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
여성 72%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정부가 나를 보호지 않을 것”
성별과 고용형태에 따라 차이 두드러져
비정규직 여성, 정규직 남성보다 성희롱 경험 3배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3주년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신다인 기자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3주년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신다인 기자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성폭력을 겪어도 신고를 택하기보다 일터를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회사나 정부가 성범죄로부터 개인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무기력을 학습하고 있다며 일터 내 젠더 감수성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3주년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사단법인 직장갑질 119와 윤건영·장철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 주최로 개최됐다.

‘여성’, ‘비상용직’일수록 성범죄에 더 취약

직장갑질119가 올해 직장인 1천명 대상으로 한 ‘직장 내 젠더폭력 경험 및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무 기간 중 직장 내 성희롱 경험은 22.6%이었다.

‘여성’, ‘비상용직’일수록 성희롱 피해 경험이 더 많았다. 응답자 특성별로 보면 성별 및 고용 형태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성희롱 피해자 중 남성 상용직은 18.0%, 여성 비상용직은 26.6%로 나타났다.

전체 근무 기간 중 직장 내 성추행/성폭행 경험률은 15.1%였다. 역시 성별 및 고용 형태에 따른 차이가 존재했다. 남성(10.6%)과 여성(19.7%)의 경험률은 거의 2배 차이가 났고, 상용직(11.3%)과 비상용직(20.8%)의 경험률도 거의 2배 차이였다. 김세정 노무사는 “노동 현장에서 약자일수록 피해에 취약하다”고 짚었다.

성희롱은 피해자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으나, 가해자 성별은 주로 남성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가해자 성별을 물었을 때, 남성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는 ‘동성’이 가장 많았는데(38.5%), 여성 피해자는 ‘이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80.8%).

 성희롱 피해자들 절반 이상은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55.8%)’고 응답했다. 이어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2.1%), ‘회사를 그만두었다’(13.7%)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직장갑질119
성희롱 피해자들 절반 이상은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55.8%)’고 응답했다. 이어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2.1%), ‘회사를 그만두었다’(13.7%)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직장갑질119

성희롱 피해자들 절반 이상은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55.8%)’고 응답했다. 이어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2.1%), ‘회사를 그만두었다’(13.7%)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특히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응답한 경우 여성(19.2%)이 남성(6.3%)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김 노무사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가 ‘여성’, ‘비상용직’을 직장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피해를 공론화하지 않는 이유는 회사나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직장인 전체 51.0%, 여성 62.2%가 회사는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더불어 직장인의 전체 60%, 여성의 72%가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정부가 나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 비관하고 있다.

김 노무사는 “직장인들이 처한 직장 내 젠더폭력 상황은 성별, 고용 형태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양성이 평등해야 한다’라는 기계적인 주장만으로는 젠더화된 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며 “성평등 인식재고와 성차별적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유리천장 지수’에서 12년 연속으로 OECD 회원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성평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Shutterstock
대한민국은 ‘유리천장 지수’에서 12년 연속으로 OECD 회원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성평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Shutterstock

2024년 직장 내 젠더 감수성 D…“직장 여전히 여성에게 차별적인 공간”

직장갑질 119가 직장인 1천명 대상으로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직장 내 성차별 관련 젠더감수성을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젠더 감수성’이란 ‘Gender sensitization’을 번역한 용어로, 다른 성별의 입장이나 사상 등을 이해하기 위한 감수성을 말한다.

2023년 3분기에 시행한 젠더 감수성 지수 결과는 전체 지표 평균 73.5점으로 ‘C’에 해당했으나, 올해는 모든 지표에서 2023년 보다 점수가 하락해 전체 지표 평균 66.0점으로 ‘D’에 해당했다.

총 12개 지표 중 짝짓기(73.3점), 성희롱②(73.2 점), 구애(72.4점), 성희롱③(72.3점), 해고(72.1) 순으로 ‘C’등급에 해당했다. 주요 직책(55.3점), 모성(56.1점), 노동조건(57.0점), 채용(57.3점), 승진(58.2점) 등으로 모두‘F’에 해당했다.

박은하 노무사는 “젠더 감수성 지수는 D 등급은 직장이 여전히 여성들에게 차별적인 공간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성희롱 금지나 차별적 처우에 대한 시정신청 제도가 존재하지만, 여성들에게 이러한 제도는 여전히 멀고 차별적인 문화는 현실적으로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젠더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며, 노동 환경에서 지속적인 차별을 겪으며 직장에서 사라진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 내 젠더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했다.

한편, 대한민국은 ‘유리천장 지수’에서 12년 연속으로 OECD 회원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성평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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