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통계 개선, 민관협의체 구성 보람”
교제폭력, “경찰 노력만으로는 한계, 여가부 역할 강화하고 ‘이별하는 법’ 교육도 필요”
“성평등 전문가, 조직에 대한 이해와 진단 필수...개인 지갑 열고, 회식과 술자리도 활용”
행위자 중심의 생애주기별 범죄 관리...‘사회적 약자 보호 종합플랫폼’ 구축 예정

경찰청은 2019년 5월 ‘여성안전기획관(고위공무원 나급, 국장급)’ 직제를 신설했다. 여성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성평등 전문가 조주은 씨는 그 해 12월 여성안전기획관 제1호로 임용돼 올해로 6년째다.
2021년 조직 재편으로 ‘여성안전기획관’의 직책명이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으로 바뀌었다. 조 대책관의 업무 범위도 ‘여성’ 분야에서 ‘청소년’과 ‘피해자 보호’ 분야까지 확장됐다.
조 대책관(57)은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여성학과에서 ‘가족학’ 세부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박사 논문 모두 『현대가족 이야기』, 『기획된 가족』이라는 책으로 발간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09년부터 10년간 국회 입법조사(연구)관으로 국회여성가족위원회 여성·가족·청소년 분야를 지원했다. 보고서 작성에 국한된 역할을 맡다 보니 정책 실현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집행부서에 가서 업무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18년 7월,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과의 업무 인연을 계기로 정년이 보장된 입법조사연구관 자리를 과감히 내던지고 정책보좌관으로 이직했다. 1년 뒤, 다음 장관 내정자가 발표될 무렵인 8월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 채용 추가공모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지난 7일 오전 경찰청 집무실에서 조 대책관을 만나 그 간의 성과는 무엇인지, 여성주의자로서 경찰 조직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무엇인지 등 1시간 30분에 걸쳐 얘기를 나눴다. 다소 낯설고 어려운 경찰 조직과 업무를 진지하게 설명하면서도 중간 중간 유머와 위트로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 경찰청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여성폭력 근절과 피해자, 범죄소년 보호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전국 18개 시·도경찰청과 261개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가 수행하는 사회적약자 보호업무를 총괄하는 셈이다.
그리고 현재 사회적약자보호 업무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3개국, 4개과, 10여 개 계에 흩어져 있다. 때문에 본청 차원에서 정책-수사부서 간의 소통과 업무 조정이 중요하다. 매월 ‘여성청소년 기능 전략 협의체’를 주관하며, 자칫 분절될 수 있는 정책 추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심각한 사회이슈로 불거진 교제폭력 예방과 재범방지를 위해, 각종 법제도를 개선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 최근 교제폭력, 스토킹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하나?
“올 8월 피해자보호를 중심에 둔 종합대책 발표를 준비 중이다. 경찰청 내 대응,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법령개정, 타 부처와의 협업을 통한 교육과 홍보 강화가 큰 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만,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살인의 근본적인 원인은 성별 권력관계에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불평등 개선 없이 경찰의 노력만으로 근절될 수는 없다. 성평등 컨트롤 타워로서 여가부와 교육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타인에게 말걸기와 관계지속, 평화로운 이별,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내용으로하는 구체적 인성교육이 전 사회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으로 6년째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성과는.
“첫째, 여성폭력 통계 체계 개선이다. 가정폭력·스토킹·교제폭력 같은 여성폭력이 여성살해(femicide)로 이어지는 사건들이 꾸준히 발생했지만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 수 있는 통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기존 경찰청 살인 통계에는 선행된 여성폭력 유형이나 가·피해자 관계가 기록되지 않아 세밀한 정책 수립에 한계가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이러한 문제점을 계속 제기해 왔고 몇 년에 걸친 논의 끝에 범죄통계 고도화가 이루어졌다. 2024년부터 여성폭력 살인의 선행행위 통계가 집계되어 더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민관협의체 구성으로 경찰청의 외연을 넓혔다. 학계·여성계·법률전문가 2020년 17명으로 ‘여성안전정책자문단’을 발족했고, 2024년 12월 경찰청 훈령에 입각한 ‘사회적약자보호 추진위원회’로 격상됐다. 정책수립 과정에 외부 전문가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 셈이다. 이를 통해 스토킹처벌법 개정, 디지털 성범죄 대응 고도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이 밖에도 ‘사회적 약자보호 주요 경찰활동’ 같은 백서 발간, 매년 개최한 국회·유관기관과의 합동 세미나 개최도 성과다.”

- 여성학 가족학자로서 청소년 범죄를 어떻게 보고 있나.
“범죄 유형에서 성별 차이가 뚜렷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마약 범죄로 검거된 청소년은 총 254명으로, 이 중 65%인 166명이 여성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다이어트 약물을 사용하다가 마약류 범죄로 이어졌다. 반면, 같은 해 도박 범죄로 검거된 청소년은 559명이며, 이 중 91%인 506명이 남성이다. 이렇게 청소년 범죄는 성별화되는 측면이 있다.
또 청소년범죄를 계층이라는 변수를 갖고 들여다보고 있다. 빈곤 가정 청소년은 범죄에 연루될 위험이 높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으면 법률 지식과 네트워크 부족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우려가 있다. 이를 완화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법률 지원과 멘토링을 연계하는 종합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 외부 전문가이자 고위공무원으로서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경찰 조직에서 자리 잡게 된 비결은?
“외부전문가로서 조직에 들어가면 그 조직에 대한 이해와 진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취임 이후 경찰조직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직원들의 업무역량도 천차만별이다. 직원들 각자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며 끌고 가야 한다. 경찰 정책에 성평등 관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존중한다. 토론을 이끌어 내며 소통하고, 조직을 민주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진정 어린 마음으로 직원들과 합심하며 좋은 정책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직원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순경 공채·경찰대·간부후보 등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직원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소수인 행정관, 비공무원인 주무관들을 각별히 챙겼다. 명절 때는 부속실 직원과 청소 담당 주무관에게 드릴 봉투도 반드시 개인적으로 챙긴다. 때로는 저녁회식도 필요하다.
좋은 음식과 분위기 속에서 술 한잔 마시며 업무시간에 다 하지 못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회식 후엔 직원들 차비를 챙겨주고, 부하직원들의 경조사도 살뜰히 챙겼다. 한 달에 경조사비가 꽤 나간다.(웃음) 이런 노력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직원들이 나를 보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느꼈고 조직 내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 것 같다.”

- 앞으로 주력하고 싶은 업무 과제는.
“사회적약자 대상 범죄는 여러 사건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심각한 가정폭력 피해자가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아동학대 피해자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약자 보호 종합플랫폼’을 구축하여 어떤 사람의 생애 주기별 범죄 관리를 종합적으로 해야한다.
이렇게 해야 범죄의 재발 가능성을 조기에 식별하고, 복합적인 사건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예방 단계에서는 잠재 위험군에 대한 모니터링과 맞춤형 지원을, 사후 관리 단계에서는 재범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동시에 강화할 계획이다. 하나의 개별사건이 아닌 맥락(context)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미성년 피해자 부모통지 규정 관련 ‘범죄수사규칙’ 개정이다. 현재 성범죄 피해를 입은 청소년이 부모에게 피해 사실이 통지되는 것을 두려워해 신고조차 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성범죄와 같이 개인의 내밀한 영역을 침해하는 범죄에서 이런 사례가 두드러진다.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가해자를 특정해 검거할 수 있도록 예외 사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규칙을 개정하려고 한다.
부임 초기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조직 내부의 공감대를 얻어 최근 개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가경찰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
▲ 서울 출생(1967) ▲ 서울대 사범대 부속고 ▲ 이화여대 사학과 ▲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박사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 여성가족부 장관 정책보좌관
▲ 저서 : 『현대가족 이야기』,『페미니스트라는 낙인』 ,『기획된 가족』, 『젠더와 경찰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