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평등의 무지개' 현수막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있다. ⓒ여성신문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평등의 무지개' 현수막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있다. ⓒ여성신문

“내 직장 동료들 SNS 아이디 차단해 줄래?”

늦은 오후, 귀가한 애인이 부탁한 청천벽력 같은 말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유인즉슨, 내 SNS 프로필 사진이 우리의 커플 사진이기에 혹시 직장 동료들이 이를 보게 될까 봐 걱정된다는 이야기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머지 잠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애인이 보내준 직장 동료 리스트에 맞춰 하나둘씩 차단했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기에 비참함과 씁쓸함이 몰려왔어도 애인을 탓할 순 없었다. 이성애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동성애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니까.

‘동성애=AIDS’라는 공식

예로부터 AIDS는 동성애를 공격하는 단골 소재였다. 동성애는 항문 성교이며 이는 곧 AIDS로 이어진 뒤 죽음으로 직결된다고 믿는 것이다. 내 아들, 내 동생, 내 가족이 혹여라도 AIDS에 걸려 죽게될까 ‘동성애는 죄악이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자’ 같은 문구가 동성애 반대 시위에 종종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동성애는 곧 AIDS와 연결되는가? 오로지 동성애만이 AIDS에 걸리는가? 우리는 이 지점에 대해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AIDS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면 후천성 면역결핍증(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인 AIDS의 주요 원인은 흔히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로 알려진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다. HIV에 감염되어 인체의 면역력이 저하됨에 따라 각종 감염증과 종양이 나타나는 게 우리가 아는 AIDS다. AIDS는 혈액을 매개로 감염되는 감염성 질병으로서 성별과 관계 없이 HIV 감염자와의 성적인 접촉, 주삿바늘의 공동 사용, 혈액 수혈 또는 장기 이식을 통한 전파 등의 이유로 감염될 수 있다.

ⓒ질병관리청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HIV 감염경로별 감염확률에서 성 접촉은 0.1~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질병관리청

또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실제 HIV 감염경로별 감염확률에서 성 접촉은 0.1~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HIV가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등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항문 성교를 포함하여 질 성교, 구강 성교 등의 경우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내 HIV 전파 경로 중 성 접촉이 다른 것에 비해 흔한 건 사실이나 이는 비단 동성애와 항문 성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AIDS로 이어질 수 있는 HIV의 감염 경로가 이토록 다양한데, 어떻게 이걸 동성애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질병관리청 공식 보고서를 살펴보면 2006년부터 2023년까지 HIV 감염인 2,071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남성 감염인의 수는 1,952명(94.4%)으로 집계되며 이는 여성 감염인의 수인 117명(5.6%)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이다. 이중 감염경로는 성 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전체 중 1,828명(88.7%)인데 동성 간 성 접촉은 795명(38.6%)이고 이성 간 성 접촉은 624명(30.3%)으로 나왔다. 동성 간 성 접촉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이성 간 성 접촉의 비율 역시 동성 간 성 접촉의 비율과 8.3%의 차이만을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동성 간 성 접촉 중 여성의 비율은 0%에 달하나 이성 간 성 접촉에서의 여성 비율은 93명으로 전체 여성 감염인의 80.9%를 차지한다. 즉, ‘동성애=AIDS'라는 공식에 적합하지 않는다. 정말 동성애가 곧 AIDS와 연결된다면 어째서 여성 동성애는 간과하고 이야기하는지 또는 왜 예방과 치료에 집중하지 않고 동성애만 질타하는지 등을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2024년에 WHO에서 발간한 2023년 자료를 확인해 본다면 꽤 많은 유럽 내 국가에서는 HIV의 감염 경로 중 이성 간 성 접촉이 동성 간 성 접촉보다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WHO, HIV/AIDS surveillance in Europe 2024 – 2023 data
2024년에 WHO에서 발간한 2023년 자료를 확인해 본다면 꽤 많은 유럽 내 국가에서는 HIV의 감염 경로 중 이성 간 성 접촉이 동성 간 성 접촉보다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WHO, HIV/AIDS surveillance in Europe 2024 – 2023 data

나아가 2024년에 WHO에서 발간한 2023년 자료를 확인해 본다면 꽤 많은 유럽 내 국가에서는 HIV의 감염 경로 중 이성 간 성 접촉이 동성 간 성 접촉보다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HIV는 감염된 이의 모든 체액 속에 존재하기에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모유를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즉, 이성 간에도 충분히 HIV 감염이 가능하며 이게 곧 AIDS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점을 살펴보았을 때 절대 동성애만이 AIDS와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당연하게도 HIV의 확산과 감염은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 자주 언급되는 방법은 라텍스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며, 또는 노출 전 예방 요법으로 알려진 PrEP(pre-exposure prophylaxis) 약물 복용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이는 처방받은 대로만 한다면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 콘돔과 PrEP를 병행한다면 가장 좋겠으나 만약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약물도 복용하지 않아 HIV에 감염됐다면 PEP 약을 복용함으로 바이러스가 체내에 깊게 퍼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다만 PEP는 부작용이 있기에 가급적 예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에이즈(HIV) 검사 ⓒ연합뉴스
에이즈(HIV) 검사 키트ⓒ연합뉴스

이처럼 명백한 예방법과 치료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선 ‘동성애=AIDS’라는 인식이 팽배하기에 이와 같은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MSM(남성과 성관계하는 남성)은 동성애 혐오로 인한 차별과 괴롭힘, 가족의 불안정과 사회적 고립 및 폭력 등의 이유로 인해 노년 MSM보다 감염에 취약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본다면 결국 이들을 죽게 만드는 건 HIV와 AIDS가 아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랑에는 그 어떤 제약이 존재해선 안 된다. 사랑은 종류가 다양하며 그만큼 여러 색채를 띠기 마련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사랑도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과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 이 말들을 마음속에 새긴다면 감히 그 어떤 사랑도 반대할 순 없을 것이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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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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