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문화정전(Kulturkanon)’을 손에 든 파리사 릴리에스트란드 문화부 장관. ⓒ파리사 릴리에스트란드 장관 인스타그램 캡쳐
‘스웨덴 문화정전(Kulturkanon)’을 손에 든 파리사 릴리에스트란드 문화부 장관. ⓒ파리사 릴리에스트란드 장관 인스타그램 캡쳐

9월 초,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 문화정전(Kulturkanon)’을 발표했다. 역사학자 라쉬 트레고드가 위원장을 맡아 10개 분야 100개 항목을 뽑았고, 정부는 이를 “교양과 지식을 위한 공동의 도구”로 설명했다. 실제 목록에는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트럼프』, 셀마 라게를뢰프의 『외스타 베를링의 전설』, 카린 보예의 『칼로카인』,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1766년 세계 최초「출판자유법」과 ‘아빠 육아휴직’ 제도, 이케아 엘름훌트, 사브 비겐 등 예술에서 제도 그리고 산업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이 포함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최소 50년 이상 된” 고전 중심의 원칙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노벨상(Alfred Nobel의 유산)’ 자체가 발명과 제도 항목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노벨이 남긴 상은 과학, 문학, 평화 분야의 세계적 기준을 만들어낸 스웨덴발 지식 인프라이자, 자국 경계를 넘어 인류의 성취를 호명하는 메타-제도적 발명으로 기능해 왔다. 문학 부문에서는 셀마 라게를뢰프가 정전에 포함된 대표 작가로, 그녀는 19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스웨덴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시 부문에 오른 토마스 트란스트뵈메르 역시 201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으로, 정전은 스웨덴 문화가 국내의 ‘고전’과 국제적 권위를 어떻게 교차시켜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다그 함마르셸드(저서 『이정표(Vägmärken)』가 수록)는 노벨평화상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스웨덴식 국제주의 전통을 환기한다.

물론 바로 그 지점에서 논쟁도 거세다. 스웨덴 원주민 사미족을 포함한 소수민족 문화계 인사들은 “대표성”과 “맥락 이해의 부족”을 지적했고, 전체 선정 철학이 협소하다는 반론도 이어졌다. 덴마크가 2006년 국가 차원의 문화정전을 공식화했듯 스웨덴의 시도는 유럽에서 낯선 일은 아니지만, 국가가 ‘정전’을 호명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제외’가 생긴다는 위험을 동시에 드러낸다. 특히 세계적 대중문화 아이콘의 부재, 예컨대 스웨덴을 세계에 알린 아바(ABBA)의 누락은 “정전이 당대의 문화 현실을 충분히 비춘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옹호론자들은 이번 목록이 단지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법·제도(1766년 출판의 자유, 1894년 헌법, 1974년 헌법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공공접근원칙, 알레만스레텐), 사회정책(부부 별도과세와 부성 육아휴직), 산업·과학(이케아, 사브, 옴부즈만 제도)까지 아우르며 “문화=삶의 제도적 구성”이라는 북유럽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요컨대, 문화정전은 사회적 학습의 편익과 상징적 배제의 비용을 동시에 품은 제도다.

한국의 문화정전을 만든다면?

이 논쟁을 한국의 오늘에 대입해 보자. “한국 문화정전을 만든다면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가정은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과 금속활자, 판소리·가야금·거문고와 같은 전통예술, 단오·김치 등 생활문화, 거북선과 수군제도 같은 역사유산은 물론, 20–21세기의 대중문화—영화, 게임, K-팝—까지 우리의 문화사에는 촘촘한 ‘공통의 언어’ 후보들이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질문이 곧 “누가 한국의 정체성을 정의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정치·윤리적 질문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의 정전 만들기는 지역·세대·계층·이주배경·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의 기억을 어떻게 함께 담아낼지에 관한 사회적 약속의 문제이며, 나열식 명단이 아니라 “선정 원칙과 참여 방식” 자체가 곧 핵심이 될 것이다. 외교적으로도 주변국—중국·일본 등—이 자국 중심 서사를 강화하는 시대에 한국이 ‘우리의 서사’를 가다듬는 일은 문화자주성과 상호존중의 균형을 정교하게 요구한다. 그 균형을 놓치면 자부심은 순식간에 배타적 민족주의로 기울 수 있고, 오히려 국내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결론은 조심스러운 제안이다.

첫째, 목록보다 ‘과정’을 먼저 디자인하자. 학계 그리고 예술계뿐 아니라 지역공동체와 소수자 집단, 청년과 이주민까지 ‘열린 공론’으로 참여시키고, 선정 원칙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예컨대 “시간의 검증” 기준을 둘 것인지, 동시대성도 포함시킬 것인지를 국민과 함께 합의하자.

둘째, ‘정전’이라는 무게 대신 ‘공유 아카이브’ 정도의 비종교적이며 비정치적인 언어를 택하자. 교육, 박물관, 디지털 플랫폼을 연결해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열린 토론과 수정 가능한 살아있는 목록으로 운영하면, 정전의 경직성을 줄이고 참여의 관문을 낮출 수 있다.

셋째, ‘자부심’과 ‘성찰’을 한 세트로 설계해 보자. 우리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기술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자긍심을 찾아 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고통과 좌절, 모순과 실패의 기억까지 함께 품을 때, 그 목록은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윤리적 방향타가 될 수 있다. 북유럽의 스웨덴과 덴마크, 그리고 오랜 전통과 문화를 자랑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시도에서 배울 교훈은 명확하다.

문화정전은 국가 선전의 도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민들이 함께 역사의 뿌리를 들여다 보고, 미래세대에게도 전수하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국가적 구심점’이 있다면, 그것은 국수주의적 함성을 동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국민의 화합과 단결을 조용히 이끄는 소통의 인프라일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차분히 되짚고, 세계와 나눌 언어를 가다듬는 일—그 자체가 이미 세계적 국가로 나아가는 길의 일부가 아닐까.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필자 : 최연혁 린네대학교 교수는 1997년 예테보리대학에서 비교제도론으로 정치학 박사를 수여한 후 쇠데르턴대학에서 17년간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영국 정경대 정치학과와 UC 버클리 사회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과 연구년을 보냈다. 남아공 스탤렌보쉬 대학 정치학과,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 언론정치대학에서 정치리더쉽과 방법론 강의 등 방문교수활동도 이어 갔다. 주요 연구로 정치제도론, 정치지도자론, 그리고 리더충원론 등 비교정치학적 분야를 다루는 저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린네대학교 정치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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