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유경하 이화의료원장
역사와 가치로 병원의 미래를 설계하다

소외된 이들 돌본 보구녀관
‘섬김과 나눔’ 정신 계승
서울 소재 대학병원 최초로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 지정
필수의료에 집중적인 투자도
“상급종합병원 진입” 목표

한옥식 보구녀관 앞에선 유경하 이화의료원장 뒤로 현대식 건물의 이대서울병원이 보인다. 유 원장은 “소외된 여성과 약자를 돌보기 위해 설립된 보구녀관은 섬김과 나눔이라는 이화의료원 설립 가치를 교직원들과 공유하는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한옥식 보구녀관 앞에선 유경하 이화의료원장 뒤로 현대식 건물의 이대서울병원이 보인다. 유 원장은 “소외된 여성과 약자를 돌보기 위해 설립된 보구녀관은 섬김과 나눔이라는 이화의료원 설립 가치를 교직원들과 공유하는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가치와 공유, 득심(得心). 이화의료원을 이끄는 유경하 원장의 5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국내 소아종양·혈액종양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2020년 제18대 이화의료원장으로 취임한 뒤 19·20대를 연이어 맡아 5년째 의료원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의료 대란, 이대서울병원 개원 등 굵직한 위기와 변화를 동시에 겪은 그는 “왜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경영의 첫머리에 놓았다. 비용·실적·경쟁보다 가치를 앞세운 경영 철학은 이화의료원의 문화, 공간을 통째로 바꾸는 동력이 됐다. 이화의료원의 전신이자 조선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普救女館) 복원에 앞장선 유 원장은 “소외된 여성과 약자를 돌보기 위해 설립된 보구녀관은 섬김과 나눔이라는 이화의료원 설립 가치를 교직원들과 공유하는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수의료의 메카로 자리잡은 이대서울병원의 상급종합병원 도약을 위해 쉼 없이 뛰는 유 원장을 서울 강서구 보구녀관에서 만났다.

-원장님께서는 5년째 이화의료원을 이끌고 계십니다. 코로나19 대응, 이대서울병원 개원 등 여러 상황을 겪으셨는데, 처음 리더로서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요.

“시작할 때는 두려움이 컸어요.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을 함께하며 힘들었지만 굉장히 보람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을 돌아본다면 가장 의미 있는 역할을 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비용 대비 수익을 내고 병원 간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가치였습니다. 혼자만 느끼면 의미가 없지요. 5300명 교직원이 함께 느끼고 한 방향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일례로, 코로나 팬데믹 당시 감염됐거나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갈 곳이 없었을 때 저희가 빈 병실을 활용해 대학병원 최초의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도 교직원들이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저항보다 응원이 많았어요. 지난해 의료대란 때도 목동·서울병원은 외부에서 슬기롭게 대처한 병원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원장으로서 함께 공부하고 책임감을 다하며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가치를 구성원들과 공유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보구녀관 복원에도 앞장서셨지요.

“처음 서울 마곡에 보구녀관 복원을 추진할 때는 이 좋은 땅에 연구소를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교직원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 병원의 설립 가치를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대체 불가한 자산이 된 거죠. 소외된 조선 여성들을 위해 세워진 보구녀관이 지닌 섬김과 나눔의 정신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인 것이죠.

1885년 메리 스크랜튼 선생님이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WFMS)의 파견을 받아 이화학당 설립의 기반을 마련했고, 1887년 정동에 보구녀관을 세웠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의료기관이자 간호원 양성소, 그리고 여성 전문인의 첫 직장이었습니다. 동대문 부인병원은 20여 명의 여의사들이 교육받고 훈련하던 공간으로,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낸 곳이이에요. 

보구녀관은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여성을 위해 시작한 설립 정신이 깃든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이화 가족들이 우리 의료원의 가치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유경하 의료원장이 보구녀관 내부를 소개하는 모습. 보구녀관은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여성을 위해 시작한 섬김과 나눔이라는 설립 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손상민 사진기자
유경하 의료원장이 보구녀관 내부를 소개하는 모습. 보구녀관은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여성을 위해 시작한 섬김과 나눔이라는 설립 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손상민 사진기자

-보구녀관은 이화의료원이 추구하는 ‘섬김과 나눔’ 가치 확산에도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군요.

“맞습니다. 가치는 말로만 공유할 수 없어요. 보구녀관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우리의 정신을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었어요. 서울 정동길에는 보구녀관 터 표지석이 남아 있습니다. 1887년 미 북감리교회에서 세운 여성 전용 병원이자 이화의료원의 전신이지요. 이곳에는 138년의 역사, 기독교 정신, 여성 의학교육의 출발이 모두 함축돼 있어요. 또한 2023년에는 이대서울병원 지하1층에 이대동대문병원 역사라운지를 개관했습니다. 100여 년 전 가난하고 어려운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설립된 이대동대문병원의 역사와 여의사들의 기록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 보구녀관 복원을 위해 역사 공부를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미션을 수행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6년 교직원들과 함께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이화의료원 135년사 편찬위원회 TF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 두 시간씩 공부했지요. 그 결과물이 바로 『이화의료이야기』라는 책이며, 곧 두 번째 책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 평소 환자와의 소통을 강조해 오셨어요.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원칙과 시스템은 무엇입니까.

“상대의 마음을 얻는 득심(得心)은 경청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직원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환자에게로 이어진다고 봐요. 그래서 세운 원칙이 ‘절대로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사소한 일이라도 직원들이 회의에 참여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게 함으로써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이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 재임 기간 의료수익 등 경영 성과도 좋습니다. 별도로 경영 공부를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책을 많이 읽고 주변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병원 경영에서는 검사실·응급실·수술실을 강화하고, 인간·공간·시간을 아껴 쓰는 ‘삼간·삼실’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참고했어요.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면서 성과로도 이어졌어요. 복잡한 병원 구조로 길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에 따라 번호화 시스템을 도입해 인접 위치를 쉽게 예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초진 환자가 기존 의료기록을 사전에 제출·안내받을 수 있도록 ‘첫 환자 라운지’를 신설해 접수와 대기 절차를 단순화했고요.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위해 직원 제안으로 예술 산책 지도를 제작, 산책 후 카카오톡으로 진료 대기 알림을 받을 수 있도록 했지요. 진료 대기 시간을 활용해 맞춤형 유튜브 콘텐츠를 제공, 환자가 자신의 질환과 치료 과정을 사전에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요. 이러한 개선은 모두 직원들이 현장에서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낸 성과에요.” 

이대서울병원 지하 1층에 마련된 동대문 역사 라운지에 선 유경하 원장. ⓒ손상민 사진기
이대서울병원 지하 1층에 마련된 동대문 역사 라운지에 선 유경하 원장. ⓒ손상민 사진기

- 여성암·비뇨기·뇌혈관·대동맥혈관·엄마아기·혈액암 등 6개 특성화병원은 선택과 집중의 결과인가요.

“목동병원과 서울병원은 5km 남짓 거리로, 한정된 환자군을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과거 동대문병원을 닫고 목동병원을 열 때의 아픔도 경험했고요. 이후 의과대학 건물을 매입해 진료공간화 하는 등 6년에 걸친 공사와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금의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여성암병원은 특히 성공적인 전략이었어요. 공간을 두 배 확장하고 전문 의료진을 영입해 실적을 두 배로 끌어올렸습니다. 비뇨의학과·혈액암병원 역시 교직원의 동의를 얻어 특화했고, 목동병원의 신생아실과 산과는 고위험 산모를 돌보는 유일한 병원이 되었습니다. 서울병원은 중환자 1인실과 최신 시설, 그리고 전공의가 거의 없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환자에게 신속하고 정확한 치료를 제공해 필수의료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었지요.”

- 이화의료원은 여성 의료진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의사는 큐어(cure·치료)를 넘어 케어(care·돌봄)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질환에만 특화되었다기보다 여성 의료진이 60%를 차지하고, 여성 교수도 많은 환경이 강점입니다. 이러한 인력과 문화 덕분에 이화의료원은 코로나19와 의료대란 속에서도 필수의료의 메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최근 전공의 지원 감소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어린 시절부터 교사나 의사로 불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소아과가 제 성향과 잘 맞는다고 느껴 소아과를 선택했어요. 세 자녀를 키우며 교직과 연구를 병행하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현재 소아과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루 100~200명을 진료하던 시기의 수가(진료비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노동집약적 구조가 바뀌지 않았어요. 코로나 시기 감염 질환이 급감하면서 전공의 지원이 급격히 줄어 230명 정원에 30명만 지원하는 상황이에요. 단순히 전공의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수가 체계 개편과 구조적 정책 변화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 원장님께서는 “내 인생 방향을 타인에서 나에게로 바꾸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게 됐다”는 말씀을 강조하십니다. 여성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지요.

“저는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는 깨달음을 35세 무렵 얻었어요. 아이 셋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에 집중했는데, 돌아보니 제가 행복하지 않더군요. 가족에게 이 얘기를 털어놓은게 그 때였어요. 남편과 논의 끝에 결국 전임의로 돌아가 교육과 진료,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은 사회 초년, 전공의 시절, 결혼·출산이 한 시기에 몰리면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때 자신을 지키며 현명하게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성 의료인이 교육·연구·리더십에서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학계·의료계가 함께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요.

“첫째는 서울병원의 상급종합병원 진입입니다. 전공의가 거의 없는 전문의 중심 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자리 잡는 일은 큰 도전이지만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입니다. 둘째는 한국여성의료박물관 건립입니다. 보구녀관의 역사처럼 한국 여성 의료의 발전 과정을 후배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연구·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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