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취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사임하면서 정국 혼란이 커지고 있다.
AF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르코르뉘 총리는 6일(현지시각)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수리했다.
프랑수아 바이루 전임 총리가 의회 불신임으로 물러나고 르코르뉘 총리가 지난달 9일 임명된 지 27일 만이다. AFP는 이같은 총리 재임 기간은 현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짧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르코르뉘 총리의 사임은 2022년 출범한 마크롱 2기 행정부에서 다섯 번째다. 1기까지 합하면 7번째다. 마크롱 2기때 1년 6개월을 넘긴 엘리자베트 보른 전 총리를 제외하면 가브리엘 아탈·미셸 바르니에·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와 르코르뉘 총리는 모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르코르뉘 총리는 전날인 5일 롤랑 레스퀴르 전 산업장관을 재무장관으로, 브뤼노 르메르 전 재무장관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마크롱 정권 전현직 각료를 대폭 재기용하는 내각을 발표했다.
발표된 장관 18명 중 다수가 바이루 내각 출신이고 다른 신임 장관들 상당수도 마크롱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로, 의회 불신임에도 기존 내각이 사실상 유지된 것이라는 비판이 좌우 진영 양쪽에서 모두 나왔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오전 사임 발표 후 연설에서 "각 당파가 마치 절대다수라도 차지한 양 행동하면서 정파적 욕심만 보이고 있다"며 비난했다.
그는 "타협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모든 정당이 상대에게 자기들의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를 원했다"며 "자존심은 옆으로 제쳐두라"고 타협을 촉구했다.
야권은 르코르뉘 총리 의회 출석일인 7일 정부 불신임안을 표결하겠다고 공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권 반발에 국민연합(RN)뿐 아니라 마크롱 정권과 정국 수습을 논의해온 온건 좌파 사회당까지 가세하면서 르코르뉘 총리는 조각 하루 만에 전격 사임을 결정했다.

1986년생으로 올해 39살인 르코르뉘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의 두 차례 임기 내내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관으로, 총리 직전에는 국방 장관을 맡았다. 신중하고 절제된 성품에 중도주의적 성향으로 총리까지 올랐지만, 끝내 정국 불안정을 돌파하지 못하고 낙마하게 됐다.
프랑스는 지난해 여름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모든 진영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에 빠져 있다.
지난해 9월 아탈 총리 사임 이후 1년 사이에 4명의 총리를 맞을 정도로 정국 혼란이 극심하다.
각 정당은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과 조기 대선을 요구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7년 임기가 끝나기 전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극우 국민연합(RN)의 실질적 지도자 마린 르펜 의원은 "현재는 선거를 치르는 것만이 현명한 일"이라며 "웃긴 상황은 끌 만큼 끌었다. 프랑스 국민은 질려 있다"고 말했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도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RN은 명백히 통치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계는 특히 예산안을 두고 좀처럼 타협하지 못하며 대치하고 있다. 바르니에와 바이루 등 두 전임 총리도 사실상 재정 계획을 둘러싼 갈등으로 쫓겨났다.
프랑스는 2분기 말 기준 공공부채가 3조4163억유로(약 5630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6%에 달할 만큼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중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르코르뉘 총리도 지난달 말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 지출 60억 유로(약 9조9천억원) 감축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승부수를 띄웠으나 오히려 범좌파 그룹(신인민전선)에 최대 의석을 내주며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당의 총리직 요구를 거부하고 중도우파 바르니에·바이루 총리와 자신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르코르뉘 총리를 연거푸 임명하고 예산 긴축을 시도했으나 모든 내각이 무너졌다.
프랑스 언론은 대통령직 사임이나 RN 승리 공산이 큰 조기 총선보다는, 의회가 불신임하지 않을 중립적인 신임 총리를 세워 사태 수습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