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가 열리는 4월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가 열리는 4월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18일, 한국에 역사적인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이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를 인용하며 피고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동반자 집단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와 같은 판결은 혼인평등법 제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판례로서의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헌법상 위헌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의의 또한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판결문을 읽으며 2011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때부터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임신·출산이 명시된 것을 문제 삼아 선동해온 보수-개신교단체와 지난 4월 26일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찬성에 열변을 토한 국민의힘 소속 김혜영 서울시의원을 떠올렸다. 김혜영 의원은 그날 “학생인권조례가 오늘날의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는 주범이 되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인권 조례가 시행된 후 현재까지의 지난 10여 년을 돌이켜보면 학생인권 조례는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들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포함시켜서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왔다.” 결국 그날, 보수-개신교 단체와 김 의원의 뜻대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처음 제정된 2012년 이후 12년 만에 폐지되었다. 그리고 지난 7월 23일 대법원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여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을 극적으로 재개하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이제까지와 같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이 상위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적법·타당한 입법임을 밝히겠다고 입장문까지 써서 피력했다.

이처럼 지역 단위 학생인권조례가 지닌 위태로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학생 인권을 공통 의제로 모인 다양한 활동가들이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국회도서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문수 의원의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 발의에 대한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하 학생인권법) 입법 토론회’가 있었다. 김문수 의원은 법안을 제안한 이유로 지방의회에 연이은 조례 폐지 시류에 맞서 학생인권조례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인권 보장 규범이 보편적 인권 보장 규범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를 법률로 제정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활동가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발의를 앞두고 있는 해당 법안의 제8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는 또다시 성적(性的)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빠져있다.

기시감이 들었다. 2011년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당시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이 거리를 전전하며 약 9만 7천 명의 서명을 받아 힘겹게 주민 발의한 학생인권조례안의 차별 금지 조항에 임신·출산 및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삭제하고자 개악을 시도했던 시의회의 모습이 악몽처럼 떠오른 것이다. 당시 주민 발의 서명에 참여한 9만 7천 명의 서명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국회가 학생인권법 발의를 앞두고 여전히 보수-개신교단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들에게 사회적 합의란 다른 것이 아니라 보수-개신교단체의 공격이라는 사실이다.

대법원의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판결 바로 다음 날, 또 다른 기쁜 판결이 있었다. 법원이 성소수자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기독교 감리회에서 출교 당한 이동환 목사의 출교 처분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에 “동성애의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왔고,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는 점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판결문에서 다시 한번 헌법의 평등권이 언급되었다.

다시 학생인권법으로 돌아와 묻고 싶다. 학교는 치외법권인가? 학생 또한 마땅히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평등권을 누려야 한다. 7월 18일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1주기이기도 했다. 나는 보수-개신교 단체가 ‘교권’을 되찾아오겠다는 명분을 미끼 삼아 학생에게 마땅히 적용되어야 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조항을 삭제하려는 반헌법적 공격은 교사 집단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하지 않는 것은 교사의 인권, 그리고 노동권을 재확립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아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는 교사의 인권 및 노동권과도 직결되어 있다. 성소수자 학생 뿐 아니라 성소수자 교사 또한 학교에서 평등한 권리를 함께 누려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생인권법은 교사의 인권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앞으로 발의되어야 할 학생인권법은 보수-개신교 단체의 부박한 상상력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혜원 『퀴어돌로지』 기획 및 공저자
연혜원 『퀴어돌로지』 기획 및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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