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6명, 단톡방 만들어
애인·사촌·동료·유명인 80여명 성희롱
가족정보까지 거론하며 조롱
검찰, 모욕 혐의 적용해 구약식 처분
전문가 “단톡방 성희롱도 성범죄”
<편집자주> 지난해 4월, 두 명의 20대 여성이 여성신문 편집국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20대 남성 6명이 단톡방을 만들어 주변 여성과 유명인 등 80여명의 사진을 올리고 온갖 비속어로 성희롱했다고 제보했다. 여성신문은 1년 2개월여 동안 당사자들과 소통하며 추이를 지켜보다 최근 검찰이 단톡방 가담자들에게 벌금 3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리고 가해자 사망으로 피해자 중 1인이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보도를 결정했다. 당사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모든 기사에는 가명을 사용했다.
(1) 여성 80여명 2년간 성희롱한 ‘밀덕 단톡방’, 검찰은 ‘벌금 30만원’ 처분
(2) 한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의 자살…죽음이라는 2차 가해
(3) 단톡방 성희롱은 디지털성범죄...예방과 2차 피해 방지 위해 법 개정 필요

“태현(가명)이와 그 단톡방 사람들은 서로를 ‘OO동서’라고 부르며 저를 향한 성희롱을 일삼았어요. 단톡방에서 제 사진과 이름이 모두 거론된데다 사건을 인지한 제가 성적 모욕감을 느꼈는데도 성희롱이 아니라뇨. 전혀 납득할 수 없어요.”
20대 여성 김유정(가명)씨는 13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울분을 토했다. 그는 밀리터리 덕후들이 만든 단체카톡방에서 수십 차례 성희롱을 당했는데 검찰은 모욕 혐의를 적용해 벌금 3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실 유정씨는 해당 단톡방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는 지난해 4월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당신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서 20대 남성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면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단톡방의 존재를 먼저 알게 된 박수영(가명)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수영씨는 자신도 해당 단톡방에서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며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같이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정씨는 수영씨를 통해 단톡방에서 자신의 사진들을 놓고 “유정이 XXX 쥐어 짜면서 ㅁㅁ마렵네”, “나도 유정이랑 하고 싶다”, “유정이 한 명이면 11명이서 (성관계) 가능하다” 등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희롱들이 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단톡방에서 공유된 사진들은 유정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던 것들이었다.

‘밀리터리 덕후’ 친목 위해 만든 단톡방 , 실상은 여성들 2년간 성희롱 반복
이 단톡방은 2021년 개설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밀리터리 덕후(군사 및 무기 정보 애호가)’ 20대 남성 6명이 오프라인 만남 등 친목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이 이 단톡방의 존재를 알고 사과를 요구하기 전까지 이들은 서로를 ‘OO동서’라고 부르면서 본인이 직접 찍거나 공유 받은 여성들의 사진 및 동영상을 올리며 거의 매일 품평회를 열었다.
유정씨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던 수영씨는 당시 단톡방 참가자인 최태현(가명)씨와 연인 관계였다. 수영씨는 단톡방에서 ‘O집’, ‘계X년’으로 불렸다. 특히 태현씨과 수영씨가 만난 날의 단톡방은 수영씨를 향한 성적 모욕으로 가득 찼다.
단톡방 참가자들은 현·전 애인, 사촌, 직장동료, 연예인, 정치인 등 80명 이상의 여성들을 성희롱의 소재로 삼았다. 애인과의 성관계 경과를 공유하거나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적 모욕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가족정보까지 공유하고 있었다. 또 다른 피해자인 현서(가명)씨를 두고 “우리는 현서 아버지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현서는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너무 웃기다”라며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까지 조롱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단톡방 가담자 중 한 명은 수영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수영씨가 유정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단톡방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렸다는 이유였다. 그는 수영씨에게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 무시하고 성폭력 가해자라고 말하는 건 마음의 상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유정씨와 수영씨는 지난해 8월과 10월 단톡방 가담자들을 고소했다. 지난 3월 검찰은 가담자 중 일부에 모욕 혐의를 적용해 벌금 3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렸다. 단톡방에 피해자가 들어가 있지 않았고, 가해자가 올린 사진이 불법촬영물이나 성적 모욕감을 주는 ‘음란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들은 단톡방 성희롱이 성범죄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영씨는 여성신문에 “단톡방에 자신의 사진이 올려지고, 수차례 이름을 언급하며 성희롱이 이뤄졌는데 어떻게 성범죄가 아닐 수 있느냐”며 “가해자의 혐의가 단순 모욕에 불과하다는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처벌 미미한 단톡방 성희롱…“처벌법 제정·경찰수사 강화 필요”
수년에 걸쳐 명백한 성희롱이 이뤄졌음에도 단톡방 참가자들이 성희롱 등 성폭력범죄가 아니라 모욕죄로 처벌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법상 단톡방 성희롱은 성범죄로 다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성희롱은 통상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처벌된다. 이 경우 가해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가 포함되지 않은 단톡방에서 이뤄지는 성희롱은 피의자가 올린 사진이 불법촬영물이나 성적 모욕감을 주는 ‘음란물’로 보기 어려워 통신매체이용음란죄가 아닌 모욕 혐의만 적용된다.
모욕죄의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형량의 절반 수준이다.
피해자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송명진 법률사무소 명전 변호사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영상물은 피해자가 없는 공간에 올라가더라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문자만으로 이뤄지는 단톡방 성희롱은 모욕 또는 명예훼손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송 변호사는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단톡방 성희롱은 성범죄로 다뤄지지 않아 처벌수위도 낮을뿐더러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은 상황”이라며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성희롱이라면 피해자가 없는 단톡방에서 이뤄졌더라도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단톡방 성희롱의 특수성을 고려해 경찰의 수사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단톡방 성희롱 사건 피해자들이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위험에 빠지거나 추가 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피해자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가해사실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수사규칙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톡방 성희롱은 성희롱 아냐’ 범죄 파악해도 처벌 미미
단체채팅방이 활성화된 2010년대 이후 대학, 관공서, 기업 등 곳곳에서 단톡방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지만 가해자들이 받는 처벌의 수위는 일반 성범죄보다 낮다.
2022년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 배석 위수현·이은경)는 단톡방에서 동료 여경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을 반복한 서울경찰청 소속 남성 경찰관들에 대한 서울경찰청의 중징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경찰청의 징계는 남성 경찰관들의 행위가 성희롱 행위에 해당함을 전제로 했지만, 단톡방 성희롱은 일반적인 성희롱과 불법성을 같게 평가할 수 없어 부당하다는 이유다.
단톡방 성희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학에서도 처벌이 약하다. 지난해 교육부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최근 5년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발생 및 조치 현황’ 분석 결과를 보면, 최근 5년(2019~2023)간 전국 국공립대학교에서 발생한 단톡방 성희롱 중 16건 중 유·무기정학 등 징계를 내린 사건은 6건에 그쳤다.
단톡방 성희롱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업체 ‘빅카인즈’를 검색 결과에 따르면, 국내 언론사가 2016년부터 올해까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수는 663건(사건 중복 포함)에 달한다.

* 성폭력·성희롱 피해 신고는 경찰청(☎112), 상담은 여성긴급전화(☎지역번호 + 1366)를 통해 365일 24시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뉴스 댓글란을 통해 성폭력·성희롱 피해자 대한 모욕·비하 및 부정확한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여성폭력방지법의 2차 피해 유발에 해당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