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서울 강남대로 기후정의행진
“기후정의는 젠더 정의”

태풍 몰아치던 8월 어느날, 분홍색 윗도리를 맞춰 입은 이들이 섬 같은 국회에 모여들었다. 전국 곳곳에서 여성농민들이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외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의원회관에서 가장 넓은 대회의장이 가득 차고도 모자라 계단에까지 자리 잡았다. 하루에도 줄잡아 수십 건씩 열리는 국회토론회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겠지만, ‘기후재난과 농업 그리고 여성농민’ 토론회의 울림은 각별했다(여성신문에서 이 토론회 소식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땅과 날씨에 기대어 농사를 일구는 농민들은 누구보다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로, 주로 호미와 엉덩이 의자만으로 손 많이 가는 밭농사를 해내고 있는 여성농민들의 기후 감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는 취약성을 끌어안고 살지만, 탄소배출을 줄이고 땅을 살리고 씨앗을 지키는 토착지식을 가진 기후위기 대응에의 주체이기도 하다.
농사지으려 겸업하는 여성농민들
찜통더위로 집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만도 죽을 맛인데, 논밭에서 작업하는 농민들은 오죽할까. 폭염특보가 이어지면서 7월 23일 포도밭에서 일하던 농민 한 분이 열사병으로 사망한 이후 올해만도(8월 4일 기준) 논밭과 비닐하우스 작업으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272명 발생했고, 다섯 분의 소중한 생명을 놓쳤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면서 소농의 농사짓기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평생 일궈온 농사를 놓지 못해 투잡을 뛰어가면서도 “남는 것 없는 농사”를 짓고 있다. 실제 농가소득 구성을 보면 농업소득보다 농외소득 비중이 더 커진 지 오래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3’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은 27.1%에 불과하다. “농사지으려고 요양보호사도 하고 뭐도 하면서 겸업하는 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냐면 농사는 삶의 기본이고,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여성농민들은 폭우가 할퀴고 간 논밭을 두고 “ 내 몸이 찢기는 거 같아”라고 말하면서도 이야기에 웃음이 묻어나고 서로를 보듬어 위로하고 힘을 낸다. 그렇게 논밭에서 기후정의를 외치고 뭐라도 몸을 움직여 실천하고 있다. 나 같은 서울살이 도시민들의 머리를 울리는 삶이다.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새삼 나와 여성농민, 도시와 농촌 그리고 여성운동과 여성농민운동, 성평등정책과 여성농민정책의 거리를 되짚어 보는 반성도 하게 된다. 도시와 농촌은 머리는 둘이지만 몸은 하나인, 함께 죽고 사는 한 몸의 공명지조(共命之鳥)다. 아니 엄밀하게는 농촌이 도시를 먹여 살리는 관계다. 우리나라에서 성평등정책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이래로 여성농민정책은 핵심적인 우선순위로 다뤄지지 못해 왔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로, 기후위기는 이러한 한계를 다시 숙고할 것을 촉구한다. 이제 여성들 내부의 차이와 위치성을 고려한 교차적 접근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여성농민들은 우리를 먹여 살린다. 그리고 여성농민 김정열의 말처럼, “여성농민이 지구를 식힌다.” 긴급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개인적 실천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 전환을 위한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4년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선거의 해였고, 우리나라도 지난 봄 제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을 치렀다. 전체 유권자의 33.5%가 ‘기후유권자’라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도정치에 더 많은 기후정치인을 등장시키고 기후정책을 촉구하자는 흐름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득표를 통해 기대만큼의 큰 지지는 얻어내지는 못했다.
어떤 이들은 기후정치를 앞세우는 대안정치를 두고 익숙한 ‘사표론’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비평은 정치를 승패만을 가르는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식으로만 보는 협소한 관점일 뿐이다. 기후정치에는 그런 관전평이 아니라 몸을 일으켜 기후정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실천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지역 일상의 삶에서 시민들이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촉구하고 감시하고 행동하는 정치행동이 모여 기후정치 세력화로 나아갈 수 있다. 시민사회연대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도 총선 앞두고 구성한 기후정치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일상적 기후정치를 모색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먹고사니즘’
기성 제도정치가 기후위기 대응에 왜 이리 무능한가 하는 답답함이야 있지만, 기후정치는 특별한 누군가가 대신 해주지 않고 결국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그래서 농사일에 분주한 여성농민들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국회로 광장으로 직접 달려가시지 않나. 제도정치인만 아니라 기후운동 판에도 미디어가 주목하는 셀럽이 없지 않지만, 전문가나 셀럽보다 행동하는 풀뿌리 시민들의 정치가 바닥부터 다져지는 것이 중요하다. 페미니스트 기후활동가 리베카 솔닛(R. Solni t)은 “영웅주의는 재앙”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기후정치를 외치는 것을 두고 어떤 이들은 먹고사니즘이 먼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기후정치가 필요하다. 당장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해 이보다 더 긴급한 먹고사니즘이 어디 있나?
기후시민들이 거리를 메우고 목소리를 쏟아내기 위해 올해도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907 기후정의행진은 이번에 청와대로 용산으로 향하기보다 강남대로 한복판을 가로질러 걷는다. 더 많은 혹은 낯선 시민들과 만나기 위한 모색일게다. 어디에 가고 누구의 곁에 어깨를 나란히 서려고 애쓰는지, 행진에 나와 함께 걷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다.
그동안 행진에 함께 해보지 못해 이번이 처음이라 어색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 시작이 있어야 지속도 가능하다. 한 걸음만 발을 내딛어 기후정의행진 흐름에 몸을 실어보자.
거리로 나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혹시 나란히 선 곁에 지역에서 오신 여성농부님이 계시거든 감사의 눈인사라도 건네 보자. 서울로 강남대로로 오기가 어렵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기후정의행진에 함께 할 수도 있다.
907 기후정의행진에서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젠더정의 없는 기후정의 없다”는 구호가 더 크게 더 힘 있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