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새벽 일군의 폭도들이 서울서부지법을 박살 낸 사태는 기실 놀랍지 않다. 그 어떤 징조나 조짐 같은 것들을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다 겪었기 때문이다. 단식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이라며 게걸스레 피자를 먹어 치우던 ‘일간베스트’ 회원들,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수니파 무장 조직인 IS(이슬람국가)로 간 김군, 팀 ‘해일’의 대표 김주희씨 등 페미니스트들을 향한 공격을 감행해 온 ‘신남성연대’ 등. 서부지법 난동이 공권력에 대한 테러로서 일종의 ‘내전’ 성격을 띤다고 한다면, 2030 여성들은 동세대 남성들을 상대로 일종의 심리적‧물리적 내전 상태를 계속해서 겪어왔다.

그들의 타깃 중 하나인 페미니스트 여성 당사자로서 이 불합리한 일들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으로도 뛰쳐나온 2030 극우 남성들의 심리를 좇는 일을 처음 기자가 되었던 2014년서부터 느슨하게 해오고 있다. 여기에 큰 도움을 받았던 책들이 한국의 남초 커뮤니티에 관한 두 저작, 『우리는 디씨』와 『보통 일베들의 시대』다. 여태껏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며 ‘서부지법 폭동’으로 다시 ‘팝업’되는 것도 일베이기에 현 시점에서 일베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오월의봄
ⓒ오월의봄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의 저작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일베에 첫 게시물이 올라온 2011년 5월부터 2020년 말까지 총 81만 여건의 게시물 전수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일베의 공유 가치는 ‘김치녀’로 표상되는 여성혐오와 ‘홍어’라는 멸칭을 동반하는 반(反)호남 정서, ‘진보좌파의 위선’에 대한 배격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맞붙었던 제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의 TV 광고에 등장한 의자가 ‘700만 원이 넘는 미국산 임스 라운지 체어’라는 ‘팩트’를 까발리며 화력을 과시했던 일베이지만, 책은 일베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게 보았다. 그들이 갖는 열광이란 ‘희생자’인 타자에게는 물론 동료이며 ‘가해자’인 ‘우리’에게 조차 냉담한 열광이며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서만 가능한 ‘차가운 열광’(353쪽)이기 때문이다.

일베 특유의 차가운 열광이자 파편화된 냉소는 이후에 생겨난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에펨코리아 등을 보면 ‘동덕여대 페미도 틀렸고 서부지법 폭도도 틀렸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미 11년 전 ‘폭식 투쟁’에 일베 회원 100여명이 참여했듯, 일베는 온라인 극우가 연대해 거리로 나오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2014년 9월 6일 세월호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일부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4.09.06. ⓒ뉴시스
2014년 9월 6일 세월호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일부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014.09.06. ⓒ뉴시스

당시 폭식 투쟁을 온라인으로 지켜본 한 일베 회원은 내게 말했다. “엄청 웃겼다. 일베가 그렇게 대규모로 나간 게 처음이라 종일 사이트에 붙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정치화되고, 시민들이 이용해야 할 광화문광장이 불법으로 점거돼 거슬렸다. 처음엔 한두 명이 농성장에 갔다가 나쁜 소리 듣고 사이트에 올리고 그랬다. 왜 그런 거 있잖나. 동생이 맞고 오면 화나는 거. 그런 생각들로 나간 거다.” (서울신문 <“폭식 퍼포먼스로 투쟁 참의미 찾았음” “일게이는 팩트로 승부…언론 앞섰노”> 2014/10/25) 지난달 21~22일 전농TV의 스트리밍 영상을 보고 ‘배턴 터치 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남태령에 갔던 이들과, 마음만은 비슷한 맥락으로 광화문에 나갔던 일베들이 있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가 말하는 일베의 주요 정서 중 하나는 ‘합법’에의 강박이다. 이들은 법 테두리 내의 순응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불법’, ‘폭력’이 자행되는 촛불집회를 혐오한다. 그러나 오늘에 와 극우 세력은 법치주의의 보루라 할 만한 법원을 때려 부수며 바로 그 ‘법치’가 ‘불법’이라는 레토릭으로까지 나아갔다. 지난 총선은 온갖 부정이 자행된 ‘부정선거’였으며, 현직 대통령에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것은 그가 말했듯 “불법의 불법의 불법”의 결과다. 여기에다 일베에서부터 이어진 ‘내가 소수자’라는 감각은 ‘국민 저항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발동시키기에 적절한 환경을 조성했다. ‘웅변대회’와 ‘가두리 시위’라는 조롱을 받는 비폭력 집회로는 별반 바뀌는 게 없고 그 사이 이재명을 위시한 더불어민주당만 ‘웃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이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영국의 페미니스트 저술가인 로라 베이츠의 책 『인셀 테러』적 분류에 따르면 ‘남성권리운동가’다. 대선 때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 그는 여성혐오를 ‘젠더 갈등’으로 치환하며 이를 발판 삼아 대통령이 됐고, 여성 혐오적 주장을 공적 공간으로 가져와 국가 정책으로 실현시켰다. 과거 ‘일베’가 보수라기엔 색이 옅어 ‘안티 진보’로 불렸던 것과 달리, 지금의 극우 세력은 ‘어엿한’ 사상적 지향과 함께 이를 집행할 구심점까지 갖춘 셈이다.

혹자의 우려처럼 ‘2030 남성 모두가 극우’라는 말은 틀렸다. 그러나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처럼 유구한 생명력을 지닌 온라인 극우의 중심이 2030 남성이고, 서부지법 폭동으로 구속된 이의 절반이 ‘2030’이며 언론에 나온 이들 변호인 등의 전언에 따르면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거리로 뛰쳐나와 공권력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는 이들을 배태한 성별‧연령별 카테고리가 ‘2030 남성’인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시급한 것은 이들에 대한 분석과 진단이지 ‘2030 남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항변은 아니다. 애초에 일베부터가 단일한 군집이 아니었겠으나, 일베는 분화했고 더욱 무섭게는 ‘진화’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