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여성들] Chapter 3. 혜린의 이야기
서울에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소녀는 이제 세계를 향해 달리는 여자가 되었다. 속도를 내고, 방향을 틀고, 스스로 코스를 만든다. 한강을 가로질러, 보스턴의 비를 맞으며, 혜린은 달린다 - 꿈을 실현하며, 한계를 넘어가며. 서울비너스 이혜린에게 러닝은 기록이 아니라 ‘선언’이다.

“동경하던 이 곳에 살며, 달리고 있는 내가 너무 좋았어요. 나, 서울 잘 살고 있네. 그렇게 느꼈어요.”
13년 차 러너인 혜린의 달리기는 동네 몽마르뜨 공원 몇 바퀴에서 시작됐다. PRRC와 함께하면서 러닝은 서울 전역을 가로지르는 경험으로 확장되었고, 어느새 세계 마라톤의 출발선에 자신을 세웠다.
“SNS에서 우연히 보고 그룹 러닝에 나갔는데, 이상할 만큼 편했어요. 그냥 와서 뛰고, 쿨하게 헤어지는 그 감각이 좋았죠.”
혜린은 그 안에서 존재감이 있었다. 빠르고 열정적인 성향 덕분에 자연스럽게 여성 러너들을 중심으로 ‘서울비너 스’를 운영하게 되었고, 실력 향상을 원하는 멤버들과 함께 ‘선데이 트랙’ 도 운영하게 되었다. PRRC 리더들의 포용과 결단, 연결의 리듬 속에서 혜린은 건강 한 공동체의 방향을 몸으로 배워갔다.
“여자도 빠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남자와 신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컨디션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혜린은 흐름에 따라 달리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16년 시카고 마라톤을 시작으로, 목표는 6대 메이저 마라톤으로 확장되었다.
2023년, 마침내 보스턴 마라톤의 출발선에 섰을 때- 비 오는 주로 위, 얼굴을 스치는 빗방울에 마음의 잡음이 씻겨 내려가던 그 순간.
“보스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이 뜨거웠는데, 그날의 비는 축복처럼 느껴졌어요. 너무 행복해서 모든 순간을 다 나누고 싶었어요.”
혜린은 달리면서도 사진과 영상을 찍고, SNS에 기록하며 그 감정을 공유했다. 그 와중에 PB(개인 최고 기록)까지. 이제는 마지막 월드 메이저 마라톤인 도쿄를 준비 중이다.
“끈기 없는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러닝이 알려줬어요. 무언가를 끝까지해보는 경험이, 삶 전체에 영향을 주더 라고요.”
가까웠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던 시기를 지나, 혜린은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했다. 지금을 후회 없이 살아내 야 한다는 다짐. 그렇게 더 자주 달렸 고, 더 자주 웃었고, 더 자주 도전했다. 달리기를 통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방식은 그의 세계를 더 넓혀주었다.
혜린에게 러닝은 자기 자신을 재구성 하는 일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아직 뛰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찬 순간들. 그것이 오늘도 러닝화를 신고,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가는 이유다.
혜린에게 서울비너스는 ‘누구나 들어 올 수 있는 커뮤니티’다. 운동 경험이 없어도,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누가 운영 진이고, 누가 처음 온 사람인지 구분되 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팀.
“비너스의 문은 열려 있어요.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팀. 그게 진짜 커뮤니티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웃으며 덧붙인다. 서울 곳곳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달리기를.
“건강하게, 꾸준히, 오래오래 달리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과 수다 떨면서 뛰고 싶어요. 서울비너스는 그럴 수 있는 팀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랑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