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한국젠더법제사

전두환 통치시대의 대표적 젠더법에는 지난 호에서 살펴봤던 제5공화국 ‘헌법’의 “양성평등” 명시와 ‘여성고용촉진을 위한 입법’ 외에 다음 4종의 입법이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유엔인권정책센터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의 비준과 비준유보

우리나라는 당시 유엔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정부는 국제적 동향에 발맞추고자 유엔의 ‘여성차별철폐협약’에 1983년 5월에 서명했고 비준을 준비했다. 여성단체들은 비준 전에 협약에 상충되는 ‘가족법’과 ‘국적법’의 여성차별규정들을 먼저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1984년 7월에는 41개 단체들이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단체연합’을 결성하고 법개정 촉진활동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적, 혼인, 부모의 권리, 자녀의 성(姓) 결정 등 부부의 권리에서의 남녀평등을 요구한 협약의 조항들(제9조와 제16조의 4개 조항)에 대해서는 비준을 유보한 채, 1984년 12월 27일에 비준했다. 이에 따라 협약 중 비준한 조항들만 1985년 1월 26일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졌다.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盧泰愚)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 대표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6.29민주화선언을 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6.29민주화선언을 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제6공화국 ‘헌법’의 여성권익 관련조항들의 신설과 한계

1987년 6월에 전국적으로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항쟁이 벌어지자 전두환 대통령은 제6공화국 ‘헌법’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하겠다는 등의 ‘6·29 민주화 선언’을 했다. 이에 한국여성개발원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계의 헌법개정의견서를 각각 제출했다. 그 영향으로 1987년 10월 29일에 전부개정된 ‘헌법’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과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리고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규정에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문을 삽입했다. 또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규정에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조문을 삽입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국가들의 ‘헌법’ 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여성권익과 성평등 관련 조항들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남녀평등권의 명시를 요구한 여성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노력의무 규정들을 둔 한계도 있다.

가족법 개정의 대체 입법과 한계

1986년 11월에 가족법개정운동측이 가족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유림측은 12월초에 가족법개정결사반대시위를 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난처하다가 결국 1987년 11월 28일에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1977년에 이어 제2차로 제정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 법은 동성동본금혼규정을 개정하지 않은 채 이 규정을 위반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1988년에 한해 한시적으로 혼인신고를 접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과 오류

1983년 1월에 제기된 최초의 여성정년차별 투쟁 소송에 대해 제1심과 제2심의 법원은 성차별이 아니라는 판결을 했다. 또한 1985년에 법원은 미혼 근로여성의 교통사고 사건에서 26세 여성결혼퇴직제를 전제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한 판결을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운동과 아울러 보다 구체적으로 고용상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활동을 촉발시켰다.

이에 한국여성개발원은 여러 외국법을 연구하고 우리나라에 적합한 법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여 1985년 말에 완료했다. 그런데 주무부처의 관료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이 연구의 보고서 발간을 보류시켰다. 그후 정부와 집권당은 1987년 대통령 선거와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1987년 12월 4일에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우리나라 최초로 모집과 채용, 교육·배치·승진, 정년·퇴직·해고에서의 성차별을 규제하고 육아휴직과 고용차별 분쟁처리 제도를 규정한 특별법이라는 점에서 입법의의가 매우 크다. 그런데 이 법은 남녀 모두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차별 금지와 육아휴직 제공을 규정했고, 분쟁처리도 근로여성이나 사업주가 요청하는 경우에 지방노동행정기관의 고용문제조정위원회가 조정할 수 있도록 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특히 근로조건의 가장 핵심인 임금에서의 성차별 금지를 누락한 결정적 오류도 있었다. 그 요인은 정부와 국회가 입법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를 무시한 채 일본에서 1985년에 근로여성의 복지를 위해 제정된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을 무분별하게 참조해 입안을 한 것에 있다. 여성단체들은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에 대해 “선거용 졸속 입법”이란 비판을 했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명예교수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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