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오거돈·박원순...정치권과 기관의 ‘안으로 굽는 팔’ 어떡하나
안희정·오거돈·박원순...정치권과 기관의 ‘안으로 굽는 팔’ 어떡하나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7.11 09:23
  • 수정 2020-07-15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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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박원순 서울시장 극단 선택
전날 성추행 혐의로 피고소
빈소서 정치인들이 보여준
정치인들의 공고한 '남성연대'

정당 내부에선 제식구 감싸고
피해자 곁에 서지 않아
행정기관에선 피해 사실 알리면
상사인 가해자가 보고받는 구조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원에 성추행으로 피소당한 지 하루 만인 9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보다 앞서 6일에는 성폭력으로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모친상에 유력 정치인들이 공개 조문하고 실언을 하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직원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퇴했다. 연이은 남성 정치인들의 성폭력 논란과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드러나는 행보에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하는 정당과 행정기관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 를 방문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 를 방문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지금이 그걸 이야기 할 때야?”... 그럼 언제 하나?

성폭력 사건을 일으킨 이들도 문제지만 이들을 대하는 다른 정치인들의 태도도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성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데다 동료를 감싸는 모습에서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단체와 기관이 공유하는 성폭력에 대한 의식이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 박 시장의 빈소에서 ‘당 차원에서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대응 계획이 있느냐’ 질문한 기자에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며 호통을 쳤다. 이 대표는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다른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은 채 질문한 기자를 노려봤다. 누리꾼들은 "당원이자 현직 지자체장들이 잇따라 성폭력 혐의로 사퇴한 상황에 대해 당 차원의 대응 방안을 묻는 것이 예의없는 일이냐"며 이 대표의 태도가 오히려 국민에게 예의없는 행동 아니냐고 질타했다.

5일 안희정씨의 모친상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의 발언도 논란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통일부 장관 후보자)은 “우리 아버지도 내가 징역살이 중에 돌아가셨다.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고 김부겸 전 의원은 “(안 전 지사가)여러가지로 어려운 사정인데 이런 일까지 당했으니 당연히 와야 한다. 서로 격려와 위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징역살이'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직선제 개헌운동을 주도하던 중 있었던 사실이다. 안씨는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안씨의 모친상에 조화와 조기를 직함을 달고 보낸 문재인 대통령,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도 거세게 비판받았다. 그러나 비판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문 대통령은 고 박 시장의 빈소에도 조화를 보냈고 여권 유력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안씨를 ‘성범죄자 안희정’으로 칭하며 “그의 정치적 건재함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고 여권 정치인들은 정치라는 곳에 여성의 자리가 없음을 다시 확인시켰다. 여성들의 절규를 가볍게 여기고 성범죄자를 두둔하는 남성연대가 여전히 작동함을 보여줬다. 성평등 없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냈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 판결 받았다. 그러나 안희정의 모친상 빈소에는 유력 정치인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 사회 인권 담론은 ‘이미지 정치’에 불과했나

안희정, 오거돈 사건 피해자를 지원했던 단체와 활동가와 정치권 관계자 등은 강간문화에 절여진 기성 남성 정치인들의 인식이나 성폭력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문제지만 정당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민주당 소속 A씨는 “민주당은 그동안 인권 친화적인 이력을 가진 인물들을 내세우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하겠다 밝히는 것만으로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감추려고 했던 게 아닌지 물어야 할 때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고 박 시장과 안희정은 대대적으로 여성인권 친화적인 언행으로 여권에서도 두드러졌던 인물들이다. 박 시장은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 여성인권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의 변호를 맡으며 인권변호사로서 여성인권에 일조했다. 아울러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성 평등인권위원회’를 설치하며 성폭력 예방과 대응매뉴얼을 마련하고 주기적인 교육을 시행했다. 안희정은 자신의 SNS에 여성주의 도서에 대한 감상을 종종 남겼고 2017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보게 됐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은 ‘남성의 패권적 질서로서의 국가권력’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딱 그거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A씨는 “민주당은 인권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은 계속 부재한 채로 이들의 인권친화적인 면모에만 기댔던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민주당은 그동안 성폭력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강경대응하고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위한 기구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같은 행보에도 남성 정치인들에 의한 성폭력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당시 민주당은 당 윤리심판원 회의를 열고 20분만에 그를 제명했다. 4.15총선 당시 공천에 나섰던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서도 심사 탈락시켰다. 민주당은 지난 1월 ‘인권 감수성 제고와 혐오 차별 근절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안희정 사건 당시도 비슷했다. 민주당은 폭로 당일 출당·제명 절차를 밟고 당 내 젠더폭력대책TF를 당 내 특별위원회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2020년 7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를 막을 순 없었다.

피해자 보호 조치에 미흡한 행보와 탈당·제명과 무관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태도가 고 박 시장 사건을 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안희정 사건 당시 피해자 김지은씨를 향한 2차 가해가 이루어지자 이를 제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는 했으나 직접적인 보호 조치에는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에 2차 가해로 고소 당한 이들이 현재도 민주당 의원실에서 활동 중이다. B씨는 2018년 5월 안희정 사건 기사에 김지은씨에 대한 사실무근의 악성댓글을 달아 전국성폭력상담협의회로부터 고소당해 오는 7월22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B씨는 현재 민주당 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하는 중이다.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 14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상사에게 당한 피해를 보고했더니 그 상사가 보고받더라  

정당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닌 행정기관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다. 10일 오전 서울시는 고 박 시장의 장례식을 서울특별시장(葬) 5일장으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곳곳에서 특별시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피해자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 하고 가해자의 편에 기관이 섰다는 것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SNS에 "서울시장장과 시민분향소를 취소, 중단하라"면서 "A씨를 보호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해 지원과 보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박 시장의 시민운동가로서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이라면서도 "서울시장장 시민분향소는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동의청원에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언론에서 국민이 지켜봐야 하나? 대체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라며 가족장으로 치를 것을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10일 오전 10시경 게시돼 오후 8시 현재 22만4315명의 동의 수를 얻어 청와대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기관 내에서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의 경우 피해를 보고할 체계 자체가 부재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시청 내에 젠더 특보 등이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이를 성폭력 가해자가 보고 받는 체계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취지다. 윤김 교수는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 인사로 구성된 피해 보고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피해를 알려도 묵살 되고 마녀사냥 당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고 박 시장의 피해자는 앞서 고소 전 피해 사실을 상급자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인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은씨 또한 지난해 출간한 책 『김지은입니다』를 통해 사건 당시 폭로 전까지 대권잠룡으로 불렸던 안희정의 권력을 직접 목격하는 동안 자신이 피해를 진술해도 무의미 할 거라는 생각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10일 성명을 발표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피해자의 용기에 도리어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는 정치권, 언론, 서울시, 그리고 시민사회에 분노한다”며 “서울시는 진실을 밝혀 또다른 피해를 막고 피해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서울시의 5일간의 대대적인 서울특별시 장, 장례위원 모집, 업적을 기리는 장, 시민조문소 설치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곁에 있겠습니다. 약자의 곁에서, 이야기되지 못해온 목소리에 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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