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태령에서 만난 승리,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 관계자들이 지난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행진 보장촉구 시민대회‘에 참석했다. ⓒ정영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대표 제공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 관계자들이 지난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행진 보장촉구 시민대회‘에 참석했다. ⓒ정영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대표 제공 

“언니, 우리 남태령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새벽 1시 반. 마음 졸이며 라이브를 보던 후배에게 받은 메신저 연락이었다. 집회 마치고 미뤄뒀던 서페대연(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송년회를 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다. 잠시 고민한 뒤, “일단 우리 자고 체력 보충해서 가자”는 말을 보냈다.

12월 21일 밤은 유독 피곤했다. 서울 명동서 행진을 마쳤을 때부터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잘 잠기지 않던 목이 오랜만에 잠길 정도였다. 두통에 오한에 감기가 오는 건가 싶었다. 이미 가 있다는 사람, 라이브로 보고 있다는 사람. ‘오늘 날도 춥고 행진도 길었는데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다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라는 잠깐의 생각과 함께 그대로 기절한 듯 잠이 들고 말았다.

두통과 함께 느지막이 눈을 떠보니 단체방 메신저는 이미 이른 아침부터 난리가 나 있었다.

‘다들 어떤가요? 저 완전 쌩쌩해요. 남태령 가야 할 것 같아서 가보려고요.’

‘**이도 온대요. 저도 출발합니다.’

‘저랑 **이는 이제 곧 도착해요.’

“미안합니다. 저도 이제 일어났어요. 금방 준비해서 갈게요.”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일단 글을 남겼다. 미안했다. 다들 밤새 걱정으로 잠 못 자곤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서고 있는데… 필요한 물품이 무언지 확인했더니 ‘윤석열OUT 성차별OUT 페미니스트들(이하 윤OUT페미들)’에서 만든 페미니스트 피켓이 필요하다 했다. 이 공간에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고 피켓과 몇 가지 방한용품을 챙겨 부랴부랴 남태령으로 향했다. 

“그날 밤 국회 앞으로 가지 못한 죄책감에 왔어요”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내부에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며 한남동 관저로 트랙터 행진을 하던 농민들을 저지한 경찰을 향해 차를 뺄 것을 요구하는 피켓과 집회 현장을 안내하는 피켓이 붙여져 있다. ⓒ정영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대표 제공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내부에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며 한남동 관저로 트랙터 행진을 하던 농민들을 저지한 경찰을 향해 차를 뺄 것을 요구하는 피켓과 집회 현장을 안내하는 피켓이 붙여져 있다. ⓒ정영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대표 제공 

2시 집회에 맞춰가려고 급하게 출발했지만 시작 시간은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사당역에 도착하니, 4호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 남태령에 가는 것만 같았다. 지나가던 한무리의 중학생들이 ‘다 시위 가나봐!’ 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구나 했다. 조바심을 가득 안고 남태령에서 내리는데 벌써 마음이 벌렁거렸다. 나와 같은 칸을 타고 온 여성 두 분은 역에서 나가기 전 옷차림을 정비하고 이동하는 듯 보였다.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이동하는데 긴 줄이 있었다. 출근길도 환승역도 아닌데 길게 늘어선 줄이 낯설었다. 한무리는 계단으로 또 다른 무리는 멈춰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걸어 올라갔다. 안전 문제로 멈춘 것 같았지만, 지하 3층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 길이 쉽지 않았는데 누구도 다른 이야기 없이 천천히 기다리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올라간 지상은 놀라움 자체였다. 비상계엄 이후 여의도에서도 광화문에서도 집회 시작 시간보다 1~2시간씩은 일찍 현장에 도착해 깃발을 세우고 자리 이동을 최소화하고 있었던 나는 생각해 보니 전체 모습을 볼 일이 적었다는 생각을 했다. 남태령역에 올라서자 도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마주했고, 동시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동도 잠시, “핫팩 있어요!” “담요 가져가세요!” “커피와 음료수 있어요!”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에 얼떨떨해하며 자원봉사자들이 쥐여준 담요, 커피, 물을 손에 쥐고 대열 앞으로 이동했다. ‘윤OUT페미들 깃발’ 아래에는 다양한 작은 깃발을 든 페미니스트들이 이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깃발이 이렇게 크게 있다니 너무 좋아서요. 계속 오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왔어요.” 앞과 옆에 계신 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잡았다.

“그날 밤 국회 앞으로 가지 못한 죄책감에 어제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죄책감. 4일 새벽 국회로 뛰어갔던 나는 22일 새벽에는 남태령에 있지 않았기에 그 새벽을 지켜준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4일의 우리에게 빚졌다고 했다.

광장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와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뛰쳐나온 주인이었다.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야지만 민주주의가 지켜진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이자 민주주의의 주인이었다. 함께 행동함으로써 사회의 주인으로 존재하고자 했기에,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라앉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죄책감이 아니라, 더 큰 행동으로 함께 하게 하는 뜨거운 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빚진 마음과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앞으로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한 명 한 명의 불길만이 남았다.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 손 내밀 때, 그것은 연대가 됐다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도로 위에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가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12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도로 위에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가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농민들의 노고에 대한 이야기, 전봉준 투쟁단에 대한 감사함도 쏟아졌다. 요즘 청년들이 농민들의 삶에 대해서 잘 알겠어? 보수적인 농촌지역의 분들이 소수자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겠어? 라는 일상에서 흔히 쏟아지던 서로를 규정하던 목소리는 남태령에서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연대하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우리 사회 혐오와 차별을 무너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누구보다 연대를 바랐을 두 집단이 만나 연대를 이뤄냈다. 지난날의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과 만나 연대가 됐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유지해온 성차별도 함께 부숴야 한다. 그 마음은 나를 매일 같이 광장에 있게 했다. 딥페이크 투쟁 세 달을 마치고 다시 거리에 서게 된 것은 정말 이 말도 안 되는 민주주의 훼손을 막기 위함도 있지만, 탄핵 이후 다음 세상에는 성차별이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마음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윤OUT페미들’에 함께 하는 100개 단체, 1560명도 다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며 내내 외쳤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부정하고, 여성폭력을 해결하겠다며 무고죄 강화를 이야기하는 그들, 페미니스트를 악마화하며 이기적인 존재로 치부해온 그들의 말을 잘못됐다고, 현실을 제대로 보라고 계속 말해왔다. 우리는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 그러나 그 외침이 전해지지 않거나, 다르게 왜곡될 때마다 괴로웠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비상계엄 이후 펼쳐진 탄핵광장은 우리가 이제껏 해왔던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혐오로 흥한 자, 연대로 망하게 하자’고 외치면서도 불안했다. 지금의 이 이야기가 광장에서 멈추면 어떻게 하지? 

12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시민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시민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신상이 털리고, 일터에서 해고되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공격받았던 우리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개인정보가 박제되고 잊을만하면 다시 글이 올라와 화나고 심심하면 욕해도 되는 불링의 대상이 돼왔던 우리였다. 친밀한 관계로부터 여전히 위협당하고, 공학전환을 반대하는 학교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우리가 주목받는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지난 3년간의 폭력이 다시 거세게 시작되면?

그러다 우리만큼 외로웠을 이들을 만났다. 농업은 끝났다고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로 외면당한지 오래였다. 나이 든 어르신들만이 지키고 있는 농촌을 살리겠다 애쓰며 식량주권, 먹거리 안전을 외치며 묵묵히 땅을 지켜온 농민들은 외로웠을 것이다. 외로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당장 남태령으로 달려갔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은 사실은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했던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누가 ‘연대는 그런 거야’하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것이 전체를 위한 것임을 알았기에, 그리고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았기에. 남태령에서 우리는 알았다. 우리 이제 더 이상 외로운 투쟁을 하지 않겠구나. 

남태령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대열에 앉아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고, 남태령을 가로막은 경찰을 욕하고, 이 추위에 나오게 한 윤석열을 욕하며 함께 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가 되었고 외롭지 말자 했고, 모두가 이 사회를 어떻게든 바꾸겠노라 결심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 더 많은 회원들이 약속을 조정하고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가 이긴다!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

“드디어 열렸습니다!”

열렸다는 말, 사당으로 행진해 갈 거라는 말을 들은 지 수차례. 앉아서도 서서도 차 빼라는 구호 외치기를 여러 차례. X에서도 회자됐던 페미니스트다운 기개로 깃발을 힘차게 펄럭이며 구호 외치기도 수차례. 우리는 이긴다는 구호를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수차례. 월요일 출근을 염두에 두고 경찰이 오늘 밤까지 버티는 전략을 쓰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슬금슬금 들던 찰나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겼다. 결국 우리가 이겼다. 모두는 환호했다.

전봉준 투쟁단과 함께 시작된 행진에서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해방감을 느꼈다. 보랏빛, 무지갯빛 깃발이 한데 어우러져 언덕 아래로 달려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고 우리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행진에 함께 했다. 우리가 만든 연대였다. 우리가 얻어낸 승리였다. 집회로 인한 소란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리라 예상되는 방배동 주민들은 남태령을 넘어 행진해오는 우리를 신기한 듯 내려다봤고, 우리는 그들을 향해 더 크게 윤석열 퇴진과 탄핵, 체포를 외쳤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깃발춤을 추며 우리가 만들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가 용산 관저까지 이동하는 동안 다른 집회 참여자들도 대중교통으로 한강진으로 이동하자는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지하철로 이동했고, 도착한 한강진역은 제2의 남태령이 펼쳐졌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깃발을 당당히 펄럭이며 대열 뒤쪽으로 행진해 갔다. 앞도 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열 속 무대도 보이지 않지만, 여성농민의 발언에 참가자들의 발언에 우리는 다시금 행복해졌다.

전체 일정을 마치고 해산이 제안됐지만 우리는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승리했고, 승리했다. 때마침 광장에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다. 누구라고 이야기할 새도 없이 깃발을 세차게 흔들며 우리의 승리를 기뻐했다. 록 페스티벌의 슬램처럼 네 다섯 곡 연속으로 깃발을 흔들고 흔들며 춤을 췄다. 페미니스트들이 주변을 감싸고 축제 분위기가 됐다.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 /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와 함께 ‘와~’ 하는 함성으로 그날 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얼싸안으며 승리의 축제를 마쳤다.

누군가는 남태령에서 새로운 연대를 봤다고 했다. 남태령 대첩이라고도 했다. 맞다. 나는 남태령에서 승리를 봤다. ‘결코 질 수 없다’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연대의 힘, 가까운 미래 우리에게 펼쳐질 승리를 봤다. 더 이상 외롭지 말고 서로를 붙들어주자 말하는 곳에서 승리를 봤다.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은 곧 다가오겠구나, 정말로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곧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세상과 지금 현재 우리의 간극을 채울 것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남태령으로 각성한 우리는 우리 앞의 각종 걸림돌을 태우는 불길이 될 것이다. 불은 이미 거세게 옮겨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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