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정부·경기도·동두천시, 유엔 권고 수용하라”

UN 특별보고관이 국가에 의한 여성인권 유린의 증거이자, 역사적 기록물인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정부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동두천 옛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특별보고관의 서한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 서한은 지난해 9월 공대위와 피해자 등이 공동으로 UN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에게 접수한 긴급진정서를 제출한데 따른 조치다.
유엔 진실정의특별보고관, 문화권특별보고관,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은 서한을 통해 “옛 성병관리소라는 역사적 유적지를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지난해 11월 15일 한국 정부에 전했다.
이들은 “이곳은 이른바 ‘위안부’여성들을 대상으로 수십년 동안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된 공공시설”이라며 옛 성병관리소 철거는 “해당 장소에서 발생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조사하고 기억하며, 그 증거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이에 한국 정부는 건물 자체 보존보다는 사진을 담은 기념비, 디지털 아카이브 등 대체적인 기억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UN에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의)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답변서를 UN에 제출한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며 “UN 특별보고관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근현대문화유산인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온전히 보존하라”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옛 성병관리소의 피해생존자 박건희씨도 참가했다. 박 씨는 “21살에 동두천을 걷는데, 누가 검진증이 있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했더니 봉고차에 집어넣어 졌다. 나는 결혼도 하고 성병도 없었다”고 했다.
박 씨는 그대로 성병관리소에 감금돼 검진도 없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거기서 주사를 맞고 그 이후로 유산을 2번이나 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있던 성병관리소를 없애면 안 된다. 보존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옛 성병관리소 보존 운동은 지난해 8월 경기도 동두천시가 관광개발산업의 일환으로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시민단체는 “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경험은 지워야 할 역사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역사”라며 옛 성병관리소 철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73년 지어진 2층 건물로,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의 내 성매매를 허가하면서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수용하던 곳이다.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 제정으로 성매매는 불법이 됐지만, 기지촌 반경 2km는 예외였다. 정부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성병을 관리하고 애국 교육을 하는 등 기지촌 내 성매매에 적극 개입했다.
성병관리소에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상대로 성병 검사를 한 뒤 성병보균자 진단을 받으면 페니실린을 투여하면서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가뒀다. 수용된 여성 중에는 항생제인 페니실린 과다 투여로 쇼크사하는 이도 있었다. 당시 쇠창살 안 감금된 여성들의 모습이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같다고 성병관리소는 ‘몽키 하우스’로도 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