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얼굴 좀 빨개진다고 안 죽어 인마>는 가히 ‘웃픈’ 작품이다. 남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피를 토하고, 치아가 빠지고, 팔이 휘어지고, 얼굴이 노래지는 등 거의 좀비에 가까운 상태다. 하지만 그들의 긴급경보가 울린 건, 건강이 가장 괜찮아 보이는 친구의 "머리가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라는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를 토하던 이가 돌연 의사처럼 진지하게 진단을 내리고, 누군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얻어온 ‘프로페시아(탈모약)’를 들이밀며 친구 입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이유는 단 하나, "결혼은 해야 하니까."
영상은 과장이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탈모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이는 게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머리카락이 주는 매력자본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특히, 2030 남성들에게 있어 ‘탈모’는 마주하기 싫은 ‘질병’이며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머리카락 감는 방법부터 기존의 샴푸를 탈모 예방 샴푸로 바꾸거나 ‘프로페시아’ 같은 탈모약을 매일 특정 시간에 먹는 것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모 진행을 막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큰 돈을 들여 피부를 절개하거나 신체의 다른 부위 털을 뽑아 이식하는 방법으로 탈모를 ‘치료’한다. 이런 청년 남성들의 불안을 정치권도 알고 있는 듯하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자는 ‘탈모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 남성들의 투표를 유도했고 성동구청에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2025년 구민을 대상으로 탈모 약제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지키고 싶은 건 머리카락 한 가닥이 아니야
우리는 왜 이렇게 탈모를 두려워할까? 그것은 탈모가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자격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22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남성 출연자는 20대부터 시작된 탈모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결혼식에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 결혼을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위 유튜브 영상에서 탈모가 진행 중인 친구에게 약을 건네며 “죽기 싫으면 결혼은 해야 할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사는 탈모가 연애와 결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연애·결혼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요소만이 아니다. 대화, 공감, 신뢰 같은 요소 또한 필수적이다. 하지만 남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언은 여기까지 확장되지 않는다. 우선 탈모를 해결해야만 연애와 결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이렇게 연애와 결혼에 집착하는가? 그것이 곧 정상성이자 남성성의 척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의 저자 권김현영은 남성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 속에서 인용, 패러디, 재현,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남성은 ‘남성’으로서 행동해야 남성으로 인정받으며, 남자다움과 거리가 먼 남성은 남성 집단 내 위계에서 아래로 밀려나거나, 심지어 남성이 아닌 존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큰 키, 근육질의 몸, 풍성한 머리카락 등이 ‘남성적’인 것으로 대표된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어딘가 부족한 남성이 되는 것이다. 즉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탈모는 ‘연애 결혼 시장에서의 박탈’이자 ‘남성성의 박탈’, ‘정상성의 박탈’인 것이다. 그렇기에 탈모는 남성들에게 어마어마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탈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고백하자면 나 또한 어릴 때부터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다. 머리가 가늘어 내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하기 어려웠고 나이가 들면서 헤어라인도 이전보다 올라갔다. 탈모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봤다. “머리에 힘이 없는 것 같아”, “약을 먹고 꾸준히 관리하면 훨씬 나아져요.” 같은 주변 남성들의 염려(?)에 몇 년 전부터 탈모 예방 샴푸를 쓰고 병원에 가서 탈모약을 처방받으며, 머리카락 이식까지 상담받았던 이력이 있다.
하지만 내가 탈모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근육질, 자차 유무 등 사회의 남성스러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두려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의 다짐만으로 부족하다. 외모를 조각조각 나눠서 판단, 평가하는 문화도 바꿔야 하지만, 여성을 만남으로써 남성성을 획득하는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선망하는 남성성이 만들어내는 획일화된 남성성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 속에서 용기를 발견해 보자. 내가 접하고 있는 정보를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소비하는 콘텐츠들이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며 ‘나’를 지우고 있는 건 아닌지, 관계에서 외적인 요소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비판하자. 그리고 탈모인이 떳떳해지는 세상을 같이 만들어보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