찰 조사를 받던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전 의원의 사망으로 성폭력 고소 사건은 종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의 죽음으로 사건의 진실 규명이 어려워짐에 따라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장 전 의원은 전날 오후 11시 40분경 서울 강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장 전 의원은 부산의 모 대학교 부총장이던 2015년 11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A씨를 상대로 성폭력을 한 혐의(준강간치상)로 고소돼 수사를 받고 있었다. 장 전 의원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피해자 측은 호텔 안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 신체 및 속옷 등에서 남성 유전자형이 검출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장 전 의원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에 대한 두려움과 성폭력 신고 이후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지난 9년 동안 형사고소를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건 이후 발생한 정신과적 증상 등으로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형사고소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2021년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2021년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피의자 사망에 따른 수사종결, 2차 가해 낳기도

성폭력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 변해야

경찰수사규칙 제108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리게 돼 있다. 검찰 역시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5조에 따라 피의자 사망 시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한다. 이에 따라 장 전 의원의 성폭력 고소 사건도 종결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피의자 사망에 따른 수사종결 관행으로 진실규명의 기회가 사라지면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가령 피해자가 피의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비난하거나, 피의자가 무죄를 받은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다. 경찰은 2020년 12월 29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불기소 의견(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당시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경찰 조사에 의해 고소인 측의 주장이 거짓이거나, 억지 고소·고발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따라 이번에도 2차 가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의당은 성명을 내고 “장 전 의원이 자살로 회피했다. 피해자가 9년 만에 낸 용기는 가해자의 죽음으로 인해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우리가 이미 숱하게 겪었던 2차 가해도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성범죄의 경우 유독 가해자가 죽음을 택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후 가해자에게 온정적인 태도로 대하는 반면 피해자를 탓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해자가) 목숨을 끊으면 피해자와 그 변호사에 대한 2차 가해가 지속되는 등 피해가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잘못을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억울함을 알리고 가족을 구하고 죽는다는 비뚤어진 연민과 순교 의식에 빠져 목숨을 끊는 것”이라며 “결국 성폭력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이 가해자를 죽음으로 몰고가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자성하지 않으면 가해자들의 이러한 선택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피해자 측에 피의자 사망 전까지 수사한 내용 제공해야”

일각에서는 피의자가 사망하더라도 수사를 이어가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대 국회에서는 양금희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성폭력범죄의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가 자살 등을 원인으로 사망했을 때,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고소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고소사건이 처리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다만 이는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소영 변호사(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는 ‘피의자·피고인 사망과 진실규명’이라는 보고서에서 “수사 중이던 피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종결할 것이 아니라 계속 수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피해 회복 측면에서 피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하면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의 회복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다연 서울서초경찰서 경위와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도 논문 ‘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한 ‘공소권 없음’ 수사종결 관행에 대한 고찰’에서 피의자 사망에 따른 무조건적인 공소권 없음 수사종결 관행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영국의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해당 논문과 왕립검찰청(CPS) 웹사이트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원칙적으로 사망한 피의자에 대한 기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찰은 피의자가 사망해도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검찰도 이에 협조한다. 또한 ‘피해자 재심의 요구제(Victim’s Right to Review)’에 따라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피해자는 사건의 재심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피의자 사망 이후 수사를 지속하거나 관련 법을 제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대신 피의자 사망으로 수사를 종결하더라도, 사망 전까지 수사한 내용을 피해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21년 ‘초임 변호사 미투 사건’ 피해자 변호인이기도 했던 이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에 피의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진행한 수사 내용을 요청했다. 당시 검찰은 반응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피해자 측 참고인 진술과 피해자 문자 메시지 등을 담은 불송치 결정문을 피해자에게 송달했다. 이 변호사는 “가해자가 사망하더라도 어디까지 수사를 진행했으며, 수사한 부분들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등 불기소 이후에도 상세히 기재해 피해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키워드
#장제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