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 남짓 해외에 머무는 중인데 현지시간 자정을 전후로 전화가 폭주했다. 잠시 다 내려놓고 싶어 떠난 길이라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부재중 전화 숫자가 계속 늘어나니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개중 익숙한 번호에 문자를 보냈다. “딥페이크 관련해서 인터뷰 드리려고 연락했었어요”. 답장을 읽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후 한국에서 월요일이 뜨겁게 지나간 후 현지에서 월요일 아침을 맞아 간밤에 쏟아진 뉴스를 보다가 입에서 탄식이 베어 나왔다. 웃기게도 제일 먼저 어린 조카아이가 유학 중인 것이 안도됐는데 그런 스스로가, 내가 사는 사회가 모두 싫었다.
불과 몇 달 전 시사프로그램에서 소위 ‘서울대N번방 사건’ 관련해서 인터뷰를 할 때, 여성 기자들과 작가들이 이구동성 관련법에 의문을 표했다. 관련법에서 반포 목적을 범죄 성립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포가 안됐거나 실수인 것처럼 유포되면 처벌이 안 되는 것이냐 분통을 터트렸다. 카메라 앞에 앉아 질문을 받아 설명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법이 이 수준인 상황에 대한 변명을 하는 형국이었다. 관련 법을 만들 때,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딥페이크 관련 법 조항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020년에 개정됐다. 불과 4년 전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딥페이크 관련 기술이 조악했고 피해자는 주로 여자 연예인들이었다.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허위 영상물을 편집·합성·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언뜻 보면 엄벌 규정 같지만, 입법자들조차 딥페이크가 왜 심각한 범죄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법이었다. 딥페이크가 피해자들에게 남기는 손해와 상처가 무엇인지 이해한다면 유포할 목적이란 전제조항은 불필요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내 신체가 몰래 촬영당했거나 강제로 촬영당한 것과 실제 내 신체가 아니지만 합성물인지 여부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을 목격하는 충격은 어떻게 다른가? 불법 촬영을 하거나 불법 합성물을 만드는 것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무슨 차이가 있나? 소비는 어떤가? 그런 사진이나 영상이 합성물이면 남이 그걸 보거나 가지고 있는 것이 실사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을까? 합성물의 상태가 상대적으로 조악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좀 위로가 될까? 모든 범죄의 시작과 끝에는 범죄수익창출이 있다. 디지털성범죄 역시 다르지 않다. 거기에 디지털성범죄의 소비는 유통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당시 관련 조항에는 시청과 저장에 대해서는 범죄로 규정조차 하지 않았다.
입법부에서 관련 조항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지만, 당시 법무부 차관이나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참여했던 회의 기록을 보면 입법 주체들이 딥페이크 범죄의 흐름이나 피해자들이 입게 되는 피해에 대해 무지한 민낯이 드러난다. 반포할 목적이 아니어도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거나 청소년들이 자기 컴퓨터에서 혼자 작업한 것을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는 사뭇 지엄한 법조인들의 의견에 묵살됐다. 살인, 절도, 폭행처럼 오랜 세월 잘못으로 인식하고 있는 범죄들을 두고 가해자가 어리다거나 장난이라고 여길 수 있으니 처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성범죄에 있어서는 가해자가 잘못인지를 모를 수 있음을 걱정한다. 범죄를 처벌하고 예방하려면 피해자가 입는 피해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가해자의 무지 가능성이 이를 압도한다. 이렇게 가해자 입장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입법자들의 행태는 성범죄 중에서도 특히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도드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들은 디지털을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도 아니다. 이러한 입법자들의 혜량은 실상 가해자들의 무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것을 그들만 모를 뿐이다. 그 무지의 발로는 법이란 정의구현과 함께 사회질서 유지의 기능이 있다는 그럴 듯한 이유로 포장된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가해자에게 궁휼한 법은 눈부시게 변화하는 사회에 큼직한 입법공백을 만들고 전면에서 사회질서를 교란한다. 그것이 이번 주에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만든 딥페이크 사태다.
법이 있어도 사법 영역에서 입법 취지가 제대로 기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정책이나 사법이 입법된 법을 뛰어넘어 작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보호하지 못한 아이들과 이들의 부모들에게 정말 미안해야 할 것은 단순히 입법의 부재나 처벌의 미흡이 아니다. 이 모든 난국은 결국 이를 관장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인식의 부족함에서 비롯됐다. 그런 부족하고 편향된 스스로의 상태를 겸허하게 돌아보고 인정하는 시작이 있어야 함께 나아감도 비로소 시작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