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뉴시스

'이 청년이 사는 곳'은 처음에는 그저 '청년들이 집값이 너무 비싸 힘들어하고 있다'는 간단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청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지면에는 담을 수 없는 더 깊은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역세권 고가 오피스텔에 살면서 부모의 돈으로 월세를 내는 한 청년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말했다. 지하철역에서 또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언덕 위 반지하에 사는 다른 청년은 "그래도 자기 정도면 괜찮다"고 말했다.

한 대학생은 자기 집은 정말 가난한데 소득 10분위라서 국가 장학금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소득 10분위면 한국장학재단의 월 소득인정액이 1468만원을 초과한다는 뜻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렇게 많이 버는데도 이 학생은 자신의 집이 가난하다고, 자기가 왜 혜택을 못 받느냐고 물었다.

종종 가는 음식점에서 배달을 하는 한 청년은 국가장학금을 전액 받을 수 있는 계층이지만, 등록금이 해결된다 해도 생활비 등을 마련할 수 없고,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의 생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강남에서 IT기업에 다니는 한 청년은 부모의 신용카드로 생활하면서 한도가 너무 적다고 가난을 토로했고, 마찬가지로 강남에서 미용일을 하던 다른 청년은 고용보장도 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결국 서울살이를 포기했다.

'양극화'는 참 편리한 표현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이야기에는 양극화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난'에 대한 감각이다.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태어나 살아온 청년들은 이보다 못한 주거 형태, 혹은 서울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경험을 통해 가난을 감각한다.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의 정체다.

가난은 추락이다. 사다리를 올라가본 적이 없다면, 혹은 사다리 위에 서 본적이 없다면 추락을 경험할 수 없다. 부유했던 적이 없다면, 가난을 감각할 수 없다.

정부는 가난하다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의 목소리만 듣고 이들이 원할만한 역세권 청년주택이니, 청년전세니 하는 주거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거기 들어가 살 수 있는 청년들은 그거 없어도 살 곳이 충분히 많다. 결코 싸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짜 귀기울여야 하는 쪽은 부유함을 경험한 적이 없어 가난을 자각하지 못하는, 목소리마저 내지 못하는 청년들이다.

 

[이 청년이 사는 곳]

① 망원동 동갑커플이 '영끌'로 신혼집 구입한 이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958

② 관악구 재개발 지역 '반지하 뮤지션'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672

③ 그녀는 왜 서울을 '탈출'했나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437

④ 7년 차 소방관의 원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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