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빌라 밀집지역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빌라 밀집지역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화장기 없는 얼굴에 허름한 깔깔이를 걸치고 나타난 윤영미(가명) 씨.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기억 속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5년차 헤어 디자이너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올해 27살인 그녀는 강남에서 일을 하면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항상 어딘가 지치고 그늘져 있던 모습이었다. 1년여 만에 만난 그녀는 평범한, 하지만 아주 편안해 보이는 옷을 입고 나타났고, 무엇인가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올해 초 그녀는 7년간의 서울 독립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 20대 대부분을 바쳤던 '헤어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버리고 아버지 아래서 여러 가지 일을 배우고 있다.

그녀는 '프로 이사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용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 홀로 올라와 서초구 서초동 오피스텔에서 강남을 거쳐 송파구 삼전동 빌라까지 수없이 많은 이사를 했다.

집을 고르는 최우선 조건은 '역세권' 여부였다. 직업 특성상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피곤하고 다리가 아팠다. 그녀는 "집은 단지 쉬는 공간이기 때문에, 집까지 가는 거리마저 멀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라고 말했다. 때문에 매번 이사를 하면서도 역세권을 고집했다.

다음으로 꼽은 조건은 '넓은 화장실'과 '무관심한 집주인'이다. 화장실은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이니 그렇다 쳐도, 무관심한 집주인은 다소 의외였다. 그녀는 "항상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일하는 시간 외까지 '갑'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월세만 제날짜에 넣어주면 아예 답장도 없는 그런 집주인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한 번도 전세에 살아보지 못했다. '프리랜서'라는 신분으로는 강남권에서 전세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마지막에 살았던 삼전동 빌라에서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4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고,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54만원, 대출이자 4만원을 내고 살았다.

독립 생활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집에서 요리도 직접 해 먹고 서울에서의 삶을 만끽했지만 혼자 사는 것은 결국 기댈 곳도, 아프면 보살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외로웠다"고 털어놨다. "일이 너무 힘들었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했고, 집에 와 지쳐 나가떨어지면 먹는 것도 귀찮아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라 밀집 지역 ⓒ전성운 기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라 밀집 지역 ⓒ전성운 기자

그렇게 옮겨 다니며 살기를 7년, 마침내 한계가 찾아왔다. 사실 집이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집이 문제였다. 미용업의 구조적 '노동 착취'는 그녀가 더이상 서울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떠밀었다.

일단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다. 노동시간도 지키지 않는다. 애초에 '고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용사는 '프리랜서'이면서도 사실상 업주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아무도 그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미용사가 되기 전엔 교육생이라는 명목으로 일을 시키면서 '교육비'라는 명목으로 다시 빼앗아 갔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통에 업무적인 피로도도 높은데, 효율적인 관리라는 명목하에 군대식 위계질서가 강요된다. 여기에 온갖 진상 손님까지 상대하다 보면 정신이 너덜너덜해지기 일쑤다. 그녀는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가도, '성공한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면 참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자기 세뇌를 했다"고 말했다.

미용을 배우고 헤어 디자이너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여성이다. 고등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부터 이 일을 시작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이런 불합리함, 부조리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일로 여기게 된다. 사실상 '가스라이팅'이다.

그녀도 2년의 공부와 5년간의 디자이너 생활을 겪으면서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내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찾아왔다. 하지만 손님이 줄었다며 돈은 주지 않는데 '착취'하는 구조는 여전했다. 더이상 버틸 수 없는 단계가 찾아왔다.

2021년 1월, 그녀는 마침내 서울을 '탈출'했다.

지금은 수원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건축 자재를 납품하거나 영업하는 일이다. 그녀는 "기존에 오프라인으로만 하던 일을 내가 들어오면서 온라인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홍보물을 직접 만들어 보려고 유튜브를 통해 디자인 공부도 하고 있다. 그녀는 "이전에 하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일단 몸이 편하고, 일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헤어 디자이너는 휴가가 없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차도 없다. 20대 동안 일만 했던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사실 이곳의 삶이 답답하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이 아니다. 두 달 정도 산 게 고작인 이 동네에 친구가 있을 리도 없고, 주말에 갈 곳도 없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최근 구입한 중고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서울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다시 '그 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는 "지금은 배우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지만 일이 익숙해져 혼자 해낼 수 있게 되면 다시 서울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 청년이 사는 곳] : 청년 빈곤 시대. 집은 청년 빈곤의 정점에 있다. 인생의 출발점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젊은이들. 정부에서 많은 정책과 다양한 집이 제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집을 해결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주거 정책이 청년들의 삶과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길 바라며 청년들이 사는 그 곳의 진짜 이야기를 소개한다. 피, 땀, 눈물이 담긴 청년들의 주거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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