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의 변호사의 시선]

지난 2일 북한강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이후 3일 만에 범인이 검거됐다. 범인은 여성과 함께 근무하였던 군 장교였다. 젊은 군 장교가 범인임이 알려진 직후,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 시신을 유기했는지 보도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내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여부와 신상공개 여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잔혹한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여부나 그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언젠가부터 아동학대, 교제폭력, 소위 ‘묻지마’ 칼부림 같은 행위가 살인에까지 이르게 된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여부를 다루는 일이 관행이 되었다. 이번 사건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군 장교라는 가해자의 신분과 피해자를 살해 후 범죄를 은폐하고자 벌인 정황들이 알려지면서 그런 관심에 더욱 불을 지핀 모양새다. 그러나 막상 알려진 내용들로만 사건을 들여다보면 이 사건에서 가해자가 사이코패스인지는 별 의미가 없다.
가해자, 사이코패스 여부 중요한가
우선 이 사건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정보들을 살펴보자. 우선 피해자는 비혼 여성이었고 가해자는 기혼 남성으로,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한 장소는 자신의 차량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했으나 조기에 발견되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을 숨기고자 피해자의 휴대폰을 이용했다.
가해자는 잔혹하게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 범죄를 은폐하려고 여러 노력도 기울였다. 살인부터 계획적인 범죄였을 가능성을 있고 그와 별개로 죄질이 몹시 나쁘다. 하지만 그러니 가해자가 지능적이라거나 치밀했다고 평가하기 충분할까? 피해자의 시신은 유기한지 일주일 만에 발견됐고, 가해자는 시신이 발견된 지 3일 만에 붙잡혔다. 만약 가해자가 지능이 낮고 치밀하지 않으면 저지른 일이 달라지거나 죄질이 덜 나빠질까? 가해자가 지능적이고 치밀하면 사이코패스이고, 멍청하고 엉성했으면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정신 멀쩡한 사람이 실수로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사고다. 타인의 생명을 뺏고 은폐하려 사력을 다했던 것은 사이코패스 여부를 떠나 못돼먹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사이코패스 성향이라 한들 그 자체로 양형에 반영될 일도 아니다. 가해자가 사이코패스인 것이 당장 확인될 일도 아니지만 중요하지도 않은 이유다.
현재 알려진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가해자가 매우 지능적이었는지, 정신적으로 특이사항이 있는 경우인지가 아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휴대폰 비밀번호(또는 패턴)를 알고 있었다. 또 피해자가 가족과 긴밀하게 연락하고 지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일반적으로 친한 직장 동료지간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가해자는 38세 중령 진급 대상자였다. 즉, 매우 안정된 직장과 신분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가정도 일구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가해자는 소위 가진 게 많으니 지킬 게 많은 부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이 근무했다고 해도, 업무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빚기는 어려울 정도의 현저한 직급 차이가 존재했다. 그런 가해자가 군무원인 피해자를 살해했다.
교제폭력·젠더폭력 성격 띤 사건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제 관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했던 관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살해의 동기나 과정에 이 관계성은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사건은 교제폭력, 젠더폭력 성격을 갖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집착하고 통제하려 했던 과정이 전제되어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물리적 약자였기 때문에 더 쉽게 발생했다. 다만 이것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상호 교제관계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제관계냐와 교제폭력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북한강 시신 살해사건의 가해자를 두고 사이코패스와 신상공개 여부를 두고 관심이 뜨거웠던 5일에도 누군가 파주에 위치한 모텔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교제관계의 여성을 살해했다. 교제살인은 지금 이렇게 계속 일어나고 있다. 뉴스로 접하는 끔찍한 사건사고들에서 가해자들이 사이코패스인지, 또 이들의 신상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데 기능하지 않는다. 가해자를 일상적이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 언뜻 보면 피해자에게 이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런 끔찍한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나지 않을 동떨어진 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 착각은 좀 더 안전해졌다는 허상을 만든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실에 기능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냐 아니냐를 운운할 시간에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과 교제폭력방지법 제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