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꼭 가볼만한 곳] ‘우리들의 정원’ 아원고택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아원고택은 250년 된 고택을 옮겨와 만들어졌다.   ⓒ홍민희 기자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아원고택은 250년 된 고택을 옮겨와 만들어졌다.   ⓒ홍민희 기자

세계가 먼저 알아본 한국식 정원을 찾기 위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핸들을 부드럽게 꺾다 보면, 푸르른 나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라도 살랑 불면, 푸른 색깔이 코끝에도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게 산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보물처럼 숨겨진 정원에 도착하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온몸으로 증명한 아원(我園)고택이 바로 그곳이다. 

산세가 험한 완주군 소양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종남산을 화폭으로 쓰기로 마음먹은 건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44년 전, 구도자의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던 한 청년은 종남산을 마주한 그 터가 온 마음을 가득 채웠다고 고백한다. 모두가 말렸던 결정이었다.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황무지 2,000평(6,600㎡)을 사겠다고 했을 때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사들인 공간에 전국에 흩어진 한옥 고택을 그대로 옮겨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위치에 재조립했다. 경남 진주, 전남 함평, 정읍에서 옮겨온 한옥들은 종남산의 풍경을 닮은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택들이 품은 시간은 650년을 헤아린다.  그 사이 청년은 백발이 성성한 일흔 살이 됐다.   

종남산에서 본 아원고택 천지인. ⓒ아원고택 제공
종남산에서 본 아원고택 천지인. ⓒ아원고택 제공

아원,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각각의 매력을 지닌 한옥 고택 마루에 앉아 사색을 즐기고,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전시관까지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바람 소리와 화음을 이루는 대나무숲은 숨겨진 선물 같은 공간이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공개된 것은 2016년이지만, 당시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조용한 정원이었다.

그런 공간이 하루아침에 모두가 아는 명소로 바뀐 건 2019년, BTS(방탄소년단)가 찾으면서부터였다. 한국의 미(美)를 알리고 싶다며 방문한 BTS가 이곳에서 촬영한 화보는 전 세계 1020세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냈다. BTS라는 예술가의 정체성이 한국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경험은 수십 년간 공간을 가꿔온 전해갑(70) 아원 대표의 마음도 움직였다. 한옥의 가치를 알아보고 고생한 시간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조용히 남아 있는 것도 좋지만,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공간이 된 점이 참 좋습니다. 문화는 느리지만 확실히 강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날 일정에는 여성신문 발전후원회 회원 25명도 함께했다. 전 대표와 함께 아원고택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 그의 정성과 고민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닥의 자갈, 손에 닿는 벽, 발을 올려야 하는 계단 모두가 치밀한 고민의 산물이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은 천장이 열리며 빛이 쏟아지는 전시관이다. 시멘트로 둘러싸여 처음엔 차갑게 느껴지지만, 그 공간을 중화시키는 존재는 바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전통적인 한옥과 현대적인 예술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환대를 전한다. 

아원고택 입구의 갤러리. 열린 천장을 통해 햇살이 쏟아진다. ⓒ홍민희 기자
아원고택 입구의 갤러리. 열린 천장을 통해 햇살이 쏟아진다. ⓒ홍민희 기자

전 대표는 “이제는 장소와 공간의 시대”라며 “그 공간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읍에서 옮겨 온 만휴당(萬休堂)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종남산이 커다란 액자가 되어 방문객을 반긴다. ‘만사를 제쳐두고 쉼을 얻는 공간’이라는 뜻의 만휴당은 아원 고택 중 가장 큰 한옥이다. 120년 전 일제강점기 말 정읍에서 자태를 뽐내던 이 고택은, 전 대표의 안목에 따라 가장 좋은 자리에 이축됐다. 서까래 하나 허투루 옮기지 않았고, 한옥의 기본 뼈대를 온전히 보존하며 재건된 공간이다.

두 개 객실로 이뤄진 만휴당은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를 상징한다. 안방, 건너방, 다도방이 너른 대청마루로 연결돼 있어 방문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평일임에도 대청마루에는 자연이 주는 그림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시간을 품은 반질반질한 마루에 걸터앉으면, 왜 모두가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지 알게 된다.

명상과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전 대표의 초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이곳에서는 자연의 소리 외엔 인위적인 소리를 배제하려고 노력한다”며 “치유와 사색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완벽한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고택들 사이에는 충분하고 넉넉한 거리가 유지되어 있고, 고택의 청아한 느낌을 살리는 대형 물그릇이 마당 풍경 속 한 조각이 된다.  

서당채. ⓒ아원고택 제공
서당채. ⓒ아원고택 제공

정읍, 함평, 진주에서 고택을 옮겨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 전 대표는 이제 한옥을 건축물이 아닌, 가구이자 조형물, 설치미술로 바라본다. 까다로운 한옥 신축 규제도 이축을 택한 이유지만, 해체와 조립 과정에서 한옥의 조형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한옥을 건축으로만 접근하면 답이 없습니다. 자연에 놓인 가구로 보거나 설치미술로 바라보면 조상들이 만든 한옥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한옥 안에서 자연을 감상하려면 여러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신발을 벗고 높은 마루에 올라야 하고, 마루를 반질반질하게 유지하려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바람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시대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바로 그래서, 전 대표는 말한다. 한옥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고.

“한옥은 불편합니다. 그 불편함을 껴안아야 온전한 공간이 됩니다. 그렇기에 욕심내지 않는 최소함, 수평과 수직, 상승을 담은 모던함이 오히려 한옥을 더 현대적으로 만듭니다. MZ세대는 그것을 읽고 이곳을 찾아와 주는 거죠.”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떠돌듯 완주를 찾았던 청년은 이제 세계적 랜드마크를 만들어낸 장인으로, 40년의 세월을 보상받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성공보다 누군가 이 땅에 시를 써두었다는 소박한 칭찬에 더 큰 마음을 쓰는 청년이다. 그의 청년 같은 마음이, 진짜 청년들을 불러 모으는 가장 강력한 힘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정원은 그렇게, 완성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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